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서 쫓겨났던 ‘휠체어 그네’… 2023년 하반기 다시 친구들 맞는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김동환 2023. 6. 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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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뒤늦게 안전기준 마련
조수미 전국 특수학교 기증 불구
안전 기준 없어 모두 철거·방치
“장애아동 권리 외면” 비판 봇물
산자부, 개정안 7월 확정·고시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어린이 놀이터. ‘휠체어 그네’ 1대가 눈에 띄었다.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이 오르내리는 주변 놀이기구와 달리 이용하는 이가 없었다.

다가서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휠체어 사용자 외 이용을 금한다’는 종로구 명의 안내문이 보였다. 안내문에는 안전 확보를 위해 그네 탑승 시 동행인이 있어야 한다는 당부도 담고 있다. 주변 장애인 관련 시설 아동이 이용할까 내심 기대했지만 현장에 머무는 약 1시간 동안 그네를 타는 이는 볼 수 없었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어린이 놀이터에 설치된 휠체어 그네. 다가서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휠체어 사용자 외 이용을 금한다’면서 아울러 그네 탑승 시 동행인을 당부한 종로구 명의 안내문이 보였다.
◆선행 무색해진 휠체어 그네 철거

휠체어 그네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2014년 전국 특수학교에 기증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2012년 호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휠체어 그네를 본 조씨가 우리나라 장애 아동에게 선물했다.

단단한 철제봉 두 개 사이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뚜껑 없는 상자 모양으로 제작된 철제 구조물이다. 휠체어 탄 채로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일반 그네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장애 아동에게 큰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경남 김해은혜학교와 창원천광학교, 진주혜광학교 그리고 경기 광주 한사랑학교와 세종누리학교에 설치됐던 휠체어 그네는 장애인 놀이기구 안전인증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설치 자체가 불가능해 안타깝게도 모두 철거됐다.

지난달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16년 세종누리학교에 놓였던 휠체어 그네가 설치 6개월 만에 철거된 뒤 창고에 방치됐다가 2019년 11월 처분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조씨에게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씨는 “교육감의 잘못이 아닌데 진솔한 사과로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고 답변했다.

이후 휠체어 그네 철거 소식이 퍼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안전 기준을 만들면 될 일 아닌가’, ‘공무원들의 게으름이 선행을 뭉개고 있다’ 등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장애인 관련 단체도 나서 어른들의 무책임이 장애 아동의 놀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빠른 개선을 촉구했다.

◆안전기준 마련 나선 당국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안전인증 대상 어린이 제품의 안전기준 개정안’ 재행정예고로 장애 아동이 휠체어 그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지난 4일 알렸다.

2021년부터 1년여간 연구 용역과 공청회를 거쳐 개정안을 마련하고 지난해 6월 행정예고도 했지만, 이해관계자 간 조율로 시행이 늦어지는 바람에 올해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와 제품안전심의회를 거쳐 재행정예고에 이르렀다.

개정안은 비장애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내용도 보완했다. 그네 하단과 지면 사이 끼임사고 방지를 위해 일정 간격(230㎜)을 확보했고, 그네 모서리에 충격 흡수 물질을 추가하는 한편 주의경고 표시도 강화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오는 23일 재행정예고 기간이 끝나면, 수요자 발주와 업체 제작·인증 준비 등에 차질이 없도록 내달 확정·고시할 계획이다. 행정안전부도 안전 기준안을 반영한 ‘어린이 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 개정을 진행해 오는 10월 시행할 예정이다.

◆장애 아동 존엄성 강조하는 국제 협약

유엔 아동권리협약 23조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동의 존엄성 보장을 강조하면서, 장애 아동이 사회적 통합과 개인의 발달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가 기회에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도 장애 아동 관련 조항을 별도로 둬 다른 아동처럼 기본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모든 조치를 취한다고 돼 있다.

앞서 세종누리학교의 휠체어 그네 철거 소식이 알려진 뒤 충남의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휠체어 그네를 어린이 놀이기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휠체어 탈 수밖에 없는 어린이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장애로 그네를 탈 수 없는 것은 놀 권리 차별을 넘어 장애 아동을 어린이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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