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수해 현장 생방송 중 기자 울린 바나나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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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에콰도르 서북부에 있는 해안 도시, 에스메랄다스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건 지난 주말이다.
3∼4일(현지시간) 사이 12시간 동안 이 지역 한 달 치 비가, 하늘에 구멍 뚫린 듯 한꺼번에 내리자 주변을 흐르는 6개의 강이 동시에 범람하며 일제히 흙탕물을 주택가로 쏟아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마 씨는 한창 말을 이어가는 베돈 기자에게 미소를 보이며 가족 식량의 일부인 바나나를 건넸고, 이 모습은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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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 에콰도르 서북부에 있는 해안 도시, 에스메랄다스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건 지난 주말이다.
3∼4일(현지시간) 사이 12시간 동안 이 지역 한 달 치 비가, 하늘에 구멍 뚫린 듯 한꺼번에 내리자 주변을 흐르는 6개의 강이 동시에 범람하며 일제히 흙탕물을 주택가로 쏟아냈다.
다행히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6명이 다치고 2만여명이 한때 대피소 생활을 해야 할 만큼 수마는 많은 이의 평온했던 일상을 한순간에 파괴했다.
며칠째 똑같은 옷을 입고 토사를 치워내야 하는 고단함, 학교에 매일 가져가던 공책을 못 쓰게 된 상실감, 얼마 안 가 또 강물이 덮치지는 않을까 싶은 불안감은 현지 매체에서 전하는 수재민들의 인터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지난 7일 에콰도르TV의 마누엘라 베돈 기자도 수해를 입은 마를레네 바우티스타 하마 씨의 집을 찾아 생방송 리포트를 하며 재난 현장의 심각함을 열정적으로 전달했다.
피해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려는 듯 물이 허리까지 들어찬 집에 서서 방송하던 베돈 기자는 방송국 스튜디오에 있는 진행자들에게 "지역 식당과 상업시설마저 초토화됐다"며 "우리 방송팀이 (어젯밤에) 도착한 이후 구운 옥수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행자와 10여분간 질의응답을 한 베돈 기자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게 된 건 리포트를 거의 마칠 때쯤이다.
허리춤까지 오는 물속에 함께 있던 집주인 하마 씨가 조용히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바나나 한송이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마 씨는 한창 말을 이어가는 베돈 기자에게 미소를 보이며 가족 식량의 일부인 바나나를 건넸고, 이 모습은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해졌다.
베돈 기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분들의 연대 정신을 보세요. 잠시만요"라며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이 지역에는 모든 게 필요하다. 비가 올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에콰도르 주민들은 방송사 홈페이지와 베돈 기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보내거나 수재민 돕기 방법을 문의하는 글을 남기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와 소통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회상한 베돈 기자는 "하마 씨를 만난 이후 그의 밝고 긍정적인 태도에 계속 놀라고 있었다"며 "바나나를 받는 순간 고통, 무력, 감사, 공감의 감정이 혼합돼, 제가 들었던 모든 이야기와 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건지려 하던 모든 얼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주민들이 재해 때문에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의 심정은 어떨지 헤아리고 싶었다"며 "하마 씨는 되레 우리에게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여러 건의 보고서에서 재앙에 직면해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를 대상으로 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 국가트라우마센터 역시 호우나 홍수, 태풍 등의 피해를 본 사람은 우울장애에 시달리거나 반복적으로 죄책감을 호소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서, 가족 또는 친지, 친구와 연락하며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안내한다.
한국도 집중호우와 태풍 등 재해에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시즌에 접어들고 있다.
물론 아무런 피해 없이 평온하게 달력을 넘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곤경과 시련 앞에서 '바나나 한송이'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재해라도 함께 극복할 수 있으리라.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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