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 생생'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리모델링으로 형체만 남아

한종구 2023. 6.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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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가까이 무관심 속 방치…교민들 "독립운동 사적지 표지판 설치 시급"
중국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2021년(왼쪽)과 2023년 [촬영 한종구 특파원]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가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수도 베이징의 '일제 지하감옥' 시설이 리모델링으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이육사 순국지는 독립기념관이 운영하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 베이징 편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곳으로, 지하감옥으로 사용된 흔적들이 최근까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리모델링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10일 오후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푸징(王府井)에서 1.5㎞ 떨어진 둥창후퉁(東廠胡同) 28호에 위치한 이육사 순국지를 찾아갔다.

골목을 의미하는 후퉁이라는 이름답게 번화가 사이 좁은 골목 안으로 100m쯤 걸어가니 붉은색 대문 위에 '둥창후퉁 28호'라는 작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리모델링된 중국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촬영 한종구 특파원]

대문 입구에는 안면인식 출입 장치가 설치돼 외부인의 방문을 막고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잠금장치가 없어 내부를 둘러보는 데 별문제가 없었지만, 올해 초 이육사 순국일에 방문했을 당시부터 안면인식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중 아들 집에 왔다는 한 노인의 도움으로 운 좋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노인은 "작년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해 내부가 깨끗하게 바뀌었다"며 "지금은 10여가구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상전벽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헌병대가 1937년부터 일제 패망 직전까지 감옥시설로 사용했던 벽돌로 지어진 일제식 2층 건물(가로 25m, 세로 8m)은 중국식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변했다.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입구 2021년(왼쪽)과 2023년 [촬영 한종구 특파원]

지하 감옥으로 추정하는 증거인 오래된 쇠창살 등도 모두 철거하고 깔끔한 흰색 창호를 설치했다.

건물 외벽 바닥에 쇠창살이 박힌 50㎝가량의 환기구에는 콘크리트를 덧발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1년 전 방문했을 당시 건물 벽 곳곳을 뒤덮어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떠올리게 했던 포도 넝쿨은 모두 사라졌고, 흙바닥은 깨끗한 타일로 새로 단장했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공간은 증·개축으로 옛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곳곳에 널려있는 빨래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 건물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80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셈이다.

독립기념관이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서 이육사 순국지를 소개하며 '주변 지역 개발로 철거 등이 우려되니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한 게 떠올랐다.

리모델링된 중국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촬영 한종구 특파원]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과 관련해 첫 옥고를 치른 뒤 17년 동안 17번이나 수감됐다.

밤낮 없이 감시하는 일제 순사의 눈길과 갖은 고문 속에서도 결정적 증거를 잡히지 않은 채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다 국내 무기 반입 등을 이유로 1943년 가을 경성에서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돼 이듬해 1월 16일 새벽 고문 끝에 숨졌다.

국내 일부 역사학자와 이육사 후손들은 일제 헌병들의 시신 인계장소 등을 고려할 때 바로 이곳에서 이육사가 숨을 거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일제 시설물은 중국의 많은 항일지사가 고초를 겪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국 내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찍부터 보존 필요성이 제기돼왔지만, 구체적인 사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치돼 왔다.

매년 1월 이육사 서거일에 둥창후퉁 28호를 찾아가 조촐한 제사상을 올리는 등 베이징의 항일운동을 기록하고 있는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리모델링으로 순국지가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베이징 이육사 순국지 2021년(왼쪽)과 2023년 [촬영 한종구 특파원]

그간 재개발과 재건축이 잦은 베이징의 특성을 고려해 하루빨리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무관심 속에 소중한 사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가 중국과 협의해 독립운동 사적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베이징에는 26곳(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 기준)의 사적지가 있지만, 대부분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특히 이육사 순국지처럼 일부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으나,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없다.

홍성림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장은 "재개발이 아니라 리모델링이어서 건물이 철거되지 않고 외관이라도 남아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며 "하루빨리 둥창후퉁 28호가 독립운동 사적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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