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는 힘[찌릿찌릿(知it智it) 전기 교실]
아이들이 일찍 잠든 날에는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같이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늘어나면서 편하게 집에서 리모컨 하나로 접속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가 전보다 무궁무진해진 덕이다.
그런 콘텐츠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든 작품들이다.
우리는 지난 3년여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면서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불편해진 생활을 직접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유지하고, 가능하면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로 새로운 것이 개발된 경우, 처음에는 사회적 관심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것이 점차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사회의 일부로 흡수되면 사람들의 눈에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현대인들은 사무실이나 집에서 스위치를 올리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양한 전기 기기를 구매해 사용하는 것은 전기의 원활한 공급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한국의 전력망이 지구적 또는 국가적 재난 등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아마도 공상과학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기를 주문하고, 집으로 배터리팩을 배달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기억해 보면, 한국에서 전기 사용이 보편화하고 정전 횟수나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은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서울 올림픽을 치른 1980년대 후반에도 가끔 동네에서 전기가 나가면 자연스럽게 하얗고 긴 초를 찾으려고 서랍을 뒤적였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까지 전달하는 과정은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하며, 쉽지 않은 과정이다. 특히 전력 공급 방식이 다양화되고, 전력 수요도 이전보다 변동성이 커져 기존의 관리와 제어 기능을 넘어선 ‘경우의 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 최근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거의 완벽하게 전기가 제공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기의 끊김은 받아들이기 힘든 기술적인 결함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행동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잘하다가 못한 마이너스 변화의 절대적인 크기가, 못하다가 잘한 플러스 변화의 절대적인 크기보다 작더라도 전자의 변화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축구나 야구 같은 경기에서 1 대 0으로 앞서고 있다가 1 대 1로 동점이 된 경우와, 0 대 1로 뒤지고 있다가 1 대 1로 동점이 된 경우에 대해 최종 상황은 같더라도 관중이나 선수가 느끼는 감정이나 효용의 크기는 다른 것이다.
아무쪼록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기술의 발전과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이 있음을 기억하고, 또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당연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해서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거름이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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