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이어지는 영화제 위기, 어떤 리빌딩이 필요한가
새 동력 못 찾고 구시대적 거버넌스 한계 드러나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2022년 말부터 서서히 퍼지고 있는 한국 영화에 대한 위기론은 주로 한국 영화의 심각하게 부진한 흥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그 위기는 단지 영화 작품 개별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전주, 부산과 같은 대형 영화제를 비롯해 인디포럼, 원주옥상영화제 같은 작은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회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영화제 역시도 무수한 위기와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따지면 영화제의 규모에 따라 논란의 성격도 달라진다. 대형 영화제에 제기되는 문제의 다수는 영화제라는 조직을 놓고 벌어지는 일종의 권력 주도권과 운영 차원의 민주성을 놓고 벌이는 논란의 성격이 강하다. 가장 먼저 구설수가 불거진 행사는 전주국제영화제였다. 2022년 12월 15일 영화제의 신임 집행위원장 인사에서 당시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었던 민성욱, 그리고 배우 정준호를 공동으로 위촉한 것이 논란이 된 것이다.
민성욱은 원래도 부집행위원장이라는 직책이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제가 처음 출범했던 2000년부터 꾸준히 영화제 조직에서 함께 했던 일종의 영화제 내부 출신인사이다. 문제의 포인트는 정준호였다. 이전에도 강수연, 방은진 같이 배우 출신 영화인이 영화제나 각 지역별 영상위원회의 수장을 맡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러한 높은 직책으로 위촉을 받을 때에는 이미 배우 활동 이상으로 조직과 관련된 활동을 수행했기에 큰 문제로 지적받지는 않아왔었다. 그러나 정준호는 배우 활동 이상으로 영화제의 운영과 연결지을 수 있는 행보를 보였던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정준호의 공동 집행위원장 선임에 대한 의문이 커져만 갔다. 게다가 딱히 정준호가 영화제에서 주로 취급하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와 관련된 행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후 정준호의 집행위원장 위촉에 우범기 전주시장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배우 권해효, 전 집행위원장 민병록 등 본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에서 영화인 몫으로 배정된 3인의 이사가 정준호의 집행위원장 선임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사퇴했다. 전주시의회에서도 전주시장의 개입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전이 오고갔다. 영화제 개막 전 여러 차례의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자리를 통해 정준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우려를 씻어내도록 노력하겠음을 강조했지만,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영화 대신 정준호의 모습이 강조되는 홍보물이 등장하자 한동안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의 전주국제영화제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영화제 내부의 운영이 과연 적절했는지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할 내부 진단을 위한 토론회나 간담회 등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전주, 부산, 2023년 대형 영화제에서 터지는 영화제 민주주의의 위기
하지만 전주국제영화제가 폐막한 지 얼마 안 된 5월9일, 이번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임시총회에서 새롭게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신설하고, 초대 운영위원장으로 조종국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을 임명한 것이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부산일보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무나 회계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만들어 업무를 분담하고자 직책을 개편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지만, 무척이나 이례적인 직책이라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대학교 시절은 물론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창기 시절부터 이용관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었던 인사라는 점에서 영화제를 사조직화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의 정상 개최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다. 조종국이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이틀 뒤인 5월11일에는 허문영 집행위워장이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허문영은 사퇴 사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이용관 이사장의 일방적인 운영위원장 직책 신설 및 측근 임명에 대한 항의적 성격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이용관 이사장도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올해 영화제를 마친 뒤 퇴진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이 발언은 더욱 논란을 가속화시켰다. 부산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지역 영화계에서 이용관 이사장과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5월25일에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는 조종국 운영위원장에 대한 사퇴와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권고하는 결론이 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또 다른 국면으로 번져 나갔다. 5월31일, 일간스포츠가 단독 보도를 통해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수년간 영화제 직원에게 성폭력을 가했으며. 영화계 성평등 기구이자 민관 합작의 성격으로 설립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을 통해 해당 문제를 제보하고 법률적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알린 것이다. 이용관과 허문영 사이의 갈등은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 조직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사건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본래 허문영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했던 이사회도 6월2일 재차 임시회를 열어 허문영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허문영의 사표를 수리하는지, 이미 언론 보도는 물론 든든을 통해서 해당 문제에 대한 조사 및 피해자 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허문영의 성폭행 문제에 어떠한 입장이나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후 든든은 영화제에 이러한 방식의 공표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권고를 영화제에 보냈지만, 영화제는 여전히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다시 일간스포츠가 6월8일 단독 보도하며 알려졌다. 영화제는 상황 수습을 위해 혁신위원회 설치와 그 구성을 논의할 간담회를 준비하기로 했지만, 부산 지역 영화계는 문제의 근원인 이용관 이사장이 있는 이사회가 혁신위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간담회 불참을 선언해 간담회는 연기되는 등 파행은 게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디포럼, 인디다큐페스티발, 원주옥상영화제, 고사해가는 작은 영화제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제 내부의 권력과 운영 차원의 민주성 문제로 불거진 문제에 직면해있다면, 그보다 작은 영화제들은 이와는 또 다른 문제들에 봉착해있다. 영화제의 지속적인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동력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2020년 행사를 끝으로 무기한 운영 중단 중인 인디다큐페스티발, 2021년 행사를 끝으로 정기 영화제 개최가 중단된 인디포럼 영화제가 그 사례들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001년부터 개최되었던, 한국에서 유일하게 '독립 다큐멘터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제를 표방했던 행사였다. 인디포럼은 현재 한국 독립영화를 상징하는 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보다 훨씬 빨리 1996년부터 비주류 영화인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만든 독립영화제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녀왔던 작은 영화제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두 영화제 모두 근래 운영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려왔지만, 코로나-19의 유행은 영화제의 지속적인 운영에 더욱 큰 타격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2020년 최대한 정부의 코로나-19 규정을 지켜 평소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영화제를 마친 뒤에, '팬데믹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영화제를 지속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새로운 동력을 갖추기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여 잠정적으로 영화제 개최 및 사무국 운영을 중단한다는 공지를 내었다. 그러나 그 '잠정'은 2023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면적으로 영화제를 해산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금 영화제를 이어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많은 이들이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마련하고자, 올해 3월 말에는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축이 된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개최되었지만 지속적인 개최 여부는 보장되지 않은 행사였다. 인디포럼 또한 2021년 본 영화제 이후 2022년에는 영화제 개최를 중단하고, 대신 이전부터 진행하던 월례 상영회를 한동안 꾸준히 이어나갔지만 2023년에는 그 조차도 중단된 상황이다.
