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아사냐’ 김정은의 선택은[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주성하 기자 2023. 6. 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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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한 김정은이 딸 김주애와 함께 정찰위성에 들어갈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동아일보DB
요즘 중국 다롄(大連)과 단둥(丹東)항에는 안남미 등 식량 포대들이 잔뜩 쌓여 있다고 한다. 식량을 주문한 북한이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서이다.

작년 10월부터 북한은 많은 식량을 중국에서 사갔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북한의 식량 수입액은 6723만 달러로 월평균 1120만 달러였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 한 해 식량 수입액이 2260만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내부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4월부터 식량 수입이 급감했다. 4월 585만 달러로, 3월 2176만 달러에 비해 73% 급락했다. 5월부터는 식량이 항구에 묶이기 시작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식량 가격은 최근 5년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서민들의 주식인 옥수수는 코로나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졌다. 굶주리는 가정과 꽃제비도 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식량 수입이 늘어나야 정상인데 주문했던 식량도 대금을 치르지 못한다는 것은 외화가 고갈됐다는 증거다. 외화가 없으면 북한의 선택은 두 가지다. 빚지거나 뭘 팔아 버는 것이다. 북한은 빚지는 데는 선수다.

작년 10월 무역이 재개된 이래 북한은 매달 1억 달러가 넘는 대중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월평균 무역적자는 약 1억3000만 달러였다. 북-중 무역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한 1998년부터 올해 4월까지 북한의 대중 무역 누적 적자액은 193억8068만 달러나 된다. 그런데 빚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중국이라고 무작정 북한에 퍼주진 않는다. 중국이 허용하는 적자 범위를 넘어서면 돈을 주고 사와야 한다.

2017년 유엔의 대북제재로 북한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광물, 수산물, 섬유제품 수출이 금지된 뒤 북한이 외화를 벌 방법은 극히 제한됐다. 3월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2055만 달러였는데, 이 중 가발과 인조속눈썹 제품이 796만 달러로 39%를 차지했다.

식량을 사올 돈도 없으면서 김정은은 요즘 정찰위성을 여러 개 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정찰위성 발사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한국이 내년까지 정찰위성 5기를 발사하는 데 들이는 예산은 약 10억 달러다. 북한은 인건비가 사실상 공짜이긴 하지만, 반도체 등 위성 발사에 드는 거의 모든 부품은 사와야 한다. 속눈썹 따위나 팔아서 충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런 데 쓰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공식 무역통계에 잡히지 않는 북한의 비자금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에 머무는 인력이다. 근로자의 경우 유엔 제재 이후 상당수 귀국했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1인당 상납액이 크진 않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종사자들은 얘기가 다르다. 현재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북한 정보기술자들이 활동 중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수천 명인 것은 확실하다. 2017년 313총국(옛 조선컴퓨터센터)이 중국에서 1000만 달러를 벌어 당 자금으로 바치자 김정은은 노동당과 무력부, 보안성, 보위성 등 각급 내각 기관에도 중국에 IT 인력을 파견해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에 기존보다 5, 6배 많은 IT 인력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5∼7명 규모로 중국 대도시의 아파트에 은신해 활동한다. 해킹과 가상화폐 탈취 등 온갖 불법 활동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김정은의 주머니로 송금한다.

지난해 5월부터 북한 내에서 코로나가 대유행해 더는 강력한 봉쇄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김정은은 지금까지 1년 넘게 해외 교류를 차단했다. 그래서 코로나는 구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IT로 벌어들이는 돈줄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북한 IT 인력은 모두 체류 기간이 만료돼 국경 봉쇄가 풀리면 귀국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파악하고 있는 중국이 귀국했던 인력이 다시 올 경우 받아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에겐 국경 봉쇄 해제는 가장 큰 돈줄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쌀 사올 돈도 떨어졌는데 마냥 봉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민들은 하루빨리 국경이 개방돼 중국과 무역이 재개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정은이 굶주려 아우성치는 인민의 분노를 언제까지 감당하며 버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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