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0억' 외환 딜러 포기하고 창업…"제가 제일 멍청했죠" [긱스]

허란/임대철 입력 2023. 6. 11. 09:22 수정 2023. 6. 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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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 기업이 세계 1등인 분야 하면 어디가 떠오르나요. 메모리 반도체, LNG선을 제외하면 이차 전지, 디스플레이 정도가 중국과 1·2위 다툼을 벌이는 정도입니다. 척박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세계 1등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 기업용(B2B) 클라우드 금융 솔루션 기업을 목표로 하는 트래블월렛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김형우 트레블월렛 대표를 만나 담대한 비전을 들어봤습니다.

10억원 연봉을 포기하고 6년간 최저 시급을 받으며 버텼다. 안되는 사업 모델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당신들이 틀린 거다’를 증명하고픈 반골 기질이 작동했다. 버티면 버틸수록, 돈 욕심보다 ‘뜻’이 점점 커졌다. 은행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세계 1위 지급결제 솔루션에 도전하는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 얘기다.

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래블월렛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외환 딜러가 수십억 원 연봉을 받는 것은 그만큼 외환시장이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라며 “외환에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하면 수출 기업에 엄청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 국제금융센터 등에서 외환 운용 전문가로 일한 그는 높은 수수료 등 해외 결제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2017년 트래블월렛을 창업했다. 기존에 없던 실시간 외화 충전 후 사용하는 선불 방식의 해외 결제 모델을 개발했지만, 금융권의 벽은 높았다.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와 네트워크 때문에 은행들도 카드 결제 방식을 바꾸는 게 어려웠다. 그는 “외환 시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안되는 사업모델이라고 했다”며 “똑똑한 사람 중에 제일 멍청해서 창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카드 결제에서 스위프트(국제은행간통신협회) 역할을 하는 비자와 손잡으며 트래블월렛은 2020년 아시아 핀테크 가운데 최초로 비자카드 발급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클라우드 기반 실시간 외환 운용이 가능한 기술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해외여행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트래블페이 카드다. 무료 결제수수료·최저 환전 수수료를 내건 이 카드는 마케팅 비용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지난달 발급 수 150만장을 돌파했다.

트래블월렛은 고객 수수료로 돈 버는 플랫폼이 아니다. 김 대표는 “핀테크 플랫폼이 고객 수수료로 돈 벌려고 하면 90%는 망한다”며 “제가 찾은 답은 고객에게는 수수료를 안 받고 해외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아 소폭 이익을 남기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B2C 서비스는 시작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사, 빅테크, 일반 기업 등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지급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트래블월렛은 지난달 비자와 공동으로 클라우드 기반 기업용(B2B) 지불결제 솔루션을 선보였다. 지불결제뿐만 아니라 계좌 기반 월렛 서비스, 입출금 및 자산관리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한다.

그는 “금융시장은 타자기, 인터넷에 이어 클라우드라는 세 번째 대변혁을 겪고 있다”며 “10년 뒤면 트래블월렛이 클라우드 결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금융 시장은 클라우드라는 세 번째 대변혁을 겪고 있다"며 "10년 뒤면 트래블월렛이 클라우드 결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임대철 기자

Q. 고액 연봉을 받던 외환 딜러가 왜 창업을 결심했나요.
A. 주식·채권에 비해 외환은 아직도 인센티브가 엄청나요. 잘하면 10억원대 연봉을 받고요, 파생 구조화 상품을 잘 만들면 50억원을 받기도 해요. 그만큼 외환 시장이 비효율적이란 거죠. 외환에 IT를 접목하면 수출 기업에 엄청난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기회가 보였어요. 사실 많은 외환 딜러들이 그 기회를 봤어요. 그 똑똑한 사람 중에서 제가 제일 멍청해서 창업한 것 같아요. 창업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거든요. 공부하면 할수록 안되는 이유가 많지, 될 이유는 못 찾아요. 지난 6년간 최저 시급 받으면서 버텼어요.

