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치는 삶의 문제에서 출발…연대로 외연 넓혀야”

기자 2023. 6. 1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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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기획 인터뷰 - 세계의 녹색 정치인들을 만나다


2023 세계녹색당총회(Global Greens Congress)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렸다. 다섯 번째 총회이자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린 이번 총회엔 세계 100여개국의 녹색 정당 소속 정치인, 활동가 등 700여명(해외 350여명, 국내 350여명)이 현장 참여했으며,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이번 총회는 창당 12년째를 맞는 한국녹색당의 첫 전당대회도 함께 열린 뜻깊은 자리였다. 한국녹색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양대 정당의 극심한 이념 대립과 권력 투쟁을 넘어 대안적 녹색 가치를 추구할 것을 다짐했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는 세계녹색당총회 한국 개최를 기념해 참가자 3명의 특별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들은 세대, 지역, 젠더를 대표하는 녹색 정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기후문제, 인권과 따로 볼 수 없어
개개인 요구에 기반해 나아가야”
사진 |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제니 리옹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원

리옹 의원(46)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유학생이었던 아버지와 앵글로색슨계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중국계 호주인이다. 대학생 대표, 호주 앰네스티 코디네이터, 연방선거 캠페이너 등 다양한 정치경력을 쌓았으며 2015년부터 주의회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소수자 권리 주장을 위해 일종의 기득권인 법적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배우자와의 사이에 일곱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 호주녹색당은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다. 정계에 얼마나 진출해 있나.

“태즈메이니아녹색당이 세계 최초로 창당되기도 했지만 2001년 세계녹색당 대회를 계기로 그린세대가 나타나고 급속히 성장했다. 지방의회 의석수를 비교해 보면 당시 4%에서 지금은 54%로 증가했다. 호주에서 녹색당이 성장한 계기는 액티비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즈메이니아에 댐 건설 문제가 불거졌을 때 몇몇 사람들이 주도한 운동이 일어났다.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건설회사들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데 저항한 활동가들이 녹색 저지선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녹색당 활동이 환경보다 넓은 지역공동체 중심 운동들과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녹색당의 정치적 성공이 이뤄졌다.”

- 발의한 법안을 보면 지역공동체 돌봄, 주거 평등, 차별금지 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국계 호주인의 권리를 찾고 나아가 아시아계 호주인 사회의 협력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시드니, 캔버라 등이 속한 뉴사우스웨일스는 이민 역사가 시작된 곳이어서 백인 이민자와 선주민의 갈등, 이민자 권리문제가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함께 유학생 등 비시민권자에 대한 처우가 악화돼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이 부족하다면서도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대신 개인투자자와 개발업자들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것도 문제다. 이민자 권리와도 얽혀 있는데 주택 부족과 가격 상승을 이민자 탓으로 돌린다.”

- 다른 진보정당과 녹색당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은 무엇인가.

“다른 진보정당들도 주택, 보건, 교육 등의 문제를 다루지만 투표권을 가진 호주 시민들에게 집중하는 데 비해 녹색당은 이민자, 난민 등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의 인권, 평등, 존엄까지 보장하고자 노력한다. 또 개발과 이익에 맞서 자연자원 보존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석탄채굴 문제에 강경하게 반대한다.”

- 호주는 인근 뉴질랜드 및 섬 지역들과 더불어 산불, 홍수, 해수면 상승 등 기후재난이 심각한 상태인데 정부의 대응은 어떤가.

“호주는 땅이 넓어 극도의 더위, 물난리 등 지역마다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전 보수 정부는 혹독한 날씨가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지금 정부는 그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약간 진보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여전히 필요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기후문제를 사회정책과 연결해 다루는 게 중요하다. 뉴사우스웨일스의 리즈모어 지역을 예로 들면, 주택 사정이 열악하니까 홍수가 나면 집이 파괴되고 주거환경은 더 망가진다. 인권과 기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 주목해서 활동하는 게 녹색당의 입장이다. 석탄광산을 무조건 닫으라고 하기보다는 정부가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광산노동자들을 그쪽으로 재배치하라고 요구한다. 경제정의가 이뤄져야 기후정의도 가능하다.”

