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24] 주먹
주먹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죄인처럼 공손히
그 성난 마음 한편 구석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덥지 못함.
아아, 그 미덥지 못함.
하는 짓이 곤란한 주먹을 가지고,
너는 누구를 칠 것인가.
친구인가 너 자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또 죄 없는 옆의 기둥인가.
-이시카와 다쿠보쿠(1886~1912)
(손순옥 옮김)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가난한 생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시인이 귀엽다. 다쿠보쿠의 시에서 내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 치밀한 묘사, 자신을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눈이다. 친구에게 화가 나 주먹을 휘두른 뒤 자신을 반성하고 분석하는 눈, 현대인의 고독한 눈. 그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시인이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둘렀다. 중학교를 자퇴한 그는 첫 시집을 펴낸 뒤 소학교의 임시교원이 되었으나 학생들을 선동하여 교장을 내쫒고 자신도 면직되었다.
‘주먹’이 1909년 신문에 게재될 무렵 시인의 생활이 어려워 아내가 가출했고 궁핍한 생활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결핵으로 사망했다. 한 달 뒤 26살의 다쿠보쿠 또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국강병과 문명개화의 기치 아래 진행된 일본 근대화의 고통을 온몸으로 기록한 다쿠보쿠는 지금 일본만 아니라 세계인이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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