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하지만 멍청한 지휘관이 불러온 비극 ‘별들의 흑역사’[화제의 책]

엄민용 기자 2023. 6. 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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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흑역사 표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한 조직의 명운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특히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판단해 적재적소에 병사를 배치함으로써 최소의 인원으로 적군을 절멸하고 승리로 이끄는 훌륭한 리더, 즉 탁월한 지휘관이 필요하다. 전쟁의 승패는 둘째치고 자신의 목숨은 물론 수많은 병사, 나아가 한 나라의 국운이 그의 지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자기만의 이익을 꾀하고 실패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지휘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무능한 사람이 작전권을 짓주무른 사례가 허다하다. 또 현재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군의 수장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는 4가지 유형으로 장교를 구분했다.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다.

이들에 대해 그는 “대다수 장교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돼 있다. 몇몇은 영리하고 부지런하다. 그들은 참모본부에 적합하다. 다음은 어리석고 게으른 자들이다. 군대의 90%를 차지하는 이들은 일상적인 업무에 걸맞다. 그리고 현명함과 게으름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최고의 지휘관이 될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신력과 배짱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람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자다. 그는 무엇을 하든 조직에 해를 끼칠 뿐이므로 어떤 책무도 맡겨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장군의 말처럼 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형은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지휘관’이다. 그는 자신의 전적에만 눈이 멀어 자신의 부하들은 물론 조직을 와해시키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일본의 무다구치 렌야다. 그는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노구교)사건을 일으켰고, 병사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으며, 일본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임팔작전(1944년 미얀마와 인도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전투)을 펼쳤다.

‘별들의 흑역사’(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는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樞軸國)과 프랑스·미국·소련·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제2차세계대전을 비롯해 제1차세계대전, 스당전투, 6·25전쟁 등에서 졸전을 벌인 무능한 패장 12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무솔리니의 정치군인이었던 로돌포 그라치아니, 일본군 최악의 싸움이었던 임팔작전의 주인공 무다구치 렌야, 명장에서 범장으로 전락한 모리스 가믈랭, 중국을 위기에 빠뜨린 조지프 스틸웰, 6·25전쟁에서 가장 큰 패전을 기록한 국군 제3군단장 유재흥 등이 어떻게 ‘똥별’로 전락했는지를 되돌아본다.

물론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한 리더십과 군사적 통찰력으로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지휘관이라면 위험을 최소화하고, 궁지에 몰려서도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무능한 지휘관’은 그러지 못한다. 그런 지휘관은 적보다도 무섭다.

지휘관의 능력은 수많은 생명은 물론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이 책은 역량이 부족한 지휘관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병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위대한 승장과 무능한 패장의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처참한 실패의 역사를 통해 진정한 명장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오르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그 예외를 우리는 지금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와 지구촌 곳곳에서도 만나고 있다. ‘기업의 똥별’ ‘사회의 똥별’ ‘정치의 똥별’ 등을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 ‘똥별’들을 왜 경계해야 하는지를 그들의 ‘지휘 실패’ 사례를 통해 깨닫게 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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