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뉴스백화점’이 문을 닫는 날 [아침햇발]

강희철 2023. 6. 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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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10일 취임식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와이티엔 화면 갈무리

강희철 l 논설위원

“네이버가 뉴스 그만두는 날이 올까요?” 누군가 말하자 좌중이 웃었다. 언론 종사자, 언론학자 여럿이 참석한 어떤 모임에서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같은 질문에 이젠 웃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네이버는 다음(카카오)과 함께 ‘뉴스백화점’을 운용한다. 거의 모든 언론이 양 포털에 뉴스를 ‘납품-진열’하고, 이용자들은 공짜로 소비한다. 대가는 포털이 언론에 지불해왔다. 20년 넘게 유지돼온 이 구조가 깨지기 직전이다.

포털은 “뉴스(서비스) 폐지를 시리어스하게 검토”(네이버 임원)하거나 “올해 안 근본적 변화”(카카오 임원)에 골몰하고 있다. 이용자의 지속적 이탈로, 네이버 전체 트래픽의 뉴스 비중은 6%대로 격감했다. 한때 최고치가 40%대였으니 7분의 1토막쯤 난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뉴스 사업 철수 직전까지 갔던 카카오는 폐지 이상의 결정을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뉴스를 호객용 ‘마케팅 툴’로 삼아온 그들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다만 네이버는 쿠팡에 커머스에서 밀린 처지라, 유일 차별점인 뉴스에 미련이 많다.

고민이 커지는 건 언론사들이다. 특히 신문은 심각하다. 덩치 큰 곳도 네이버 매출은 연 100억~200억원이고, 다음은 그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트래픽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올해를 기점으로 대폭 감소가 불가피하다. 종이신문 독자도 하염없이 줄어 믿을 건 디지털뿐인데, 포털 매출은 최소 생존 비용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자립은 언급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손쉬운 포털 도매(B2B)에 기대어 <뉴욕 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뉴스 소매(B2C)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새 ‘뉴스는 공짜’라는 관념이 사람들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트래픽=수익’인 포털 메커니즘 아래서 뉴스는 고만고만한 속보 위주로 획일화된 지 오래다. 그마저 출혈 경쟁이 심해지며 저널리즘의 기본과도 멀어졌다. 신뢰도는 물론 ‘브랜드’ 인지도도 형편이 없다. “저희가 2020년 수익 정산 방식 변경을 앞두고 18~34살 젊은층 조사를 많이 했는데, ‘아는 언론사 이름을 써보라’고 했더니 신문 쪽은 전멸이더군요.”(네이버 임원) 누가 봐도 생존 위기다. 이쯤 되면 ‘포스트 포털’ 대책을 서두르는 게 상식일 것이다.

한데, 의외의 중대 변수가 등장했다. 정부여당이 포털 뉴스백화점 폐점을 사생결단 밀어붙일 태세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기구와 기관이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포털 관련 입법의 길목(국회 과방위원장)에 배치된 건 우연이 아니다. “저희들이 느끼기에는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이 말을 한 여권 고위 인사가 해설해줬다. “포털이 윤 정부에 반대하는 좌파언론의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다. 이대로 총선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나.” 정부여당은 포털이 뉴스 검색과 색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구글식 ‘아웃링크’를 목표로 삼고 있다.

강한 압박을 감지한 양 포털은 지난달 22일 뉴스백화점의 ‘외피’로 논란을 빚어온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 활동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죠.”(포털 임원) 8일엔 뉴스 댓글 제한을 들고나왔다. ‘편향적 알고리즘’ 시비의 표적인 ‘마이뉴스’ 폐지, 소스코드 전면 공개 등 제2, 제3의 카드도 검토하고 있다. 어느 포털 고위 임원은 “총선이 끝나 사람(의원)이 리셋되면 이슈도 새롭게 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버티면 되겠지’라는 생각이다.

무지가 오판을 낳는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강조할 때부터 시작됐다. 올 4·19 추도사에서도 “가짜뉴스”를 특별히 언급했다. 포털이 그 반지성주의와 가짜뉴스의 온상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사시 9수에서 보듯, 집요한 사람이다. 검사 때 한번 찍은 대상은 세번, 네번 영장을 쳐서라도 감옥으로 보냈다. 남은 임기가 4년이다. 총선용 소나기가 아니다.

보수신문들은 굿 보고 떡을 챙기면 된다. 종편을 거느리고 있어 여유가 있다. 반면 굿판을 좌시 못 할 진보신문들은 실존적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부당하다 비판하는 와중에 포털들이 덜컥 백기라도 들면 어쩔 것인가. 그사이 소진한 시간과 기회비용은 돌이킬 수 없다. 어찌어찌 지금 체제가 유지되어도 어차피 지속 가능한 생존대책은 되지 못한다. 정부여당의 꽃놀이패가 섬뜩하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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