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억개의 꿈 걸린 ‘로또 추첨’…5분 생방송, 준비는 6시간

윤희훈 기자 2023. 6. 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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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조작설 제기에…복권위 ‘대국민 공개’ 생방송 진행
경향성 있는 번호 추첨시 당첨자 대거 발생
“매주 일정 수 이상 당첨자 나오는 건 자동 구매 많아진 영향”
심리학자 “로또는 대국민 심리서비스, 1장만 사는 게 합리적”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상암동 스튜디오에서 '대국민 로또 추첨 공개 방송'에 앞서 테스트 추첨볼이 놓여 있다. 매주 로또복권 추첨 방송에는 약 15명의 일반인만 참석했으나 이날 공개방송에는 평소 인원의 10배가 넘는 150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복권방송 추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알리기 위해 개최됐다. /뉴스1

“비밀번호 ****”

지난 10일 오후 2시 로또 복권 사업자인 동행복권 관계자와 복권 추첨 방송 주관방송사인 MBC 직원이 함께 서울 상암동 MBC 3층 스튜디오B의 창고 문을 열었다.

이 창고에는 로또 복권 추첨에 사용될 추첨기 3대와 관련 장비가 모두 보관돼 있다.

창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동행복권 관계자가 “23.4도, 45%”를 외쳤다. 창고의 온도와 습도다.

창고의 온습도를 체크해 혹시 모를 추첨기의 고장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동행복권 관계자는 “적정 온도와 습도에 대해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습도에 대해선 신경을 쓰는 편이다. 건조할 경우 정전기가 발생해 추첨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고 안에 들어간 관계자들은 추첨기 3대와 PC 등 관련 장비를 밖으로 빼냈다. 로또 복권 추첨에 사용하는 추첨기는 프랑스 아카니스(AKANIS)사의 ‘비너스’ 제품을 쓴다. 로또뿐만 아니라 미국의 파워볼 등 40개국에서 복권 추첨기로 사용하는 제품이다. 대당 가격은 1억원대. 2002년 로또 복권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현재까지 추첨기는 1번 교체했다.

추첨기를 3대나 두는 것은 방송이나 리허설 단계에서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서다. 3대는 모두 추첨장에 배치돼 메인, 예비1호, 예비2호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만약 3번까지 고장이 난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동행복권 관계자는 “참관인 중 1명을 선정해 눈을 가리고 손으로 볼을 뽑는 게 최후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상암 MBC 스튜디오B는 PD수첩 등 교양프로그램 촬영 세트로 쓰인다. 매주 토요일 8시 35분쯤 방송하는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도 이곳에서 촬영한다.

하지만 이날은 촬영 장소가 ‘골든마우스홀’로 바뀌었다. 골든마우스홀은 좌석이 300석가량 되는 중간 규모 스튜디오로, MBC는 각종 프로그램 쇼케이스나 제작발표회, TV예술무대 등 중소규모 공연장으로 쓰인다.

복권위원회는 이날 로또 복권 추첨 과정의 조작 의혹 등을 잠재우기 위해 ‘대국민 로또 추첨 공개 생방송’을 진행했다. 평소에는 참관인으로 시민 20명을 초대했던 것을 이날에는 일반인 150명을 비롯해 취재진까지 총 200여명을 초대했다.

