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 북핵 문제…윤 정부 대책엔 ‘어떻게’가 없다
‘워싱턴 선언’ 확장억제 강화
북한 핵보유국 사실상 인정
미국 무관심, 보수정부 ‘뒷짐’
고차원 협상전략 필요한데…
우리는 어쩌다가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시달리며 살게 된 것일까요?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얘기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 핵의 역사와 사연은 절대로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북한이 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50년대부터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핵무기 사용 위협이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합니다. 1956년 소련과 ‘연합 핵 연구소 조직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과학자들을 파견해 전자물리, 방사화학, 원자로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배웠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영변 핵 연구 단지를 조성하고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는 등 제도 정비, 전문 인력 양성, 시설 확충으로 핵무기 개발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1975년에 벌써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핵능력 개발에 나섰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시설을 건설하고 재처리 활동을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
북한-미국 ‘치열한 핵 협상’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의 핵시설을 촬영해 공개하는 바람에 북한의 핵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1985년에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았습니다.
때마침 냉전 종식으로 미국이 전세계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거둬들이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철수했습니다. 1991년 12월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북한 핵 시설 사찰을 둘러싸고 국제원자력기구를 앞세운 미국과 북한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1차 북한 핵위기였습니다.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로 고비를 넘기고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철회했습니다.
2002년 제임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 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에 따른 중유 지원 등의 의무 이행을 중단했고, 북한은 반발했습니다. 2차 북한 핵위기였습니다. 북한은 감시사찰단을 추방하고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거듭 선언했습니다. 제네바 합의가 무너졌습니다.
2003년부터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 열렸습니다. 의장국인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2005년 9·19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9·19 공동성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한반도 비핵화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 지폐를 유통하고 불법 국제거래대금을 세탁했다”고 발표하면서 9·19 합의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북-미 관계는 악화했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이뤄졌습니다.
그 뒤 북한 핵 문제는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북한은 2009년 5월 2차, 2013년 2월 3차, 2016년 1월과 9월 4·5차,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는 이처럼 매우 오래된 역사와 배경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사안입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물론 북한 책임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민족의 생존을 담보로 한 도박입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여러 차례 고비에서 기회를 날려버린 우리나라와 미국의 책임도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우리는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대외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핵 문제를 자꾸 뒤로 미루었습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마지막 순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해로 협상이 ‘노딜’로 끝난 장면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비핵화 추진 의지·역량은 어디에?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북한의 핵 위협을 막아야 하는 단기적 과제가 있습니다. 둘째, 북한 핵을 폐기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장기적 과제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처음부터 단기적 과제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확장 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NCG) 설립”을 선언한 것이 핵심입니다.
워싱턴 선언 이후 우리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조금 더 안전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에는 한 가지 중대한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워싱턴 선언에 따르면 우리는 앞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인 채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미 양국도 이런 문제점을 의식한 듯 선언 마지막 부분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를 확고히 추구”한다고 딱 한 문장을 넣었습니다. 누가 봐도 면피용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윤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입니다. 때마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월7일 윤석열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전략의 뼈대를 담은 109쪽짜리 국가안보전략서를 발표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방안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는 비핵화 협상을 추진한다. 둘째, ‘담대한 구상’으로 북한 비핵화 이행 동력을 확보한다. 셋째,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한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지만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를테면 첫번째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는 비핵화 협상 추진’ 방안은 이런 것입니다.
“대화와 협상은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내실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비핵화 협상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는 어렵고 힘든 길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신뢰와 대화의 기틀을 잡아가는 바른길이 될 것이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두번째 ‘담대한 구상’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세번째 국제사회 공조 방안도 내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핵실험과 같은 중대 도발 시에는 새로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고, 우방국들과 조율하여 개별적 대북제재 조치를 병행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외교력을 동원한다.”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안이 무엇인지, 개별적 대북제재 조치는 무엇인지, 중국과 러시아가 역할을 수행하도록 ‘어떻게’ 외교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윤 대통령과 국가안보실 사람들에게 정말로 비핵화 추진 의지와 역량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냥 북한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속셈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미·중 아우르는 원대한 구상 필요
여러분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북한 당국자라면 우리 정부의 말을 믿고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습니까? 어차피 북한은 우리를 핵 협상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 협상 상대는 미국입니다. 처음에는 국교 수립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핵을 포기할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는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 사례가 반면교사로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까지 했지만, 나토의 지원을 받은 반군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 초 미국과 러시아의 설득에 핵무기를 다 내놓았는데, 그 바람에 러시아의 침공에도 지금 방어전만 치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절차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원대한 계획과 정밀한 로드맵,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한겨레>는 최근 ‘정전협정 한미동맹 70년’ 기획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제훈 선임기자가 쓴 세번째 기사는 ‘한반도 평화 시시포스의 고투’입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지난 다섯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시시포스의 고투와 다르지 않다. 헛힘 쓰기는 아니었다. ‘평화번영의 한반도’로 가는 여정을 가로막는 모든 걸림돌은 그 외양이 어떠하든 ‘한반도 임시군사정전체제’라 불리는 한반도 냉전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시시포스한테 ‘포기’가 없듯이, ‘평화번영의 한반도’로 가는 여정도 멈추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10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그도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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