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기적의 ‘정글 40일’ 생존기
영국인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무인도에 추락했다. 소년들은 나름의 질서 체계를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섬은 무법천지가 된다. 1954년 윌리엄 골딩이 쓴 <파리대왕> 이야기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가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파리대왕>은 쥘 베른이 쓴 <15소년 표류기>의 악한 버전쯤 되지 않을까.
과연 인간이 실제로 이런 일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발굴한 사례를 보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1965년 남태평양 통가의 여섯 소년이 폭풍우를 만나 무인도 아타섬에 15개월간 고립됐다. 1966년 10월6일자 호주 신문 디 에이지에 이 소년들을 다룬 얘기가 ‘통가 조난자들의 결말을 보여주는 일요일’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소년들은 팀을 나눠서 일했고, 밭을 가꾸었다. 섬에는 빗물을 모으려 속을 파낸 나무둥치·체력단련장도 있었다고 한다. 소년들은 협력한 덕분에 무사 생환했다. 사회적 동물이고 생각하는 인간의 생존력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주말, 아마존 정글에서 실종된 콜롬비아 4남매가 40일 만에 무사히 발견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13세 맏이와 9세·4세, 11개월 된 막내까지 4남매다. 모두 건강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이들이 탄 경비행기는 지난달 1일 아마존 정글에서 추락했다. 그 후 수색대원들이 기체에서 아이들의 엄마와 조종사 등 3명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4남매의 흔적은 없었다. 수색대가 기저귀, 젖병, 먹다 남은 과일 조각 등을 발견하면서 아이들이 맹수가 득실한 곳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다. 군당국은 “더 움직이지 말라”고 외치는 아이들 할머니 목소리를 녹음해 내보내면서까지 구조를 이어갔다. 수색과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당국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존 정글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남미 원주민 후이토토족 출신인데, 어릴 때부터 숲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결국 첫째 누나의 ‘정글 지식’이 아이들을 살린 셈이 아닐까. 아이들 구조 작전명은 ‘에스페란사’(스페인어로 ‘희망’)다. 작전명대로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아이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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