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없으면...” “명장病” 과르디올라, 조롱 떨치고 명장 반열
리그·FA컵 이어 3관왕
‘12골’ 홀란, 득점왕
“지쳤지만 평온하기도 하고, 당연히 만족스럽죠. 빌어먹을 트로피, 정말 어렵네요.” 페프 과르디올라(52·스페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감독은 경기 후 격양된 말투로 여러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맨시티는 언제쯤 유럽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우승하느냐’고 따져 물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간의 설움이 녹아있었다. “이 대회는 동전 던지기와 같다. 우승팀이 하늘의 별에 새겨져 있지 않았나 싶다”고도 말했다. 천하의 명장도 천운(天運)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여정이었다.
맨시티가 유럽 최정상에 올랐다. 맨시티는 1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2022-2023시즌 UCL 결승전에서 인테르 밀란(이탈리아)을 1대0으로 누르고 고대하던 빅이어(UCL 우승컵)를 품에 안았다. 후반 23분 로드리(27)가 중앙에서 강력한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골 그물을 갈랐다. 인테르는 맹공을 퍼부었으나 맨시티 골키퍼 에데르송(30)의 신들린 선방에 잇따라 막혔다. 1894년 공식 창단한 맨시티의 첫 빅이어. 앞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차지한 맨시티는 유럽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메시 없으면...” 조롱받던 과르디올라
맨시티는 20세기 후반 1~2부를 오갔고 1998-1999시즌엔 3부까지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 EPL로 돌아왔지만 중·하위권을 전전했다. 변화의 기점은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의 갑부 셰이크 만수르(53)가 팀을 사들였다. 석유 자본을 등에 업은 맨시티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스타들을 영입했고, 2010-2011시즌부턴 줄곧 4위 안에 들었다.
2016년 부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를 한 단계 더 도약시켰다. 앞서 UCL, 스페인 라 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연거푸 차지한 명장. 2008년 인수 이후 맨시티는 7번의 EPL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중 다섯 번을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일궜다. 2018-2019시즌엔 EPL과 FA컵,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국내 트레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도 맨시티 사령탑으론 UCL에서 매번 고개를 떨궜다. 2020-2021시즌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첼시(잉글랜드)에 패했고, 다음 시즌엔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무릎을 꿇었다.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36·인터 마이애미)와 사제(師弟)의 연을 맺고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UCL 우승컵을 들었던 과르디올라에게 “그는 메시 없이는 안 된다”는 조롱이 잇따랐다.
UCL은 변수가 많은 단기전이라 감독 역량과 판단력이 더욱 주목받는데, 중요한 승부처에서 늘 고배를 마시는 건 과르디올라 감독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상대를 의식한 지나친 전술 변화에 “명장병에 걸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득점력이 뛰어난 일카이 귄도안(33)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리는 변칙 전술을 썼다가 첼시에 0대1로 무릎을 꿇은 2021년 UCL 결승이 대표적이다.
◇”퍼거슨과 나란히...영광”
맨시티는 올 시즌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23)을 영입하며 더 강해졌다. 골 냄새를 맡는 능력이 탁월하고 체격(195cm·88kg)이 좋은 그는 시즌 초반부터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골을 선물했다. 플레이메이커 케빈 더브라위너(32)와 홀란의 조합은 알아도 막을 수 없었다. UCL서도 이들은 빛났고 맨시티는 대회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날 홀란 역량이 극대화할 수 있는 3-2-4-1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홀란은 골은 넣지 못했지만 날카로운 침투 후 슈팅으로 수비에 균열을 냈다. 위기도 있었다. 수비 실책으로 어이없이 골을 허용할 뻔했지만 에데르송이 겨우 막아냈다. 이때 과르디올라 감독은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싼 후 털썩 주저앉았다. 상대 헤더가 골대에 맞는 등 운도 따랐다. 롤러코스터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간 과르디올라 감독은 시상식에서야 감정을 가다듬고, 흐뭇하지만 붉은 눈시울로 선수들이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 걸 지그시 바라봤다.
UCL 우승을 포함한 유럽 트레블은 1966-1967시즌 스코틀랜드의 셀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번 있었다. 두 번 달성한 사령탑은 과르디올라가 유일하다. 그는 2008-2009시즌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3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 그는 “올 시즌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작년 월드컵 이후 한 걸음씩 나아갔고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1998-199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유럽 트레블을 달성했던 앨릭스 퍼거슨(82) 경은 경기를 앞두고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감동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건 큰 영광”이라고 했다. 홀란은 12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더브라위너는 도움왕(7도움), 결승골을 넣은 로드리는 경기 MVP(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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