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립에서 나눔까지 실현 … '미스터 오일'의 뚝심 인생

서진우 기자(jwsuh@mk.co.kr) 2023. 6.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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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 매경·경영학회 '명예의전당'에
대담〓김대영 부국장
오는 16일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전당에 헌액되는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이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단연코 역지사지"라고 일갈했다. 이충우 기자

한국의 '미스터 오일'로 불리는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80·사진)이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영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올해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전당'에 헌액된다. 헌액식은 16일 연세대에서 경영학회 춘계학술대회와 함께 열린다. 허 회장은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솔직히 쑥스럽지만 기업인으로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에너지 산업과 함께해 온 지난 반세기에 걸친 제 노력에 대해 주시는 상으로 생각되며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애쓴 수많은 기업인을 대표해 상을 받는다고 여겨져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헌액에 앞서 지난 8일 허 회장의 사무실에서 나눈 매일경제신문과의 일문일답.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인 GS칼텍스를 단일 정유공장 기준 세계 4위로 끌어올린 비결은.

▷1970년대 우리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매년 6만배럴에 달하는 정유시설이 추가돼야만 우리 석유제품 수요를 따라갈 수 있었다. GS칼텍스(1967년 설립 당시 호남정유)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당시 3억달러라는 큰돈을 투자해 23만배럴에서 38만배럴로 15만배럴가량 증설을 단행했다. 하지만 증설이 완료된 1981년 2차 오일쇼크(석유파동)가 덮쳤다. 3억달러나 투자한 공장이 유휴시설로 남게 되니 회사 존립에 큰 위기였다. 당시엔 원유 구입이 어렵고 수요도 줄어 공장 가동이 힘들었다.

그때 일본 회사들과 접촉해 그들의 원유를 끌어와 '임가공 수출'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중동 지역 외 원유를 수입하는 원유도입선 다변화를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이로써 1981년 딱 한 해만 적자를 내고 그 후 흑자로 돌아섰다. 1983년에는 2억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우리나라가 원유를 수입해 자급자족하면서 수출까지 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하고 정유시설을 고도화하는 이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우리는 지금 매출의 70%를 정유제품 수출에서 얻는다.

또 2000년 GS파워 인수, 2012년 보령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매입, 2012년 아부다비 3개 광구 계약 체결 등을 통해 사업을 확대했다. 비록 원유를 수입하더라도 석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면 실질적인 에너지 자립국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소신으로 수출 확대에 집중해온 결과 현재 한국은 아시아 최대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회사 경영을 하면서 맞닥뜨린 힘든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

▷정도(正道)를 걸으면 결국엔 떳떳할 수 있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내 어려움이 왜 왔느냐를 판단하면 해결점이 나온다. 원인을 잘 파악하고 그 해결점을 절대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해 조금 양보하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100점은 아니어도 80점은 되는 해결 방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미국 셰브론과 절대적인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합작경영을 57년간 이끌어왔다.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것이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빠르다. 정유업계로선 위기로 보이는데.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뽑아 쓰거나 태양광, 풍력 등을 활용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에너지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수소를 뽑아내기 위해서도 탄소 배출이 없는 전기를 사용해야 진정한 '넷제로'인데 이걸 이른 시일 내에 과연 실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당분간은 많은 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탄소를 포집·저장해 재활용함으로써 석유화학제품을 만들고 에너지 효율화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전통적 연료와 미래 연료가 공존하며 인류의 편리한 삶을 도모하는 동시에 기후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거나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우리 회사의 큰 덩치(매출 구조)를 단번에 바꿀 수 없으니 차곡차곡 여러 시험을 하고 있다. 석유화학의 특수 폴리머(고분자 화합물)를 개발하거나 외국 기업과 협업해 대체 방안을 찾는 일도 고민 중이다. 에너지 문제는 반드시 이겨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국가적 에너지 위기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업인 이전에 공학도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기료든 가스료든 올릴 건 올려야 한다고 본다. 이게 얼마나 비싸고, 그래서 절약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하며 전기·가스료의 현실화 또한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국민 등 모든 경제주체가 근본적인 에너지 효율 혁신과 절약 문화 정착을 위해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

―명예의전당은 한국 경영학자들이 선정해 드리는 상이다. 본인은 어떤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나.

▷우리 집안에 공대 출신이 없었다. 어렸을 때 수학에 소질이 있어서 나라도 공과대학을 나와야겠다고 생각해 화학공학과를 택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까지 마쳤다. 그래서 전문가적 시각에서 정유산업에 몸담게 됐다. 1960년대만 해도 정유와 같은 기간산업이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끌고 나라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길이었다. 에너지의 근간이 곧 정유이기에 내가 몸담은 에너지 산업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이룬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

허동수 명예회장

△1943년생 △1966년 연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1년 미국 위스콘신대 박사 △1973년 GS칼텍스 입사 △1978년 GS칼텍스 상무 △1984년 GS칼텍스 전무 △1987년 GS칼텍스 부사장 △1994년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1998년 GS칼텍스 부회장 △2000년 금탑산업훈장 수훈 △2002년 GS칼텍스 회장 △200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2012년 금관문화훈장 수훈 △2016년 GS칼텍스 명예회장 △2017년 연세대 이사장

[서진우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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