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거가거가’ 대청로가 비상한다

김희국 기자 2023. 6.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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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부민동~중구 중앙동, 부산 문화·역사의 보고
근현대역사관 출범으로 10년만 ‘거가거가’ 실현

꼭 10년 전이다. 2013년 5월 30일 국제신문 지면에 ‘거가거가(巨歌巨街·Great Song Great Street)가 뜬다’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 1회가 나갔다. 시리즈는 10회까지 연재됐다. 여기서 ‘거가거가’는 ‘쫌~’이나 ‘마!’처럼 한두 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특정한 장소를 평소 알고 있었는데 뒤에 그 장소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서 되물을 때 많이 쓰는 말이 ‘거가거가?’다.

시리즈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한 그곳은 부산 서구 부민동 동아대 부민캠퍼스와 중구 중앙동 수미르공원을 잇는 대청로였다. 왜 하필 길이가 1.6㎞에 불과한 대청로였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대청로 끝자락에 위치한 동아대 부민캠퍼스 내 동아대 박물관은 6·25전쟁 시절 임시수도 청사로 사용됐다. 인근 임시수도기념관은 이승만 대통령이 생활했던 부산 경무대였다. 또 동아대 부민캠퍼스 내에 대법원 등 주요 법조 기관이 상주했으며 대청로를 따라 국세청의 전신인 사세청과 미국 대사관 역할을 했던 미국 공보원, 한국은행 등이 있었다.

대청로의 또 다른 끝자락 수미르공원 인근에는 부산세관과 1953년 11월 대화재로 소실돼 현 위치로 옮기기 전의 부산역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 골목, 중앙동 40계단, 근대 기상 역사의 산증인인 부산기상관측소도 대청로에 몰려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이 대청로다. 부산시는 대청로 유산 등을 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밟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대청로와 연결된 광복동과 남포동 대청동 동광동 일대는 6·25전쟁 때부터 1970년대까지 다방과 음악감상실로 유명했다. 부산으로 피란 온 당대 최고의 문인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이 모여든 장소였다. 다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시 낭송회 전시회 음악회 연극 등이 벌어진 종합 예술 공간이었다. 이 정도면 ‘거가거가?’라는 말이 나올 만하지 않은가.

이 시리즈의 핵심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이었다. 도시철도에서 접근이 쉽고 인근에 옛 근대역사관, 책방 골목, 용두산 공원, 국제시장, 또따또가 등이 있어 문화·역사·관광을 꿰는 데 최적의 공간이었다. 1963년에 지어진 건물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이천승, 홍순호의 작품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근대건축 양식이다. 시리즈가 연재될 당시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욕심내는 기관이 적지 않았다. 부산시가 문화재 자료(제70호)로 지정하면서 보존의 길이 열렸고 결국 시민의 품에 안겼다. 건물 자체 활용성이 무궁무진해 한때 문화예술계와 역사학계가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시리즈 기사가 나간 지 10년 만에 마침내 ‘거가거가’가 꿈꾸던 모습이 완성되고 있다. 역시 핵심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이다. 이 건물을 본관으로, 옛 근대역사관을 별관으로 묶은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출범한다.

본관은 12월 개관식을 하고 별관은 이미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에서 출발해 1949년 미국 해외공보처 문화원, 6·25전쟁 시기 미국 대사관, 1970년대 미 문화원으로 유명했던 별관은 건물 그 자체가 근현대 역사다. 새롭게 출발하면서 1층 로비 공간은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용도가 결합한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변신했다. 여기선 인문학 프로그램과 작은 공연도 열린다. 지난달 소설가 장강명 씨가 독자들과 만났고 기타리스트 장하은 씨가 TV 프로그램 ‘슈퍼밴드2’에서 보여줬던 멋진 무대를 선사했다. 별관에 꼭 맞는 옷을 입었다.

별관이 문을 열었을 뿐인데 대청로는 벌써 들썩인다. 본관 역시 별관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예전 돈을 보관했던 지하 금고는 미술 전시장으로 바뀐다. 본관은 2018년 부산비엔날레 개최 장소로 전문가와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관광시설도 들어와 역사문화관광 공간이 된다. 본관이 개관하면 ‘거가거가’는 6·25전쟁 전후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공간으로 다시 비상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애초 거가거가 시리즈에서 본관을 공연예술 중심지로 만들자고 했던 주장을 완전하게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 대청로 일대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른다. 본관 개관 후 대청로 일대를 누비는 다양한 답사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걷는 박물관’으로도 가능하다. 여기에 북항재개발 1단계 구역이 지난 4월 147년 만에 전면 개방돼 걷는 박물관의 콘텐츠는 더욱더 풍성해졌다. 만약 2030 부산세계박람회 개최가 확정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문득 오늘 뭘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거가거가’로 가보길 추천한다. 정전 70주년을 맞은 부산이 거기에 있다.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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