10일 서울 상암동 MBC 1층 로비에서 로또 추첨 공개 생방송을 참관할 시민들이 입장 절차를 밟고 있다. /윤희훈 기자

◇ 고순위 당첨자 다수 배출에 ‘조작설’ 꿈틀…영국선 1등 4000명 나오기도

작년 6월 진행된 제1019회 로또에선 1등 당첨이 무려 50명이 나왔다. 지난 3월 진행된 1057회 로또에선 2등 당첨자가 644명이 나왔다. 특히 1명이 한 판매점에서 2등 당첨 복권 103장을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또 복권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 매주 1억장가량 판매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 회에 12~13명이 1등에 당첨된다. 2등 당첨자는 이의 6배인 75~80명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이례적으로 당첨자가 대거 나오면서 온라인에서는 ‘로또 조작설’이 빠르게 퍼졌다. 누군가가 조작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고순위 당첨자가 대거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통계물리학자인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로또는 무작위적으로 진행하는 확률 기반 게임”이라며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분의 1로 동일하지만, 어떤 번호로 당첨돼야 당첨자가 적고 많은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번호의 경향성이 있고, 해당 번호가 한 회차에 몰리는 경우 다수의 당첨자가 나오고 당첨 금액은 줄어들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홍덕기 동행복권 대표는 “영국에선 7의 배수로만 1등 당첨번호가 나온 적이 있는데, 당시 1등 당첨자가 무려 4082명이었다. 베트남에선 9의 배수로 당첨번호가 조합되면서 1등이 433명 나오기도 했다”며 “우리나라도 로또 복권 용지 가운데 번호인 4, 11, 18, 25, 32, 39를 찍는 복권이 한 회차에 1만5000장이 나온다. 만약 우연히 그 번호가 1등이 된다면 1등 당첨자가 1만5000명이 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과거에는 1등 당첨자가 없어 이월된 적이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꾸준히 10명 이상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수동 번호보다 자동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수동으로 하면 많이들 본인이나 가족의 생일을 조합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일은 31일까지만 있어 32번 이후 번호는 픽률이 떨어진다. 이런 경향성 때문에 수동의 당첨률이 자동보다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동행복권에 따르면 로또복권 시행 초기에는 수동 구매자 86%, 자동 구매자 14% 정도의 비율을 보였다. 현재는 자동 70%, 수동 30%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동행복권 관계자가 10일 서울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진행된 로또 추첨 사전 준비과정에서 추첨볼 세트를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 ‘추첨볼 조종’ ‘사후 데이터 조작’ 가능성에 “모두 불가능”

온라인에선 여전히 로또 조작 루머가 계속 돌고 있다. 조작 루머의 형태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당첨번호를 미리 정하고 추첨한다’, 다른 하나는 ‘추첨 후 데이터를 조작한다’이다.

당첨번호 조작과 관련해선 자석 등을 이용해 추첨볼을 조작하거나, 외부에서 시스템을 접속해 추첨기를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행복권 측은 ‘전혀 불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한다. 로또 추첨 때 사용되는 볼의 무게가 4g으로 가볍고, 볼 내부에 번호 인식을 위한 RFID가 들어있어 자성이 강한 물질을 대면 움직일 순 있지만 모든 볼에 RFID가 있다는 점에서 특정 번호의 볼을 선택적으로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추첨 후 데이터 조작 가능성에 대해선 로또 당첨 번호를 저장하는 서버가 5곳으로, 해당 서버의 정보를 한 번에 해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홍 대표는 “토요일 오후 8시가 되면 복권 판매가 중단되고, 모든 서버는 외부망과의 접속이 차단된다”면서 “추첨 후 각 서버 데이터 간 교차 검증을 진행해 데이터 위변조 여부도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로또 추첨 방식을 예전 주택복권 추첨 때 사용했던 ‘화살 방식’이나 번호 추첨을 ‘8시 복권 구입 마감 직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홍 대표는 “화살방식은 동일한 번호가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또 각 번호 사이 선상에 화살이 꽂힐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 “8시 복권 판매 마감 이후, 번호 교차 검증 등의 확인 절차에 13분 정도가 필요하다. 여기에 방송사의 방송 일정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30분 정도 뒤에 추첨하는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 ‘녹화 중계가 아닌 생중계’를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선 복권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서중 기획재정부 복권위 사무처장은 “로또 추첨은 항상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녹화 중계를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10일 서울 상암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경찰관 입회 하에 동행복권 관계자가 로또 추첨볼 봉인을 해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 철저한 사전 점검…생방송 리허설도 ‘긴장감’ 가득

오후 6시45분, 골든마우스홀에서는 로또 추첨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시작했다. 추첨볼과 추첨기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절차다.

먼저 경찰관 입회 하에 추첨볼 세트 5개의 봉인 상태를 확인한다. 전 주 방송 이후 봉인된 추첨볼이 계속 봉인 상태를 유지했는지 모두 확인하고 일제히 봉인을 해제한다.

봉인 해제 후에는 각 세트의 추첨볼의 규격을 확인하게 된다. 각 세트에서 공을 5개씩 샘플링을 해 둘레와 무게를 확인한다. 추첨볼의 공인 무게는 4g, 둘레는 44.5㎜ 이다. 오차 범위를 설정해 무게는 3.8~4.2g, 둘레는 43.4~45.6㎜면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

측정할 샘플볼은 참관객이 임의로 고른다. 25개의 볼이 모두 이상이 없으면 참관객 중 1인이 방송에 사용할 볼 세트를 선정한다. 볼 세트는 메인 추첨볼 1개와 예비용 2개까지 모두 3개를 준비한다.