Q. 6년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인가요.
A. 창업 연차가 쌓일수록 돈 욕심보다는 '뜻'이 커지더라고요. 세계 경제와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요. 절반 정도는 타고난 반골 기질 때문에 버틴 것 같아요. 은행 카드사 등 금융권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시간 외화 충전 후 사용하는 해외결제 모델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사업 협력을 요청하면 훈계를 듣기 바빴고, 속에서는 열불이 났죠. '내가 만들면 당신들이 다 틀린 거다'라고 증명하고 싶었어요.

Q. 트래블페이가 금융 앱 1위가 된 지금은 어떤가요.
A. 우리 기업이 세계 1등인 분야가 많이 없어요. 특히 IT 소프트웨어는 척박하죠. 트래블월렛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어요. 기존 금융권이 못했던 클라우드 기반 지급결제를 비자가 처음 인정한 회사가 된거죠. 앞으로 5~10년 열심히 하면 세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1등 결제 솔루션 회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이런 대의명분을 얻는 순간 직원들은 자기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하는 '광전사'가 됩니다. 카카오 네이버 쿠팡 등에서 합류한 좋은 인력들이 지금도 주말 없이 일하고 있어요.

Q. 외환시장의 비효율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A. 한우 가격이 폭락해도 소비자들이 사 먹는 '투뿔' 가격은 그대로잖아요. 시장에서 파워를 갖는 누군가가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기 때문이죠. 우리는 중개 은행이 하던 환전 업무를 대신하고 있어요. 베트남 쌀국수 가게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고객 계좌에서 원화를 빼서 가게 사장님에겐 베트남 동으로 입금해 주는 거죠. 카드 결제에선 은행 간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 역할을 하는 비자와 연결만 되면 끝이에요.

Q. 비자는 왜 작은 한국 스타트업을 파트너사로 정한 걸까요.
A. 5년 전 즈음 비자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트래블페이는 기존에 없던 선불 방식의 국제결제 모델이라 운용상의 난도가 높아요. 은행은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와 네트워크 때문에 막상 개발하려면 기존 카드시스템을 다 바꿔야 하거든요. 우리는 작은 기업이라 오히려 할 수 있었죠. 신용카드는 한 달 치를 묶어서 다음 달 청구하면 되는데 우리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니 정산을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운용 관리가 어렵죠. 우리는 클라우드 기반 기술력으로 풀었어요.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서 개선할 부분이 생길 때마다 클라우드에서 아키텍처를 복사해서 데이터를 보내보고 제대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는 식이죠.

트래블페이 카드 및 앱 화면

Q. 결제 및 환전 수수료 없이 무엇으로 돈을 버나요.
A. 해외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아 비자와 나눠요. 핀테크가 고객 수수료로 돈 벌려고 하면 90%는 망합니다. 전 금융업으로 돈 벌 생각이 없어요. 제가 찾은 답은, 고객에게는 수수료를 안 받고 해외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아 소폭 이익을 남기는 정도고요. 궁극적으로는 금융사, 빅테크, 일반 기업 등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지급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목표에요.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치킨게임'의 상징 같아서 트래블월렛과는 딱 맞지 않아요. 오히려 강소기업이라고 불리고 싶어요.

Q. 트래블페이 카드 발급 수가 150만장을 돌파했는데요, B2C 수익모델을 계획하고 있나요.
A. 마케팅 비용 1원도 안 썼는데 입소문만으로 이 정도 찍힌 거예요. 2020년 2월 출시 이후 직구 고객들이 쓰다가 작년 4월부터 이용자가 늘며 10만장을 돌파했어요. 11월에 50만장, 지난 2월에 100만장을 돌파했어요. 지난달 150만장을 넘어섰고요. 사실 이렇게 많이 쓰일 줄은 예상 못했어요. 우리 비전은 B2B에 있어요. B2C는 국내 시장 용이죠. 지금 추세면 트레블페이 자체가 강력한 플랫폼이 될 것 같긴 한데 지금 상황에서 전선을 넓힐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Q. 다른 경쟁사가 치고 들어올 가능성은 없나요.
A. 5년 이상 솔루션을 개발하고, 2년 이상 운영해 오면서 하루에도 수십 개씩 세세한 조정을 하면서 효율적인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후발주자들이 몇만개 조정을 다 베낄 수 있을까요. 그럴 바에는 그냥 우리 솔루션을 쓰는 게 빠를 거예요. 그동안 축적해온 시행착오가 우리의 우월성이라고 생각해요.

