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재동]끈적한 물가와 험난한 경기… 우리 경제에 놓인 두 가지 덫
유재동 경제부 차장 2023. 6. 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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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이른바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라 불리는 현상이다.
물가가 지난해 최정점 수준에서는 다소 내려왔지만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아무리 기준금리를 올려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고물가와 경기침체의 '이중 덫'에 걸려 있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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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이른바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라 불리는 현상이다. 물가가 지난해 최정점 수준에서는 다소 내려왔지만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아무리 기준금리를 올려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물가지표가 마치 높은 곳 어딘가에 달라붙은 듯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 현상의 배경에는 임금과 주거비 상승, 높은 수요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이미 초고강도 긴축을 단행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는커녕 여전히 추가 긴축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만성화되다 보니 미국에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경기 슈퍼사이클이 저물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10년 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한 이 개념은 수요·투자 부진에 따라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이 길어지는 장기 불황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런데 올해 초 서머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장기침체 가설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서 스스로 이를 철회했다. 팬데믹과 공급망 붕괴라는 초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나타난 세계 경제의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흐름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기를 묘사하는 단어 역시 부정적인 형용사들로 가득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 분절화, 인플레이션 등의 불안 요인을 거론하며 세계 경제가 ‘험난한 회복 과정’(A Rocky Recovery)에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세계 경제의 개선 흐름이 여전히 ‘취약’(fragile)하다고 진단했다. 경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그레이트 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이란 개념을 들고나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가 재앙이 닥친다는 뜻이다.
고물가와 경기침체의 ‘이중 덫’에 걸려 있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 초반으로 거의 2년 만에 가장 낮았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4%대에 ‘끈적하게’ 머물고 있다. 경기는 더 험난하다. OECD는 이달 반도체 수요 둔화와 수출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다. 세계 평균 성장률은 높이면서도 한국만 4차례 연속으로 전망치를 끌어내린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1%대 성장률을 당연시하면서 별다른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쇼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진 것은 역사적 전례가 없고, 심지어 1%대 성장마저 위태롭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의 복잡한 지경학적(geoeconomic) 사정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한꺼번에 부각되는 일촉즉발의 시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응했다가는 글로벌 무대의 뒤안길로 순식간에 떠내려갈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만성화되다 보니 미국에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경기 슈퍼사이클이 저물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10년 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한 이 개념은 수요·투자 부진에 따라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이 길어지는 장기 불황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런데 올해 초 서머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장기침체 가설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면서 스스로 이를 철회했다. 팬데믹과 공급망 붕괴라는 초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나타난 세계 경제의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흐름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기를 묘사하는 단어 역시 부정적인 형용사들로 가득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 분절화, 인플레이션 등의 불안 요인을 거론하며 세계 경제가 ‘험난한 회복 과정’(A Rocky Recovery)에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세계 경제의 개선 흐름이 여전히 ‘취약’(fragile)하다고 진단했다. 경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그레이트 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이란 개념을 들고나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물가 재앙이 닥친다는 뜻이다.
고물가와 경기침체의 ‘이중 덫’에 걸려 있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 초반으로 거의 2년 만에 가장 낮았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4%대에 ‘끈적하게’ 머물고 있다. 경기는 더 험난하다. OECD는 이달 반도체 수요 둔화와 수출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다. 세계 평균 성장률은 높이면서도 한국만 4차례 연속으로 전망치를 끌어내린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1%대 성장률을 당연시하면서 별다른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초대형 쇼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진 것은 역사적 전례가 없고, 심지어 1%대 성장마저 위태롭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의 복잡한 지경학적(geoeconomic) 사정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한꺼번에 부각되는 일촉즉발의 시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응했다가는 글로벌 무대의 뒤안길로 순식간에 떠내려갈지도 모른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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