- 흔히 녹색당의 목표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한다. 분단국가이자 산업국가로서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더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녹색당이 어떻게 정치적 발판을 만들 수 있을까.

“너무 쉬운 질문이다(웃음). 녹색당의 주장은 분명 급진적이다. 그러나 전혀 이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지구를 파괴하면 안 되고 무상교육과 안전의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깨끗한 물과 공기, 식량, 집을 원한다. 모두 현실적 요구들이다. 이데올로기적 대결 구도를 탈피해서 개개인의 요구에 바탕을 두고 나아가면 된다.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가 우리의 원칙이다. 글로벌 정당인 만큼 다른 국가의 성공사례를 공유하길 바란다.”

“비서구·젊은 세대 목소리 집중
기업·국가에 더 큰 책임 지워야”
사진 |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잔마제이 티와리 세계청년녹색당 사무국장 (인도)

티와리(26)는 녹색 계열 정당인 UKPP(우타르칸드 변화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면서 세계청년녹색당(Global Young Greens)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10대 중반부터 녹색당 활동을 시작한 티와리는 GYG 아시아·태평양그룹의 지역 코디네이터와 2021년 제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의 GYG 워킹그룹 의장을 맡는 등 일찍부터 국제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 10대부터 청년녹색당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인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곳도 기후재난이 심각하다. 가족이나 지인 가운데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서 녹색운동을 하게 되었다.”

- 유엔이나 COP 중심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나치게 서구중심, 기업중심이고 탄소환원주의라는 비판도 많은데.

“물론 여러 한계가 있지만 비서구,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낼 곳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소중한 플랫폼이다. 글로벌 영그린즈로서 두 가지에 집중한다. 첫째, 유엔을 비롯한 다양한 기회에 기후대응 관련 비서구 젊은 세대 입장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둘째, 넷제로라는 말을 비판한다. 넷제로는 완전한 제로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업이나 국가들에 빠져나갈 구멍을 준다. 더 구속력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 지금 소속된 UKPP 청년조직은 주로 어떤 의제를 다루나.

“국내적으로는 실업이나 중앙·지방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시민기후행동 등에 집중한다. 국제적으로는 대륙별 글로벌영그린즈와 협력해서 남반구의 목소리를 더 반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 UKPP 출신 정치인들이 얼마나 의회에 진출했나.

“중앙정부에는 아직 없지만, 주정부나 지방정부로 가면 7~8명 정도가 활동한다.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 인도의 여성인권 문제가 종종 국제뉴스에 나온다. UKPP의 입장은.

“여성 인권을 포함해 사회 전반의 갈등, 폭력사태에 관심이 많다. 여성 당원이 50%를 넘는다. 특히 2014년 보수정부 집권 이후 시민사회 공간이 줄어드는 걸 큰 문제로 여긴다. 인도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제정된 법률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활동가들이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더라도 구금, 체포될 수 있고 활동 자체가 큰 제약을 받는다.”

- 인도 정부가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전반적 기후대책은 어떤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 한계가 있다. 원래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한다고 발표했다가 COP26에서 2070년으로 연기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 한국도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련 정책이 계속 후퇴하는데 누가 더 기후악당인가.

“요즘은 일본이 제일 기후악당이다(웃음). 오염수 방류는 아시아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으면서 인도는 봄의 홍수와 여름의 가뭄을 겪고 농업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이런 부분에서 정부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가 주요 작물에 대한 최소지원가격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모든 작물이 포함되지 않고 지원대상도 제한적이어서 농부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인도 인구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발전하는 중인데 남반구 입장에 서는 게 맞나.

“인도가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극화에 따른 극빈층의 상태를 보면 남반구가 맞다. 14억 인구 가운데 65~70%가 아직도 식량 보조금을 받고 있다.”

