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안 좋은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

한겨레 2023. 6. 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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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하이디 부허, <작은 유리 입구>, 1988, 거즈, 부레풀, 라텍스, 340×455㎝, Courtesy of the Estate of Heidi Bucher.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서울 종로3가 익선동에 가보니, 사람 둘이 나란히 서면 꽉 차는 폭 좁은 골목길들이 있고, 그 양옆으로 모자나 양말, 머리끈을 파는 아기자기한 점포가 즐비하다. 한옥을 개조한 고즈넉하면서도 세련된 찻집이나 빵집, 다국적 식당들도 있어서, 먹고 구경하며 걸어 다니기에 즐거운 동네다. 그런데, 여기는 신생 카페거리는 아니다. 오랜 세월의 변화를 겪어온 유서 있는 터다. 나는 서울 태생으로 어린 시절에 종종 이곳을 지나다녔는데도 장소에 대한 옛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주소를 찾지 못하는 몇몇 이미지들만 둥둥 떠다닌다. 기억 속 이미지 조각들을 잘 끼워 맞추면 나만의 추억으로 닻을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옛날 허리우드극장이나 피카디리극장에 왔을 때 기념사진이라도 한방 찍어두었더라면 기억을 뭐라도 끄집어낼 수 있을 텐데.

기억은 주관적이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봐도, 제각각 다른 것을 기억해낸다. 보았던 순간과 기억하는 지금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저마다 다른 불순물들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면 글이든 사진이든 관련된 기록물을 찾아 해석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흐릿하고 출처를 잊은 기억을 되살릴 때도 상당 부분을 기록 찾기에 할애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할까. 오직 본 것에만 의존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모니데스라는 사람은 어떤 연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을 기억해내야만 하는 사명을 받들게 됐다. 연회장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참석자 전원이 사망했고, 하필 망자들을 본 유일한 생존자가 그였다. 누가 왔는지, 또 어느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시모니데스는 머릿속에 잔류하는 이미지들을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재배치했다고 한다.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개인의 경험 속에 조각조각 박혀 있는 기억의 잔상은 많다. 20세기의 학자들이 이런 불확실한 잔상들의 진실을 규명할 의지를 갖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홀로코스트였다. 사건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사건에 대한 두려움만을 떠올렸을 뿐, 사건의 경위와 세세한 상황은 기억하지 못했다. 극한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상기하기도 전에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언어를 상실하고 만 것이었다.

기억을 회복시키고 그 기억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은 망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무 제목도 없이, 저장하지도 못한 채 날아간,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파일을 어떻게 찾아내어 삭제할 수 있겠는가. 기억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지우개로 지우기도 어렵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장소나 사물에 깃들어 있다면 일부는 제거가 가능해진다. 가령 누군가 헤어진 연인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다면, 상대방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할까? 그동안 나누었던 문자, 함께 찍었던 사진 등 기록을 지우고, 둘만의 의미가 담긴 물건도 버리지 않겠는가.

스위스 출신의 하이디 부허(Heidi Bucher, 1926~1993)는 이런 의식을 행한 미술가이다. 그는 어떤 장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반대로 몸서리치며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기억의 장소도 있다고 자백한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가 진행 중이다. <작은 유리 입구>라는 전시작은 어떤 공간에 겹겹이 스며 있는 기억을 한꺼풀 뜯어낸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퍼포먼스 영상을 보면, 부허는 아버지의 집이나 정신과 의사의 진찰실 등 자신에게 억압적인 경험을 남긴 건물을 골라, 그 내부에 액체 라텍스를 부어 표피를 떴다. 그리고 문과 벽에 착 달라붙은 마른 거죽을 온몸의 힘을 다 써 맹렬하게 뜯어냈다. 그곳에 묻어 있는 나쁜 기억을 벗겨내어 내던져 버린다는 의도에서다.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기억의 문제를 미술로 기록하고 미술로 해소했다는 점에서 부허는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한, 망각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오직 기록된 것만이 잊힐 수 있다.”

20세기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펼쳤던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아름다운 추억이라 부르는 것은 나쁜 기억을 잊고 걸러내어 기억을 재배치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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