오래된 독립적 성격의 영화제들이 이렇다 할 지속적이며 새로운 동력원을 찾지 못하고 불이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동력원이 될 것을 다짐하는 영화제들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지자체 거버넌스의 한계로 삐그덕거리고 있다. 지난 2017년에 처음 개최된 원주 지역에서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 등으로 다양한 영상 미디어 활동을 펼쳤던 이들이 만든 원주옥상영화제는 올해 행사를 매우 힘겹게 준비하고 있다. 원주시의 비협조로 강원영상위원회의 강원도 내 영화제 지원 사업 자체를 신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각 영화제가 강원도 내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임을 증명해야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원주시가 이 서류를 발급해주지 않은 것이다. 원주시는 영화제의 공동 주체인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 이제는 센터 내부에 잇는 자체 영화관을 활용해달라는 등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불승인 사유를 공문에 기재했다.
분명 2022년까지 큰 문제 없이 원주시와 협조적으로 진행되었던 영화제였는데, 갑자기 원주시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제 측에서는 명시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많은 영화인들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원주시장 교체를 지적하고 있다. 이전 10년 넘게 원주시장을 역임하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원창묵 시장이 3선 연임 제한으로 불출마한 뒤, 새롭게 당선된 국민의힘 소속 원강수 시장이 이전 시장의 정책을 뒤엎는 과정에서 문화 정책도 모조리 근본부터 뒤집고 있다는 점이다. 원주옥상영화제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를 벌인 이후 원주시, 그리고 원주시의회는 오랜 시간 원주의 오래된 영화 문화를 대표하며 복원와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던 원주 아카데미극장 건물을 철거해 주차장을 만들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상황이다. 착근되지 못한 문화 정책과 민관 거버넌스는 이렇게 영화제, 그리고 지역의 영화 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크기만 큰 영화제가 아니라, '건강하고 오래가는' 영화제를 위해서
이렇게 큰 영화제도, 작은 영화제도 모두 위기에 놓여 있다. 위기의 성격도, 근원도 모두 제각기 다르지만 한국 영화는 단순히 '영화의 흥행 결과' 차원에서의 위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영화제가 한국에서 처음 정착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영화제가 더 이상 현재의 방식으로는 존속할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대형 영화제는 영화제가 개최되는 지자체의 의향에서 독립적이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편, 근래 부산국제영화제가 보이는 낯뜨거운 문제의 연속은 영화제 내부가 지속가능한 순환적-민주적 운영이 아니라 내부의 이권다툼과 권위주의적 체제가 고소란히 반복되고 있음을 함께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작은 영화제들은 애시당초 지니고 있는 경제적, 상징적 자본 자체가 적으므로 이런 이전투구와는 거리를 두고 지만, 이전처럼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영화제의 운영에 동참하는 식의 운영으로는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속속 드러내는 상황이다. 동시에 다수의 영화제가 정부 및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정착되지 않는 지속적인 민관 거버넌스의 문제도 더욱 영화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는 물론, 주기적으로 영화제에 대한 붐을 여기저기서 일으키는 여러 지자체나 언론들은 여전히 '영화제가 가지는 크기와 화제성'에만 귀를 기울인다. 올해 영화제가 얼마나 관객을 모았는지, 얼마나 유명한 국내외 영화인들이 참석했는지, 그렇게 '한국이나 각 지자체의 국제적 위상'에 몰두해왔다. 이런 영화제에서 각 지역별, 장르별 영화제가, 크기는 크지 않더라도 영화 문화 다양성의 유지에 직결되는 작은 영화제의 상황에 대한 접근은 사라진다. (원주옥상영화제는 필자가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언론도 영화제 측에서 발표하는 문제 제기를 제대로 기사나 외부 기고 등으로 다루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대형 영화제는 계속 공적인 포커스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크기와 성과에 몰두하며 내부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영화제 자체가 삐걱거리는 것은 물론 영화제 자체의 특색도 탈색되고 있다. 이미 많은 영화인들은 대형 영화제들이 영화 개봉 직전 '영화제 상영'이라는 홍보 문구를 붙이는 것이 가능한, 일종의 양산형 훈장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음을 걱정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무수한 영화제들이 빠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적인 영화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 정책의 근본적인 재설계, 그리고 여전히 정책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된 반영이나 주체적인 참여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지역을 비롯한 기초적인 문화의 움직임을 최대한 확대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크기의 경제'에 익숙한 행정 관료나 다시 그 단물에 취한 일부 영화인들에게는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러한 크기의 경제가 선순환을 가져오는 대신,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영화제의 근본적인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크기는 크지만 무수한 논란을 반복하는 행사가 아니라 크기는 조금 작을지라도 지속가능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영화인들이 모여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제의 구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및 문화 정책과 공적 지원의 형태도 이러한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을 깊이 인식하도록 재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올해 심각한 수준으로 커져가는 한국 영화, 아니 한국 문화 전반의 위기를 조금이라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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