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 6. 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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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사진=김화진

연분홍색 용지 인쇄로 발간되는 신문이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바탕색도 같은 색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FT)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글로벌 2대 일간 경제신문이다. 전문경제지인 데다 사용되는 영어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글로벌 1000대 은행 랭킹을 집계해서 발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월간지 더 뱅커(The Banker)도 FT 소유다.

FT의 주요 독자는 비즈니스와 금융계의 리더, 전문가들이다. 영국의 한 유명 TV 드라마는 FT를 '영국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이라고 풍자한 적이 있다. 정치적 성향은 중도에서 약간 오른쪽이고 신뢰도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이코노미스트를 앞서는 1위로 평가된다.

FT는 1888년 런던에서 셰리든(Sheridan) 형제가 창간했다. 1884년에 창간되었던 파이낸셜뉴스와 오랫동안 경쟁하다가 1945년에 합병했다. 1957년에 펭귄 브랜드로 대표되는 글로벌 출판사 피어슨(Pearson) 소유가 되었다. 피어슨의 홈페이지에는 FT 매수가 '견실하고 보수적인 투자'였다고 되어 있고 당시 피어슨은 투자은행 라자드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FT의 편집 방향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FT 편집의 독립성 보장을 강조했다.

1997년에 미국판을 발간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영국 신문 중 영국 밖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다. 2000년에는 독일어판도 시작했다. 2012년에 디지털 구독자 수가 종이신문 구독자 수를 넘어섰는데 FT는 현재 구독료와 광고수입 비중이 거의 같다.

FT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은 고든 뉴턴(Sir Gordon Newton)이다. 1950년에 취임해서 1972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FT의 편집인이었다. 같은 시기에 외형은 세 배가 되었고 FT는 경제신문에서 사실상 종합일간지로 변모했다. 뉴턴은 어려운 가정 출신으로 FT의 사환 경력도 있는데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다. 저널리스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뉴턴은 편집국을 맡자마자 옥스브리지를 갓 나온 신예들을 수습기자로 대거 채용했다. 이들이 훗날 FT와 더 타임스 편집인 등 영국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인재로 성장한다.

그러나 FT는 이제 일본 자본 소유다. 2015년에 피어슨이 교육과 출판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 돈 약 1조5000억원으로 닛케이(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매각했다. 1876년에 창간된 닛케이는 발행부수(약 270만)로 세계 최대의 경제신문이다. 1950년 이래 도쿄증권거래소에 일본 표준 주식지표 닛케이225를 제공한다. 닛케이 자체는 오너 없는 종업원 지주회사다. FT를 매수했기 때문에 닛케이는 뱅커도 함께 손에 넣었다.

FT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50%를 가지고 있었는데 피어슨은 FT를 매각할 때 이코노미스트도 따로 팔았다. 매수자는 피아트 아녤리 패밀리의 지주회사 엑소(Exor)다. 엑소의 자회사 피아트는 이탈리아에서 몇몇 미디어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제 이코노미스트 이사회는 13인으로 구성되고 엑소가 6인을 선임한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에서는 한 주주가 50%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고 의결권도 20%로 제한된다.

이코노미스트는 FT보다 먼저인 1843년에 스코틀랜드의 정치인, 경제학자, 사업가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이 '지성과 무지 사이의 심각한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창간했다. 이 말은 지금도 매 호의 첫 장에 나오고 홈페이지 하단에도 고정되어 있다. 직접적인 창간 동기는 곡물교역에 관세를 부과하는 법률에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주창하기 위한 것이었다. 윌슨은 오늘날 스탠더드차타드은행의 일부 창업자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는 빌 게이츠가 열혈 애독자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주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다 읽는다고 한다. FT처럼 이코노미스트도 영어와 내용이 쉽지 않은 매체여서 영어 사용권에서는 이코노미스트 구독이 지식인의 척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애플처럼 컬트가 있다고도 하는데 '스마트'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들 말한다.

FT와 이코노미스트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된다. 챗GPT는 두 매체의 개성을 일간지와 주간지의 차이에 두고 비교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안에 대한 간결, 정확한 분석(FT)과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심층분석과 논평(이코노미스트) 차이다. FT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고 이코노미스트는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고도 한다. 즉 가장 큰 차이는 이코노미스트에서는 필진의 의견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해당 의견에 대한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독자들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정치, 경제 현안에 대한 넓은 시각을 공유할 기회를 가진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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