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어린 나이가 무기라고 생각했다" 22살 역대 최연소 우승자는 이렇게 탄생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3. 6. 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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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콩쿠르도 전략적으로…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의 남다른 선택
김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사진=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영상, 연합뉴스)


한국은 클래식 음악 콩쿠르 강국 맞습니다. 지난 4일 벨기에에서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바리톤 김태한이 우승했습니다. 베이스 정인호는 5위에 올랐고요. 김태한은 2000년생, 22살입니다. 이 콩쿠르 성악 부문 사상 최연소 우승자이며, 아시아 남성 성악가로서도 최초의 우승자입니다. 지난해에는 첼리스트 최하영이 이 콩쿠르 첼로 부문 우승을 차지했죠. 한국인 음악가들이 2년 연속 이 대회를 제패한 셈입니다.

출처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공식 홈페이지
*'퀸 엘리자베스'는 영국 여왕이 아니라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1875-1934)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1876-1965)를 가리킵니다. 바이에른 출신의 왕비인데, 우리에겐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스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1937년 퀸 엘리자베스가 이 콩쿠르를 처음 창립했을 때는 벨기에의 바이올린 거장 외젠 이자이(1858-1931) 이름을 따서 '이자이 콩쿠르'로 불렸고, 2차 대전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51년부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라는 이름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콩쿠르는 벨기에 왕실이 주관하는데, 현 벨기에 국왕 필리프 1세의 왕비 마틸드가 시상합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부문으로 돌아가면서 개최됩니다. 이전엔 작곡 부문이 있었지만 2012년 이후론 열리지 않았습니다. 성악은 1988년, 첼로는 2017년부터 열렸습니다. 역대 한국인 우승자는 홍혜란(2011. 성악) 황수미(2014 성악) 임지영(2015 바이올린) 최하영(2022 첼로),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작곡 부문에서 조은화(2008), 전민재(2009)가 우승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콩쿠르 방송을 해온 티에리 로로 감독은 음악 전공자이기도 한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콩쿠르 결선 진출자 중 한국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에 호기심을 갖고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 (2012)' 영화를 찍었습니다. 또 몇 년 뒤 한국인 우승자들이 줄줄이 배출되자 두 번째 영화 'K-클래식 제너레이션(2020)'을 내놓았고요. (저는 티에리 로로 감독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는데요, 관련 기사를 첨부합니다. ▶관련 기사1 ▷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1407758 ]관련 기사2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5436465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폴란드 쇼팽 콩쿠르,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이른바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려 왔습니다. '세계 3대 콩쿠르'라는 말은 일본에서 쓰기 시작한 말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역사 있고 규모가 큰 유명 콩쿠르 셋을 묶어서 불러온 것이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 '세계 3대'에 속하지 않는 콩쿠르는 위상이 떨어지느냐,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콩쿠르마다 특성이 다 달라서 한 줄로 세워서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음악콩쿠르연맹에서 퇴출되면서 위상이 크게 추락해 '세계 3대'로 불리기 어려운 상태가 됐습니다.

김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사진=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영상, 연합뉴스)


김태한은 우승자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환호성 속에 무대로 나갔습니다. 심사위원단석에 앉아있던 소프라노 조수미는 김태한을 꼭 안아줬습니다. 조수미는 '나도 콩쿠르에서 여러 번 우승했지만, 내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했죠.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우승 발표 당일 김태한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JrTS5LUyFAY ]

"일단 너무너무 기쁩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준비한 만큼 무대 즐기고 내려온 것 같아서, 후회 없는 무대 한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 좋은 결과 따라와서 너무 기쁩니다."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지난달 21일부터 6월 3일까지, 2주간 열렸습니다. 18살부터 33살까지, 젊은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역대 최다인 412명이 지원해 이 중 68명이 본선 출전 자격을 얻었는데, 이 중 55명이 실제 경연에 참가했습니다. 경연은 3라운드로 열렸는데, 최종 결선인 세 번째 라운드에는 12명이 진출했습니다.

최종 수상을 못하더라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Finalist'는 중요한 경력이 됩니다. 이 12명 가운데 3명이 한국인(김태한, 정인호, 권경민)이었습니다.