- 이번 총회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미래계획도 궁금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을 만나서 글로벌 협력구조를 만들고 세계녹색당의 메시지를 전파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하도록 동기부여하고 압박하는 것이 목표이다. 미래계획은 의회 의원이 되는 것이다. 현재 인도는 소선거구제라서 비용이 많이 들고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이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의정 활동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보호무역 아닌 ‘공정무역’이 중요
원전엔 반대하는 게 일관된 입장”
사진 |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유럽의회 의원 (독일)

뷔티코퍼 의원(70)은 참가자 중 가장 연륜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1984년 녹색당 소속으로 고향인 독일 하이델베르크 시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바덴뷔템베르크 주의원, 유럽녹색당 독일대표와 유럽녹색당 대표(2012~2019)를 지냈으며 2009년부터 24년째 유럽연합의회 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통으로서 유럽연합의회에서 국제관계와 무역정책을 맡고 있다.

- 독일이나 유럽 녹색당이 전통적인 반전평화의 가치를 저버리고 나토 입장을 지지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잘못된 질문이다. 녹색당이 무조건 전쟁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코소보 사태에서도 긴 토론이 벌어졌고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나토 개입을 찬성했다. 현재 상황은 분명하다. 러시아는 유엔의 세 가지 원칙, 즉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지배권(national sovereignty), 영토적 통합성(territorial integrity), 외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권(defense against foreign aggression)을 침범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싸우는 것은 정당하다. 푸틴의 목적은 우크라이나의 멸절이고 명백히 식민주의적이다.”

- 유럽연합은 중국의 보호무역 정책에 반대해 왔다. 최근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감축법 제정 등 보호무역으로 돌아서고 있다. 녹색당은 전통적으로 글로벌 경제와 자유무역에 반대해왔는데 당신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많은 녹색당원들이 놀라겠지만 나는 자유무역에 찬성한다. 이 단어는 오용되고 있다.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이 양립하지 못하는 것처럼 돼 있는데 두 가지는 같이 가야 한다. 유럽녹색당 안에서도 무역에 대한 입장은 다른데, 프랑스의 경우 보호무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국 국영기업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유럽시장에서 덤핑행위를 하는 것에서 보듯 보호무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다자간의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촉진하는 기관이 WTO인데 잘못된 시스템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양자간 무역체제인 FTA를 중심으로 인권, 환경 등 관련 조항을 넣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 유럽연합의 일부 녹색 정당은 원자력발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된 논쟁이 있나.

“원전 반대는 세계녹색당의 일관된 입장이다. 현재 원전에 찬성하는 곳은 핀란드녹색당 한 곳이다. 10년 전만 해도 반대했는데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찬성하고 있다. 각자 자율성이 있지만 그들이 입장을 바꾸기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중이다.”

- 유럽에서 녹색당, 녹색정치 그룹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먼저 내가 속했던 독일녹색당을 보면, 선거에서 득표율이 5%만 넘으면 1석을 배정하기 때문에 문턱이 낮다. 또 다른 국가들보다 지역의회의 권한이 크기 때문에 소수정당인 녹색당이 진출하고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반면 프랑스는 문턱이 10%이기 때문에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이 어렵고 이탈리아는 2%라서 문턱은 낮지만 정당 내부에서의 결속력이 떨어진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보더라도 유럽녹색당 외에 EFA(European Free Alliance)라는 조직이 있어서 소수정당, 지역정당 대표자들이 범녹색정책을 만드는 데 공조한다.”

- 바쁜 일정 가운데 이번 총회에 참여한 동기는 무엇인가.

“유럽의회 의원에서 은퇴할 예정이어서 이번 총회가 정치인으로서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전 세계 녹색당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녹색당의 가장 큰 적은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 고쳐야 한다. 녹색당만이 환경을 생각한다는 자기예외주의도 고쳐야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녹색당은 영원히 소수일 수밖에 없다. 녹색당은 환경 이슈에만 매몰되지 말고 인권, 민주주의, 경제 전반의 이슈를 다룸으로써 더 많은 지지를 얻어야 한다. 마지막 포인트는 진영에 속하면 안 된다. 진보, 보수 진영이 아니라 자기만의 환경 진영을 만들어서 활동해야 한다. 당 지도부 결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사회운동과 연대해서 외연을 넓히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대담자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대표이자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편집인.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경향신문 ‘세상읽기’ 칼럼 필진이다.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대표·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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