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며 ‘바깥 소리’ 귀에 쏙쏙…10대 반항의 이유

한겨레 2023. 6. 1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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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우아영의 키작은 과학][한겨레S] 우아영의 키 작은 과학
아이와 듣기
7~16살, 엄마 목소리 식별 97%
청소년, 낯선 소리에 더 흥분
나이 들수록 뇌 반응도 증가
10대, 귀 열고 독립 준비 절차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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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하라는 대로 혹은 하지 말라는 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부르는 말소리가 정말 아이 귀에 안 들리나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놀이나 학습에 깊게 집중해서인가 싶어 세상 모든 부모가 한번씩 외친다는 “우리 애 천재인가”라며 자문해보지만, 집집마다 양육자들이 매일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호흡을 끌어올려 애 이름을 불러젖히는 걸 보면 ‘듣지 않음’은 온 세상 어린이들의 공통 사항인 것 같다. 어린아이가 귀로 감지하는 세상은 어른과는 어떻게 다를까.

사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들을 수 있다. 아직 고막과 두뇌가 미성숙해서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가 어른에 비해 3배쯤 느리지만 기능은 제대로 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라도 시선 반대편에서 딸랑이를 흔들면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

소음·불협화음도 좋은 아기들

하지만 분명 아이는 어른과 다른 방식으로 듣는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아기가 듣는 방식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청력이 정상인 생후 7~9개월 아기 73명과 18~30살 성인 40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연구팀은 먼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화 발신음처럼 들리는 1000㎐(헤르츠)의 ‘순음’과 전화 잡음처럼 들리는 0~6000㎐의 ‘광대역 소음’을 만들었다. 헤르츠는 소리 신호가 진동하는 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숫자가 클수록 높은음이다. 그러고는 아기와 성인 실험 참가자의 오른쪽 외이도(귀 입구에서 고막에 이르는 관)에 이어폰을 꽂고 다양한 크기의 순음 또는 광대역 소음을 0.5초씩 무작위로 반복해 들려줬다.

아기는 실험 부스 안에서 엄마 무릎 위에 앉혔고, 연구원이 바로 앞에서 요란하지 않은 장난감을 갖고 놀아주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부스 밖 또 다른 연구원이 아기 귀에 꽂은 이어폰에 소리를 재생하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아기는 무언가를 들으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리거나 표정이 변했고, 때로 엄마를 쳐다보기도 했다. 이렇게 아기가 반응하는 경우엔 기계식 장난감을 작동시켜 아기에게 일종의 보상을 제공했다. 성인 참가자는 소리가 들리면 손을 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험 결과, 아기는 순음보다 광대역 소음을 더 잘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0㎐ 순음의 경우, 성인이 감지한 임계 세기보다 14㏈(데시벨) 더 큰 소리가 들려야 아기가 반응했다. 반면 0~6000㎐ 광대역 소음의 경우, 성인이 감지한 임계 세기보다 불과 7㏈만 더 크게 들려도 아기가 반응했다. 일상적인 배경 잡음을 섞어 들려주는 조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음은 어른이 감지한 임계 세기보다 10㏈ 더 커야 아기가 인지했지만, 광대역 소음은 5㏈만 더 크게 들려도 아기가 반응했다.

지난 글에서 “어린이는 주의집중력을 분산시켜 정보를 더 많이 받아들임으로써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청각적으로도 그런 게 아닐까. 성인의 성숙한 두뇌가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원하는 목소리만 선별해 듣는 데 탁월하다는 사실(이른바 ‘칵테일 파티 효과’)을 고려하면, 이와 반대로 귀와 두뇌가 미숙한 어린이는 어른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불협화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변 소음만 아니라면 어린이들은 엄마 목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팀이 7~12살 어린이 24명에게 엄마와 낯선 여성 두명의 음성 파일을 들려준 결과, 아이들은 97% 확률로 엄마 목소리를 식별해냈다. 각 음성의 재생 시간이 1초도 안 되는데다 심지어 실제 존재하는 낱말을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추측건대 주 양육자가 생물학적 엄마가 아닌 아빠나 조부모였어도, 주 양육자의 목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실험에서 또 어린이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스캔한 결과, 엄마 음성을 들을 때 보상과 감정 처리, 얼굴 인식 등에 관여하는 뇌 부분이 특히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대부터 생존에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이었을 것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엄마 목소리를 더 잘 듣고 따라다닐 수 있다면 호랑이에게 물려 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 목소리가 내 아이의 두뇌에 평생 각인된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느낌도 든다.

10대, 집 바깥 일에 관심 생기다

흥미롭게도 10대의 두뇌는 다르다. 13살 이상 청소년은 엄마 목소리보다 낯선 목소리에 더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엄마와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같은 연구팀이 13~16살 청소년 22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다. 모든 참가자는 생물학적 어머니에게 길러졌으며, 지능지수가 최소 80 이상이었고 신경학·정신적 또는 학습 장애가 없었다. 이번에도 음성 파일은 재생 길이가 1초가 채 안 됐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낱말의 나열이었다. 10대 실험 참가자들도 어린이와 같은 97% 확률로 엄마 목소리를 식별해냈다.

하지만 뇌 스캔 결과는 어린이와 사뭇 달랐다.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목소리에 대해 여러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청각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골라내는 영역, 그리고 자전적·사회적 기억에 관여하는 후측 대상피질 등이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뇌 반응도가 증가했고 상관관계가 매우 강력해서 실제로 연구자들은 뇌 스캔 결과를 보고 청소년의 나이를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10대들이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신호에 관심이 늘어나는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특히 보상을 처리하는 시스템인 측좌핵(뇌의 좌우에 신경들이 모여 있는 곳)과 사회적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엄마 목소리보다 낯선 목소리를 들었을 때 훨씬 더 많이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에 사회적 상호 작용이 크게 변하는데, 이 과정이 신경생물학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 연구”라며 “10대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집 밖의 목소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청소년은 귀도 독립할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과학칼럼니스트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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