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벌금의 꼬리표를 연대의 깃발로
자전거를 만들고 수리하는 내 친구의 꿈은 ‘동네 자전거포 아저씨’였다. 어린이들이 맡기는 자전거는 더 성심껏 수리하고, 골목을 오가는 주민들과 눈인사가 늘어 가는 걸 먹고사는 일만큼 값지게 생각했다. 그러나 동네 자전거포 아저씨가 되는 데 가장 힘에 부치는 일은 동네에 남는 것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멈추지 않고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다 보니 건물주의 소작농인가라는 회의가 들어 가게를 접었다.
순전히 개인사로 보이는 친구의 이야기는 사실 한국 자영업자 수난사다. 가게 사장님들은 가게가 안 되는 것만큼 잘되는 것도 두려워하는데, 월세가 빠르게 오르거나 애써 만든 상권을 건물주나 주변에서 탐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골집을 빼앗겼던 도시민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불과 몇년 전 풍경도 금세 사라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속한 자리를 자주 잃는다.
이 수난사에 중요한 색인 목록이 되는 가게들이 있다. 두리반, 우장창창, 구본장여관, 궁중족발, 을지 오비베어와 같은 곳들이다. 노가리 골목의 원조가게인 오비베어는 ‘서울미래유산’ 지정이 무색하게도 역사와 골목을 장악하려는 만선호프의 욕심에 쫓겨났고, 서촌에 있던 궁중족발은 보증금 3000만원은 1억원으로, 월세 300만원은 1200만원으로 올려내라는 건물주에게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동원된 무자비한 폭력은 합법으로 비호됐다. 폭력은 눈앞에 오가는 주먹질만이 아니었다. 건물주가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는, 월세야 얼마를 올려받든 건물주 마음이라는 규칙이 폭력이었다. 궁중족발이 있던 건물은 2015년 48억3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올해 2월에는 152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7년 사이 100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이 ‘감옥’이었다.
지기만 한 싸움은 아니었다. 쫓겨나는 가게들의 곁을 지키는 단체 옥바라지 선교센터가 생겨났고, 뜻을 모으는 연대인들이 늘어났다. 궁중족발은 법을 개정해 5년에 불과하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계약 갱신 기간을 10년으로 연장시켰다. 이것이 궁중족발의 이전 손해를 회복시켜주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가게가 5년이 아니라 최소한 10년간 계약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내가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의 문제로 바꿔 대면하는 용기, 나는 싸워야 했지만 다음 사람은 싸우지 않고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궁중족발과 을지 오비베어의 마음이었다.
법원은 그런 이들에게 도합 7200만원의 벌금과 배상금을 판결했다. 이윤만을 위해 종횡무진 달려가는 세상을 멈춰 세운 대가다. 이 짐을 나누어지자는 모금의 이름은 ‘벌금의 꼬리표를 연대의 깃발로’이다. 오늘을 ‘나쁜 과거’로 만들기 위해 연대의 깃발을 함께 세워주시라. 한 번의 싸움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패배는 이들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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