[조용헌 살롱] [1401] 가수 김완선과 춤 DNA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3. 6.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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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축제 공연 무대에서 보여준 가수 김완선의 댄스 음악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이 공연 장면은 60대 초반 필자에게도 기쁨을 주었다. 어지간한 가수들 노래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는 나를 김완선의 댄스와 그 현란한 율동은 격발시키는게 있었다. 문제는 댄스였다. 어떻게 50대 중반 나이에 저렇게 흥겨운 율동을 보여줄 수 있을까? 30여 년 전에 보았던 김완선이 아직까지도 저런 몸동작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80년대 후반을 기억하는 중장년들에게 강력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면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그 메시지를 전달받고 드는 생각은 ‘고목에 꽃이 피었구나. 고목에 꽃이 피면 부르는 게 값이다’였다. 제철에 피는 꽃보다는 수십배의 값어치가 있다. 김완선 팔자는 고목에 꽃이 피는 팔자로구나!

50대에 도교의 연단술(煉丹術)을 익혀 임독맥(任督脈)이 뚫리면 회춘이 된다. 이를 고목에 꽃이 피는 것에 비유한다. 김완선은 연단술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저런 상태라면 이건 팔자라고 보아야 한다. 팔자에는 DNA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혈통을 무시할 수 없다. 혈통을 과도하게 신봉하면 골품제(骨品制)로 빠지지만 말이다.

김완선의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춤꾼이었다고 전해진다. 학(鶴)춤과 태평무에서 한 획을 그은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전라도는 명창과 소리꾼이 많이 배출되었고 경상도 한량들은 학춤을 잘 추는 전통이 있다. 학춤의 기원은 멀리 신라 화랑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랑도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수련 방법이었다. 외조부는 학춤 전문가였다고 하니 그 혈통과 전생의 인과(因果)가 축적되어 손녀딸 김완선의 댄스가 탄생한 셈이다.

유전은 대개 한두 세대를 건너뛰었다가 나타나는 격세유전(隔世遺傳)이 많다. 이모들도 민속춤의 대가였고, 김완선을 중학교 시절부터 연예인으로 조련한 이모 본인도 춤꾼 집안의 DNA였기 때문에 댄스 음악 전문 매니저가 되었던 것이다. 10여 년 넘게 사회와 격리되면서 춤만 추는 생활을 김완선이 견딘 것도 전생부터 댄스에 단련된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춤꾼 소질이 없었으면 혹독한 훈련을 못 견딘다. 김완선 본인도 그동안 삶의 풍파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크게 찌든 때가 안 보인다. 20대 초반에 풍겼던 백치미와는 좀 다른 성숙하고 발효된 순수미가 있다. 인생에 상처 없는 사람 없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고 꽃이 피었으니 많이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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