세계 3대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이 공식 시상식에서 바리톤 권경민(30·왼쪽), 베이스 정인호(31)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다른 콩쿠르들과 달리, 어떤 곡을 몇 개 해야 되고 이런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세미 파이널(2라운드)부터는 20분 레퍼토리를 두 개 짜서 제출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지난해 9월에 금호 영 아티스트에서 독창회를 했는데, 그때 했던 곡들, 많이 준비된 곡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그런 곡들의 완성도를 더 높이면서 준비했습니다."

김태한은 지난해 바로 이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로 데뷔했습니다. '금호 영 아티스트' 오디션을 거쳐 무대에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페라는 2021년 서울대학교 정기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직업 오페라 가수로서 출연한 경력은 없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콩쿠르에서 꾸준히 수상하며 주목받아 온 성악계 '샛별'입니다.

김태한은 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였을 뿐 아니라 1988년 신설된 이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배출한 우승자 10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립니다. 이번 콩쿠르 결선 진출자들을 봐도 그렇고, 과거 성악 부문 수상자들 나이를 살펴보면 20대 후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대 경험이 많지 않은데, 긴장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긴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악은 몸이 악기이다 보니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리도 자연스럽게 익어가고 음악적인 성숙도도 달라지고, 그런 게 중요하기 때문에 나이가 크게 관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어린데도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과 비슷한 기량을 뽐낼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크게 메리트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이도 하나의 무기로 생각하고, 그래서 좀 더 대담하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연습을 워낙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오히려 (콩쿠르라기보다는) 연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대에 서기 전에도 전혀 떨리지 않았고, 무대 올라가서 노래할 때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는 떨기는커녕 놀라운 집중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는데요, 결선 첫 곡인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 '오 나의 사랑스런 저녁별이여'를 부를 때는 노래의 감정에 몰입해 끝부분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이 노래는 '탄호이저'의 여주인공 엘리자베트를 짝사랑해 온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예감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저녁별이 엘리자베트의 영혼을 평화롭게 하늘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는 내용입니다.


김태한은 스스로 부드러운 표현이 편한 바리톤이라고 평가했는데요, 결선 선곡을 보면 비극적 정서를 품은 곡이 많더라고요. 서정성과 비장미를 굉장히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곡으로는 말러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내 가슴속에 불타는 칼이'를 불렀고, 이어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불렀습니다. 김태한이 코른골트의 곡을 부른 영상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유튜브에 따로 올라와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eiDEo6_JNzg%C2%A0 ]
*코른골트의 이 곡은 특히 2021년 역시 권위 있는 콩쿠르인 BBC 카디프 콩쿠르(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도 택했던 곡입니다. 당시 심사위원이 눈물을 보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코른골트의 오페라 자체는 아직 한국에서 공연된 적이 없지만,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이 곡은 종종 연주되는 편입니다. 김기훈의 노래는 BBC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 함께 들어보셔도 좋겠네요. ▶관련 영상
[ https://www.bbc.co.uk/programmes/p09ljf59 ]

김태한의 결선 마지막 곡은 베르디 '돈 카를로' 중에 로드리고의 아리아 '오 카를로, 들어보게. 나는 죽어가고 있네'였습니다. 돈 카를로의 신하이자 친구인 로드리고 후작이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부르는 노래죠. 특이하게도 김태한은 이 곡을 프랑스어로 불렀습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작곡가인데, 어떻게 된 걸까요.

"네. 일부러 프랑스어로 불렀습니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가 이탈리아 오페라로 더 유명하고 많이 알려져 있고 더 많이 공연되는데요. 원래는 베르디가 프랑스의 부탁을 받고 프랑스어로 5막짜리 그랑 오페라로 작곡했던 게 오리지널입니다. 그때 프랑스에서 초연이 성공을 하면서 베르디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4막으로 줄이고 이탈리아어 초연을 다시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오리지널이라는 점도 있었고, 일단 벨기에가 프랑스어권이기 때문에 프랑스어 곡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이 곡의 마지막 소절 가사가 sauver la Flandre, 플랑드르를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플랑드르가 벨기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프랑스어로 불렀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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