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시리아 청년에게 멘토가 되어준 독일 시장

정유진 기자 2023. 6.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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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얀 알셰블(29). 지난 4월 독일 남서부 소도시 오스텔하임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시리아 난민 청년이다. 당선되자마자 전 세계 언론사 100여곳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하니, 이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던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정유진 국제부장

그의 인터뷰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끈 대목 중 하나는 오스텔하임과 이웃한 소도시 알텡슈테트의 클레멘스 괴츠 시장 권유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알셰블의 당선은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불가능해 보였던 승리였다. 독일에 온 지 8년밖에 되지 않은 20대 난민 청년이 시장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15년째 알텡슈테트 시장으로 재임 중인 이 노련한 행정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시리아 청년도 자신과 같은 독일의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알셰블이 독일로 오게 된 과정은 다른 시리아 난민들과 다르지 않았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위해 복무할 수 없었던 그는 2015년 징집 명령이 떨어지자 유럽행을 결심했다. 정원의 3배를 초과한 고무보트로 위험천만한 항해 끝에 그리스에 도착했고, 그렇게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받아들인 100만여명의 난민 중 한명이 됐다.

그러나 정착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난민들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면서 그를 알텡슈테트로 보냈다. 대학을 중퇴한 21세 난민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2016년 알텡슈테트 시청의 행정 인턴십 모집 공고문을 보고 용기를 내 지원했지만, 시청 측은 그의 독일어가 서투르니 제빵이나 제화 같은 손기술을 배우는 게 낫겠다며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알셰블은 독일 사회가 난민들에게 요구하는 한정된 역할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역 자원봉사센터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행정 업무를 배우고 싶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괴츠 시장은 그때부터 이 적극적이고 성실한 청년을 눈여겨봤던 것 같다. 두 달간의 인턴십 기간이 끝나자 그는 알셰블에게 행정보조 정규직에 지원하라고 직접 제안했다. 시리아 난민이 시청 직원이 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라 2017년 3월 지역 언론에 기사까지 났다. 그때 알셰블은 인턴십 경험이 행정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일깨워줬다면서 ‘공공경영’ 학위 과정을 밟으려 한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 그는 몇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따는 데 성공한다.

알셰블은 서서히 시청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성장했다. 2019년 3월 알텡슈테트의 직업교육 시스템을 배우러 온 레바논의 한 지자체 대표단 소식을 다룬 기사에서는 괴츠 시장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독일의 직업교육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다른 나라에)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독일의 직업 분야 용어에는 적절한 번역도 없죠. 그래서 저는 시청 직원인 알셰블이 오늘 통역을 맡아준 것을 더욱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셰블은 커뮤니티 관리 및 보육 시스템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며 자신만의 전문성을 구축해갔다. 오스텔하임 시장 선거에서도 그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보육 관련 정책이었다.

그러나 사실 알셰블은 이전까지 정치인이 되겠다거나, 선거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오스텔하임의 시장 선거 소식을 들은 괴츠 시장이 그에게 출마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시리아 친구들은 난민에 대한 편견을 걱정했다. 특히 오스텔하임은 백인들만 사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시골 도시였다. 하지만 괴츠 시장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알셰블은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을 가진 친구입니다.” 알셰블의 당선 후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괴츠 시장이 한 말이다.

알셰블은 자신의 멘토가 되어준 괴츠 시장에게 이렇게 감사를 전했다. “괴츠 시장은 좁은 구멍 속에 있던 저에게 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해준 사람입니다.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지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저를 믿어준 사람들과의 우정이 이번 성공의 주역이었습니다.”

이주민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만 난무하는 시대에, 재능 있는 난민 청년을 알아보고, 그에게 정치적 꿈을 불어넣어준 정치인이라니.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를 볼 줄 아는 괴츠 시장 같은 정치인이 한국에도 많아지길 바란다. 그에 대해 알고 나니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교했던 고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부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정유진 국제부장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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