동행복권 관계자가 로또 추첨에 사용될 추첨볼을 소개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이어 추첨볼의 RFID 장비 이상 여부와 추첨기의 정상 가동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참관인 중 1명이 임의로 볼을 골라 추첨기 인식기에 볼을 대면, 다른 참관인 중 1명이 모니터에 뜬 해당 볼의 번호를 부르는 방식으로 실제 볼과 인식기 상의 볼 번호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저녁 8시부터는 생방송을 위한 리허설이 시작된다. 생방송 MC인 방송인 서경석씨와 박연경 아나운서의 진행 멘트와 추첨기 가동을 시작할 ‘황금손’의 인사, 추첨까지 모두 5분 40초 이내에 마쳐야 한다. 짧은 방송 시간이지만 거액의 복권 당첨금이 걸린 만큼 리허설부터 긴장감이 흐른다.

3차례의 리허설을 마치고, 8시 33분 본방송 생방송이 시작했다. 로또 추첨의 공정성을 알리기 위해 열린 이날 방송, 방송 중간 송출되는 짧은 영상은 추첨기 비너스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다. 추첨기를 돌릴 황금손으로는 복권위원장인 최상대 기재부 제2차관과 동행복권 홍보대사인 배우 김소연씨가 출연했다.

최 차관은 “복권 추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국민들에게 알려드리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참관인을 모시게 됐다”며 “로또 복권 추첨은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추첨 전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장기간 로또 방송을 진행해 온 서경석씨는 “저를 보는 사람마다 ‘로또 녹화 언제냐’고 묻는데, 억울하다”라며 “매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참관인들께선 나가시면 로또 방송 생방이라고 적극 홍보해달라”고 했다.

이날 참관에 나선 한 참관인은 “평소 유튜브 등을 보면서 로또 추첨이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실제 참관하고 설명을 들으니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평소에도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6월 10일 서울 상암동 MBC 1층 골든마우스홀에서 진행된 로또 추첨 공개 생방송에서 추첨볼 및 추첨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 매주 발행되는 1억장의 꿈… “중독은 금물”

이날 방송된 1071회 로또 복권의 당첨볼은 2, 30, 21, 11, 35, 1, 2등 보너스번호로 39가 나왔다. 이날 1등 당첨자는 5명으로, 한명당 51억8398만원이 지급된다. 당첨된 5명은 모두 ‘자동 구매’였다.

참관에 앞서 기자가 구입한 2만5000원어치 복권은 모두 ‘꽝’이었다. 당첨금이 5000원인 5등 당첨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25개의 복권으로 1등 당첨률을 32만5000분의 1로 낮췄지만, 어림도 없었다. 1등은커녕 당첨 확률이 45분의 1인 5등의 확률도 55.5%까지 낮췄지만 되지 않았다.

로또복권은 매주 1억장 이상 팔린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1억장의 로또에는 생활고 탈출과 내 집 마련 등 다양한 버킷리스트 등 꿈과 희망이 걸려있다.

로또 1071회 당첨 번호.

814만분의 1이라는 1등 당첨률은 통계적으로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확률’이라고 한다. 하지만 복권을 산 사람들은 마치 1등은 내 몫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비현실적 낙관성”이라고 설명한다. 허 교수는 “로또는 자신이 직접 번호를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의 욕구를 주고, 왠지 당첨될 것 같다는 기대감을 심어준다”며 “조작 의혹이 나오는 것은 자신이 당첨될 것 같은데 당첨되지 않으니 이를 심리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음모론으로 심리적 위안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복권 구입에 지출한 2만5000원 중 1만2500원은 당첨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1만2500원은 복권기금으로 과학기술 연구와 취약계층 지원 사업에 쓰인다. 복권 구매가 주는 심리적 만족감과 사회적 기여를 고려하면 가치 있는 구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과도한 복권 구입은 지양해야 한다.

허 교수는 “1등이 당첨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모든 번호를 한 장씩 모두 814만장의 복권을 구입하는 것”이라며 “로또를 현실적으로 보면 한 주가 주가가 반토막 나는 주식을 사는 행위다. 중독은 금물이다. 심리적 가성비를 생각하면 1장씩만 사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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