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빨간 벽돌 그 건물, 기억하나요
작가 9명, 회화·조각·사운드 설치 등 23점 전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안에 자리 잡은 아르코미술관. 오늘날 대학로의 상징물이 된 붉은 벽돌 건물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술관 자리는 경성대학에 이어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던 곳이자, 1960년 4·19혁명이 태동한 장소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 조성된 마로니에공원 안에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1979년 지금의 건물이 완공됐다. 이후 한국 최초 동시대 미술을 위한 공공전시장인 미술회관(아르코미술관의 전신)으로 시작해 줄곧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 왔다. 1960년~1980년대 민주화 운동, 1990년대 이후 청년 문화가 주도한 사회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함께 호흡하면서.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은 아르코미술관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기억을 반추하는 전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9명(팀)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미술관 모습과 미술관이 목도했을 법한 역사적 순간을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 설치 등 작품 23점으로 선보였다. 예술적 시선으로 미술관 안과 밖 공간을 연결하고 활성화함으로써 미술관의 역사를 재조명해 보자는 취지에 맞게 작품은 전시장을 포함해 아카이브라운지, 야외 로비, 계단, 통로,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서 펼쳐진다.
작가들이 기억하는 미술관의 역사는 저마다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다채롭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김보경 작가의 '양손의 호흡-5mm 왕복 운동으로 만든 반사광2'가 시선을 끈다. 흡사 손뜨개 니트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마로니에공원, 대학로, 낙산 등을 탐색하며 뜨개질로 여러 이미지를 혼합하고 변형해 만들었다. 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기억을 탐색하는 과정이 바늘이 오가며 직조하는 뜨개질 작업과 같았다"며 "자료를 리서치하는 작업은 과거를 탐색하는 작업이고, 이미지를 혼합시킬 때는 현재에 머물고 있었는데 두 시점을 오가며 내 감정을 담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민하 작가의 '터(군중)'는 오랜 시간 공원의 목격자로 존재했던 미술관에 주목했다. 미술관 벽돌 사이의 정사각형 창문을 건물의 눈으로 설정해, 창문을 통해 바라본 마로니에공원의 활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마로니에공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박 작가는 당시 마로니에공원에 무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춤과 음악을 접했다고 한다. 작가는 지하 1층과 미술관 외부 2층 창문에 '눈' 형상의 그림 작품을 설치하고, 당시 공원의 에너지를 4개의 추상 작품으로 구현했다. 안경수의 '전야'도 미술관 앞 공간에 주목한 작품이다. 마로니에광장이 긴 시간 학생 시위의 배경이자 예술가들의 무대, 시민들의 쉼터 등으로 변해 온 모습을 각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전야'의 풍경으로 나타냈다.
퍼포먼스 영상 작품인 문승현·김경민 작가의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기획자이자 퍼포머, 시인으로 활동 중인 문 작가의 퍼포먼스를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 작가가 영상에 담았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문 작가는 로비 바닥을 쓰다듬는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휠체어로 접근이 불가능한 미술관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다이아거날 써츠 팀의 '앉히다: 다리가 자유로워질 때-의자 3', 윤향로 작가의 '태깅-K', 이현종 작가의 '아마데우스 의자'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관이라는 공적인 공간과 개인, 나아가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가 얼마나 다르고 다채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전지영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며 "과거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요소들을 짚어보면서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23일까지, 입장료는 무료.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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