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무책임한 극단주의, 프리드먼과 윤석열

기자 2023. 6.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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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원조 밀턴 프리드먼은 2006년에 죽었다. 오늘의 전환시대는 프리드먼의 육신과 함께 그의 정신도 죽었음을 일러준다. 그런데 웬일인가. 지하 깊이 잠들고 있어야 할 그의 유령이 되살아나 한국의 뒷덜미를 붙잡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의 여신은 왜 이런 퇴행의 시련을 주실까.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프리드먼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칠레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찬양했다. 피노체트는 학살과 고문,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프리드먼의 눈에는 자유의 수호자였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프리드먼의 세례를 받은 칠레인 제자들(‘시카고 보이들’)의 수중에서 칠레는 급진적 자유시장 실험실로 전락했다. 프리드먼 은 칠레를 방문해 피노체트를 고무하고, 시카고 보이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시카고 보이들이 이끈 극단적 자유시장 실험으로 칠레 경제는 나빠졌다. 이 실험이 낳은 것은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 투기경제화와 저성장, 경제권력의 집중이었다. 프리드먼-피노체트 체제 아래 대중은 경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를 박탈당한 반면, 보장된 것은 소수 특권층의 자유, 가진 자들의 ‘선택할 자유’였을 뿐이다. 프리드먼이 사랑한 것은 소수의 특권적 자유였고, 대중의 실질적 자유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린든 존슨과 배리 골드워터가 대통령 선거 경쟁을 할 때 골드워터가 베트남 전쟁에 수소폭탄을 사용하자고 주장했는데 프리드먼이 옹호하며 말했다. “베트남에 수소폭탄을 떨어뜨리면 몇백만명이 죽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당연한 일이다.” 수소폭탄 주장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비판을 받자 골드워터는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프리드먼의 시대착오적 시장만능주의-작은 정부 사상에 깊이 감명받고 늘 그의 책을 끼고 다녔다는 인물, 거기에 정치를 검찰 수사처럼 여기는 전직 검찰총장이 한국의 최고권력자가 되어 있으니 나라 꼴이 어떠할까. 프리드먼이 토지보유세만큼은 “가장 덜 나쁜 세금”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윤석열은 보유세 감면과 자산 소유자 퍼주기에 올인했으니 윤석열의 자유는 프리드먼보다 더 프리드먼적이다.

공공의 국가라면 마땅히 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 첫째, 사회생태적 지속 가능성의 시대명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능동적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 작은 정부는 시대착오적이니 큰 정부로서 담대하게 시장을 이끌고 재구성해야 한다. <초거대 위협>의 저자 루비니는 말한다. “초거대 위협과 싸우려면 그동안 고이 간직해왔던 가정을 버려야 한다. 세율을 낮추고 무역을 자유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경제적 에너지가 생성될 거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파멸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책임있는 큰 정부가 조정과 협력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둘째, 담대한 정부의 역할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불평등 축소와 대중의 기본적 필요 충족이다. 정부가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대중이 삶의 불안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통감이 나올 리 없고, 요란한 국민의 나라는 새빨간 거짓이다. 특히 에너지·물·대중교통 등에서 친환경적 전환을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 환경 돌봄·사람 돌봄·지역사회 돌봄을 위한 공공투자는 불평등 완화와 생태위기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환정책이다. 서로를 연결하는 진지 역할도 한다.

셋째, 책임정치는 민주공화국 헌정정치의 기본이다. 이는 정부가 할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할 일을 방기하고 불법과 과오를 저질렀을 때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을 반드시 포함한다. 이건 국가 공공성의 마지노선이다.

윤석열 정부는 거대한 퇴행으로 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무고한 시민 159명이 죽었다. 그런데 정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철면피로 버티고 대통령은 감싸준다. “이게 나라냐”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시민행진이 진행 중이다.

프리드먼-윤석열 체제는 노조 때리기와 노동탄압으로 먹고산다.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몰며 공권력을 오·남용한 결과 양회동씨가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 사망했다. 조선일보는 함께 있던 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고 악의적 왜곡보도를 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맞장구쳤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선 고공농성하던 김준영씨가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구속됐다. 지배권력의 무책임 극단주의가 어떤 지경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정부는 돌봄 등 사회복지서비스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 나라는 지속 불가능한 디스토피아로 떨어지고 있다. 당신의 자존심은 어떤가?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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