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정글서 40일…숲을 배운 13세 맏이 덕에 모두 살았다

최서은 기자 2023. 6. 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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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추락 후 실종됐던 콜롬비아 네 남매 ‘생환’
구조되는 순간 구조 요원들이 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지난달 1일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던 아이 4명을 발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쁨에 얼싸안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가운데)이 10일 콜롬비아 보고타 군사병원에서 구조된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얼싸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어머니 포함 성인 모두 사망
남미 열대우림 원주민 출신
버섯 등 구분할 줄 아는 첫째
카사바 가루·과일 등 구해
극한 환경서 동생들 보살펴

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경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콜롬비아 어린이 4명이 보호자도 없이 행방불명된 지 40일 만에 무사히 발견됐다. 스페인어권 매체 EFE통신과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아마존 정글에서 지난달 1일(현지시간) 실종됐던 콜롬비아 어린이 4명이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40일 만인 지난 9일 발견됐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엔진 고장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신원은 레슬리 무쿠투이(13), 솔레이니 무쿠투이(9), 티엔 노리엘 로노케 무쿠투이(4), 크리스틴 네리만 라노케 무쿠투이(1)로, 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어머니와 조종사 등 성인 3명은 모두 사망했다. 실종 당시 만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막내는 정글에서 첫돌을 맞았다.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콜롬비아 당국은 실종된 이들을 찾기 위해 헬리콥터 5대, 탐지견, 수백명의 군인과 지역 주민 2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수색대가 추락지점 인근 숲속을 샅샅이 뒤져 유아용 젖병, 머리끈, 기저귀, 먹다 남은 과일 조각 등을 찾아내면서 아이들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다.

아이들이 무사히 발견되자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온 나라의 기쁨’이라며 “이들의 이야기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 대변인은 발견 당시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매우 약해져 있었다”며 “며칠이 더 지났더라면, 그들을 살아 있는 채로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남매가 먹을 것도 부족하고 독사들이 우글대는 아마존에서 어른도 없이 어떻게 한 달 넘게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첫째인 레슬리가 동생들을 보살피며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남미 원주민 후이토토족 출신으로, 열대우림 지역인 아마조나스 지방의 아라라쿠아라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왔다. 아이들의 삼촌에 따르면, 레슬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고 길을 찾았고,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별하는 등 ‘정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를 통해 레슬리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동생들도 모두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엘파이스는 분석했다.

아이들의 삼촌인 피덴시오 발렌시아는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그들은 (잔해에서) 파리냐를 꺼냈고, 그것으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파리냐는 아마존 지역에서 먹는 길쭉한 고구마 모양 작물인 카사바의 가루다. 발렌시아는 아이들이 이후에는 과일이나 씨앗을 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구조당국이 수색 작업 중 공중에서 떨어뜨린 생존 키트들도 아이들이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의 아마존 원주민 단체는 트위터에서 “아이들이 생존했다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연습한 자연환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열대림생태학 교수인 카를로스 페레스도 “같은 나이대의 서양 어린이들이었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가진 숲에 대한 지식이 생존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트로 대통령과 이반 벨라스케스 고메스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10일 아이들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찾았다. 현재 어린이 4명의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중앙군사병원 의사인 카를로스 린콘 아랑고 장군은 “아이들이 긁힌 상처 등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며 “2~3주면 퇴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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