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괜히 나온 산책
힘들면 내 무릎에 좀 누워
배기고 불편해
임신한 아내가
마땅히 쉴 곳이 없다
아내는 서운한 것이다
산책 문제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벤치에 앉아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아무 생각 안 하는 것 같지만
정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꽤 중요하다
최명진(1976~)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 “임신한 아내”가 벤치에 앉아 있다. “마땅히 쉴 곳이 없”어 남편과 나선 산책이다. 집 공사를 하거나 고부 갈등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쓰러운 남편은 내 무릎이라도 베고 누우라 하지만, 아내는 “배기고 불편”하다며 눕지 않는다. 불편하기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아내는 무언가 서운한 눈치다. 남편에게 말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아내.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돌아오는 말이 퉁명스럽다.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분명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정말 골똘히 생각”해도 아내가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임신부는 자신과 태아 생각만으로도 힘겨운데, 주변에선 너무 쉽게 생각한다. 출산을 앞두면 심리가 더 복잡해진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아내를 이해하려는 건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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