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투약 실수로 아기 죽자 "쉿!"…그날 제주대병원에선

오미란 기자 2023. 6.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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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량 50배' 오투약 사고…사망 때까지 조직적 은폐
간호사 3명 최대 징역 1년6월 실형…검찰·피고 모두 항소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News1 홍수영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3월11일 오전 5시50분쯤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 한 아기가 심하게 헐떡이며 실려왔다. 전날 오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A양(1)이다.

응급처치를 받고 음압병실로 옮겨진 A양에게는 오후 2시11분쯤 담당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간호사에게 에피네프린(Epinephrine) 5㎎을 네뷸라이저(Nebulizer·연무기)로 천천히 투약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에피네프린은 기관지 확장이나 심장박동수 증가에 쓰이는 약물이다.

이에 3년차인 수행 간호사 진모씨는 투약 준비에 나섰다. 에피네프린이 담긴 주사기 바늘을 네뷸라이저 전용 캡으로 교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물품보관함에서 미처 캡을 찾지 못한 진씨는 순간 다른 환자가 들어오자 주사기를 내려놓고 급히 자리를 떴다.

오후 5시30분쯤 진씨는 다시 투약을 준비했지만 이미 처방은 까마득히 잊은 뒤였다. 환자 이름과 처방된 약물 종류, 투약 경로·시간·용량을 재차 확인하는 투약 원칙도 새카맣게 잊었다.

그렇게 진씨는 주사기 투약라벨에서 A양 이름만 확인한 다음 A양 왼쪽 발등에 연결된 수액 줄에 에피네프린 5㎎을 그대로 주사했다. 직접 주사 시 에피네프린 적정량은 체중 ㎏당 0.01㎎으로, 당시 A양 체중이 11㎏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정량(0.1㎎)의 무려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한꺼번에 투여한 것이다.

15분 뒤 A양에 몸에는 청색증과 함께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났다. 진씨는 보호자 호출을 받고 확인한 A양의 상태를 7년차인 담당 간호사 강모씨에게 보고했고, 보고 내용은 담당 의사와 당직 의사에게도 전달됐다. 그러나 해당 보고는 오투약 사고 경위가 빠진 '반쪽짜리'였다.

제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지난해 4월28일 오후 제주대학교병원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을 옮기고 있다.2022.4.28/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진씨가 자신이 벌인 오투약 사고를 인지한 때는 A양이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으로 옮겨지던 오후 6시20분쯤이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강씨의 말이 진씨의 정신을 깨웠다.

그즈음 간호업무를 총괄하는 수간호사 양씨도 이들로부터 전말을 전해 들었는데 추가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의사들이 단순히 급성 후두염으로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난 줄 알고 오후 7시30분쯤 A양을 음압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달 때까지도 입을 여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설상가상 수간호사 양씨와 담당 간호사 강씨, 수행 간호사 진씨는 사고를 은폐하기 시작했다.

양씨는 오후 8시쯤 강씨에게 투약 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도 모자라 오후 9시쯤에는 강씨, 진씨 등 간호사들에게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

실제 강씨는 양씨의 지시에 따라 투약 사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강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병원 전자의무기록시스템의 간호경과 창과 전과전동간호기록지 특이사항란에 각각 써 뒀던 담당 의사 처방 내용을 무단 수정하는 일까지 벌였다. 사고를 낸 진씨는 끝까지 침묵했다.

A양은 결국 이튿날인 12일 오후 6시52분쯤 눈을 감았다. 사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심근염'으로 기재됐다. 이 같은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강씨는 A양이 사망한 지 2시간여 만인 오후 9시13분쯤 전과전동간호기록지 특이사항란 내용을 전부 삭제하며 완전 범죄를 꿈꿨다.

제주대학교병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4월28일 오후 제주대병원 회의실에서 A양 오투약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2022.4.28/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오투약 사고가 상부에 제대로 보고된 날은 A양 사망 나흘 뒤인 16일이었다. 이미 장례절차까지 다 끝난 때였다. 유족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18일에야 병원으로부터 오투약 사고 내용을 전달받았고, 한 달 뒤인 4월23일 병원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유기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12월15일을 시작으로 약 5개월 간 진행된 재판 내내 유족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지난 3월16일 열린 4차 공판에서는 증인석에 선 A씨의 어머니가 "저는 마지막 순간 딸의 몸을 닦아줄 수도, 기저귀를 갈아줄 수도, 수의를 입혀줄 수도 없었다"며 재판부를 향해 "이런 비통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온 세 간호사는 객관적인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했다. 양씨는 오투약 사고를 은폐한 이유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간호사들의 앞날이 걱정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업무상 과실 또는 유기 행위와 A양 사망 사이 간 인과관계는 전면 부인했다.

심리 끝에 지난달 11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양씨에게 징역 1년, 강씨에게 징역 1년6개월, 진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 간호사의 업무상 과실로 A양이 숨진 사실과 세 간호사가 오투약 사고 은폐로 A양을 유기한 사실은 유죄로 인정했지만, 유기행위와 A양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유기치사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판결에 검찰과 세 간호사는 모두 형량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7월 중 열릴 예정이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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