Q. 지난달 출시한 클라우드 기반 B2B 금융 솔루션의 차별성은 무엇인가요.
A. 클라우드 금융결제 솔루션을 이용하면, 금융회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신상품을 빨리 출시할 수 있게 됩니다. 지불결제 사업에 진출하는 신생 핀테크 입장에선 초기 진입 비용을 낮출 수 있죠. 비자와 공동으로 솔루션을 만들었다는 것은 압도적인 보안성을 입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완성을 확보하는 데만 3년 넘게 걸렸습니다. 기존 금융회사가 못 바꾸는 것을 신생 기업이라 할 수 있었던 거죠.

트래블월렛이 지난 5월 비자와 공동으로 출시한 클라우드 금융솔루션 서비스 / 트래블월렛 제공

Q. 경쟁사는 어디인가요.
A. 클라우드 금융결제 분야 경쟁사는 아직 없습니다. 클라우드에서 금융 인프라를 운영하기 시작한 게 최근 1~2년 사이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금융 클라우드 망 분리 규제를 개선한 '전자금융 감독규정' 개정안이 올해 시행됐어요. 규제가 풀린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어디도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졌다고 보긴 힘들죠. 하지만 10년 뒤면 우리가 클라우드 금융결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Q. 국내에 성공적인 핀테크 기업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여신은 오랜 기간 정량적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된 은행의 영역이지만, 뱅킹 인프라는 IT가 중요한 분야입니다. 핀테크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뱅킹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가 필요합니다. 정산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뱅크 말이죠. 이를 위해 정부가 2~3년 전부터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라이선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요. 앞서 영국은 이런 역할을 하는 소규모 특화은행인 '챌린저 뱅크'가 여럿 설립되면서 외환관리 등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핀테크가 많이 나왔습니다.

Q. 지난 3월 200억원 규모 시리즈 C 투자유치에 성공했는데요. 투자유치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A. 전통 금융시장에서 외평채 발행 업무를 하면서 배운 게, '다음 사람이 먹을 것을 남겨놔야 한다'는 거예요. 시장이 좋다고 밸류(기업평가 가치)를 높이면 시장이 안 좋을 땐 밸류가 반토막 나게 돼요. 저는 우리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시장이 힘들 때도 펀드레이징이 되고, 구주 수요가 있어 회사 가치를 받쳐주는 거죠. 저희는 투자사도 선착순으로 받아요. 골라서 받는 순간 나머지 투자자가 적이 될 수 있거든요.

Q. 흑자전환은 언제 달성했나요.
A.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했어요.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고요. 하지만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로 자본을 최대한 많이 쌓아놔야 한다고 생각해 투자를 많이 늘리지 않고 있어요. 대관, 홍보 조직도 없이 개발 인력만 50여명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문제를 풀고 싶나요.
A. 금융 시장은 '클라우드'라는 세 번째 대변혁을 겪고 있어요. 주판·타자기에서 인터넷 컴퓨터로 넘어온 이후 40년이 지났어요. 지금 시스템으로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한계에 부딪혔어요. 다음 그릇은 클라우드예요. 3세대로 넘어가지 않으면 생존의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해요. 일본 미즈호은행은 뒤늦은 IT 전환으로 2000억원으로 해결됐을 것을 5조원이란 막대한 비용을 썼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트래블월렛이 클라우드 금융 시장과 함께 크는 기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통신산업이 발전하면서 시스코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오라클이 커진 것처럼요.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금융 시장은 클라우드라는 세 번째 대변혁을 겪고 있다"며 "10년 뒤면 트래블월렛이 클라우드 결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임대철 기자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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