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마음을 꽉 채운 3만7800원

이청산 백산안희제선생 독립정신계승사업회 이사장 2023. 6.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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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산 백산안희제선생 독립정신계승사업회 이사장

세태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부고를 알릴 때도, 청첩을 할 때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마음을 전하는 계좌번호가 있다.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인 것 같다.

부의(賻儀)의 본 뜻은 부(賻)는 상갓집에 보내는 재화, 즉 돈이나 물품을 말하고 의(儀)는 의례를 말하는 것이니 부의는 조문하는 예의를 갖추어 전하는 돈이나 물품이란 뜻이고 축의금은 축하하는 뜻으로 내는 돈이다. 부의금도 축의금도 부조금인 것이다. 부조금은 우리 고유의 풍속인 상부상조에서 유래했다. 지연이나 혈연 등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품앗이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예전엔 혼례나 장례 등 큰일을 치를 때 곡식 술 등 물품이나 노동력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 힘을 보탰다. 부조는 잔칫집이나 상가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주거나 남을 거들어서 도와주는 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런 부조금을 어떤 기준으로 얼마를 해야 할까? 청첩장이나 부고를 보낸 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움 준 분들’의 명단에 없으면, 부조를 할까 말까 한참 고민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나는 (부조를) 하지 못했는데도, 그리고 나와 친분이 그리 두텁지 않았는데도 내가 힘든 일을 당하자 기꺼이 마음 보태준 분들도 있어 기준이 내가 도움을 받은 것에 한정하여 부조금의 기준을 정하기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청년층을 비롯해 거의 모든 세대가 부조금 액수를 정할 때 일반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은 상주나 청첩한 사람과의 친소 관계일 것이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 실린 인크루트 설문에 의하면 결혼식 축의금으로 알고 지내는 동료 등에게는 5만 원, 친한 사이에는 10만 원 이상이 적당하다고 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크루트는 최근 1177명을 대상으로 결혼식 축의금 적정 액수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팀이지만 덜 친하고 협업할 때만 보는 동료, 가끔 연락하는 친구나 동호회원 등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는 5만 원이 적당하다는 의견이 65.1%와 63.8%로 가장 많았다. 거의 매일 연락하고 만남이 잦은 친구 또는 지인의 경우 적정 수준으로 10만 원이 36.1%, 20만 원이 30.2%였다. 평소 연락이 뜸했던 지인이 모바일 청첩장만 보낸다면 46.6%는 축의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세태가 각박해진 것일까? 아니면 현실적인 것인가?

아버지께서는 부의금 축의금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과 금액을 적은 책자를 간직하고 계시다가 부조금을 낼 때면 그 책자를 들춰보시고 그 사람이 부조한 만큼을 내셨다. 그리고 본인께서 혹시 실수를 하실까 염려가 되어 어머니께 말씀을 전하셨는지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책자를 보여주시며 본인이 돌아가시고 없더라도 이 집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꼭 가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거의 모든 부모님이 보물처럼 그 책자를 간직하며 부조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십수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부의금을 정리하다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려오는 부의금을 대하고 한동안 멍했다. 부의금 봉투에는 돈이 지폐와 동전으로 3만7800원이 들어 있었다. 1만 원권 3장과 1000원권 7장 그리고 500원짜리 동전 하나, 100원짜리 동전 3개. 자신이 가진 전부를 털어 부의금을 낸 후배, 얼마나 더 하고 싶었을까? 그때는 경황이 없어 밥이라도 배불리 먹고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갔는지 챙기질 못했는데 부의금을 대하고는 차비는 있었는지 걱정이 되었고, 가난한 예술가 후배가 마음을 표한 그 부의금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은 아니고 나의 기준이 틀렸는지 모르지만 사실 축의금에 정해진 ‘적정 액수’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각자의 여건과 판단에 따라 ‘천차만별’일 테니까. 어쩌면 중요한 건 ‘액수 그 자체’가 아닌 ‘주고받는 마음’일 것이다. ‘돈’에 치중하기보다 ‘진심’을 우선시한다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특별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부고장이나 청첩장을 받으면 기준은 그때 가난한 예술가 후배가 마음을 전한 3만7800원이 기준이 되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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