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가 학대를 막을 수 있을까

한겨레 2023. 6. 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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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회의 자료를 살피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 복지국가 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엔 사회서비스 공급과 관련해 국가의 역할을 직접적 책임자·공급자에서 관리자로 조정하고 양질의 민간 공급자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민관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사회서비스 고도화’ 등이 포함됐다.

과연 그의 복지국가 전략은 성공할까? 야당과 진보성향 시민단체, 노조는 일제히 이를 ‘복지민영화’ 시도로 규정하면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꼭 민영화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서도 윤 대통령의 복지국가 전략의 운명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의 시금석이 될 만한 사례가 경남 진주에서 최근 발생했다.

윤 대통령이 복지국가 전략을 발표한 날, 진주시청에서는 장애아동을 전담으로 하는 관내의 ㅍ어린이집과 그 원장·교사에게 각각 6개월 운영정지 및 자격정지 처분이 결정됐다. 앞서 이 어린이집은, 발달장애가 있는 4~12살 아동 1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6~8월에만 500건 이상의 신체적 학대가 자행됐음이 거기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확인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달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 등 9명의 관계자가 기소되고 그중 2명이 구속됐다. 진주시의 결정은 이에 따른 것이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하면 그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은 이미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로부터 제시되고 있다. 문제가 인지된 지 9개월이 흐른 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행정적 처분이 내려진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처분 기간이 끝난 뒤 가해자들이 같은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재창업·재취업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를 막고자 이번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은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장애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학대한 가해자에 대한 신상 등을 공개하는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국민동의청원서를 내고 5만명의 동의를 모으는 중이다.

다른 한편, 이번 사태에 내포된 구조적 성격도 보아야 한다. 지난 20여년 사이 국가를 통한 보육서비스가 빠르게 확대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어린이집에서의 아동학대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았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신고·인정된 아동학대 사례 3만7605건 가운데 어린이집 교사를 포함한 공적 책임을 지는 대리양육자에 의한 학대가 3137건에 달했다. 한편 이번 진주의 사례는 보통의 어린이집 아동학대와 구별되는 면도 있다.

피해자가 의사 표현에 대체로 서툰 장애아동이기 때문이다. 통계는 어떨까? 2021년에 신고·인정된 장애인 학대 사건 1124건 가운데 피해자가 17살 이하인 경우는 166건이고, 이 가운데 보육교직원에 의한 학대는 5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수치를 보고 안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외려 공적 성격을 갖는 보육기관에서의 장애아동 학대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학대 행위가 담긴 영상을 보고도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몰랐다’고 반응했다고 한다. 이런 무심함이 사태의 구조적 성격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보면 윤 대통령의 복지국가 전략이 진주의 장애아동 학대 사건에 별다른 해결책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애초 장애아동 돌봄이 민간업자들의 참여를 통해 질적으로 향상될 성질도 아니고, 어린이집 전체로 보더라도 민간 주체들의 참여가 적다고 볼 순 없다. 2022년 현재 3만983곳의 어린이집 가운데 2만2722곳이 민간 어린이집임을 고려하면, 외려 지나친 경쟁이 문제 아닐까?

다른 한편, 이번 사건을 국가의 책임성과 역량 부족의 결과로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 진주시는 해당 어린이집의 문제가 확인됐는데도 경찰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6개월 가까이 징계를 미뤘는가? 또한 어떻게 ㅍ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는 지난해 기관인증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는가? 이 평가의 현장실사(6월)와 발표(8월) 모두 학대가 한창이던 시기에 이루어졌는데도 말이다. 이번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향후 복지국가 전략을 재설정하길 윤 대통령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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