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지의 허리를 가른다...대반격 나선 우크라, 자포리자 맹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에 대한 반격 및 방어 조치가 우크라이나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대반격이 시작됐음을 시인했다. 지난 5일 이후 미국·러시아 당국자 및 언론 매체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지만 젤렌스키가 대반격 사실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대공세’는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자포리자주를 비롯한 3개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제공한 전차 등 각종 무기를 앞세워 진격하는 반면, 러시아는 자포리자 일대에 길이 30㎞에 이르는 참호와 지뢰밭을 구축해 방어 중으로 알려졌다.
서방 주요 매체들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루한스크주 및 인근 바흐무트 동부, 도네츠크주 남부, 자포리자주 남부 등 세 지역을 중심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세 지역은 작년 2월 개전 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동부에 위치해 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공세가 벌어지는 곳은 자포리자 전선이다. 자포리자는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로 향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탈환에 성공한다면, 크림반도 일대를 고립시켜 러시아 병력을 양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규모와 강도 측면에서 자포리자 지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포리자주 오리히우시(市) 근방에선 독일 레오파르트2 전차와 미국 브래들리 장갑차 등 서방이 지원한 최신 무기들이 대거 동원된 모습이 포착됐다.
BBC는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탈환을 대반격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최대 도시 멜리토폴을 거쳐 아조우해의 항구 도시 베르단스크까지 진격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가 남북으로 길게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허리’ 부분을 파고들어가 둘로 쪼개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성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남부의 요충지 헤르손 일대의 러시아군은 물론 크림반도마저 고립시키면서 이 지역들을 미사일과 자주포의 사정권에 두게 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러시아군 입장에선 후방 보급 기지와 흑해 함대의 모항(母港)이 있는 크림반도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대공세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영국 국방부 산하 국방 정보국(DI)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48시간 동안 일부 지역에서 상당한 진격을 보이며 러시아군의 제1방어선을 뚫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유명 군사 블로거 세묜 페고프도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 오리히우 남쪽의 요충지 토크마크로 진격했다”며 “러시아군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의 우수한 광학 장비 및 전자전 장비로 무장해 야간 공격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핀란드 군사 분석가 에밀 카스테헬미는 “(기대보다) 공격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영국 DI 역시 “(상당수) 다른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느린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함께 내놓았다. 양측 기갑 장비의 손실 비율은 약 1:1로, 막상막하라고 알려졌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 남부 소치에서 러시아 관영 매체들과 만나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시작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서 “어제까지 5일 동안 전투가 계속됐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어디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상당한 손실에도 우크라이나군의 공격 잠재력은 여전하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작전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겠다”면서 “매일 다른 방향의 지휘관들과 연락하면서 긍정적 메시지를 받고 있다. 이를 푸틴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지난 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가 대반격 작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한 이후 우크라이나 측이 처음 대반격을 인정한 셈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정상이 일제히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이 시작됐다고 밝힌 것은 최전선의 전투가 점점 격렬해지는 가운데 전과(戰果)를 놓고 서로 여론전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 고위 인사들은 “별도의 대반격 개시 선언은 없을 것”이라며 대반격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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