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이나 CFD보다 라덕연 대표와 금감원이 핵심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이상민 2023. 6. 11.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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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5월11일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 ⓒ연합뉴스

비행기가 추락하면 언론은 추락 원인을 보도해야 한다. 그런데 추락 원인을 ‘중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팩트는 맞는다. 중력이 아니면 비행기는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포괄적이다. 추상화 수준을 더 낮춰야 한다.

반대도 있다.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쓰러졌다. 1년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가 사망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백남기 농민의 직접 사인이 심폐정지이며, 죽음의 종류는 병사라고 사망진단서에 기재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심폐정지’는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사망의 증세이지,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라고 했다. 결국 서울대병원도 선행 사인을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중간 사인을 ‘패혈증’으로, 직접 사인을 ‘급성신부전’으로 바꿨다. 죽음의 종류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포괄적이어도 안 되지만, 너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어도 안 된다. 다양한 원인 중, 특정 현상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빨간 우의’를 입은 남자의 구타에 의한 사망설이나, 심지어는 백남기 유가족의 연명치료 거부에 의한 사망설은 팩트조차 틀린 사망원인이다. 이러한 일베 수준의 사망설을 많은 언론이 보도했다는 사실은 언급하는 것조차 한탄스럽다.

최근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보자. 일단 이 사건의 가장 흔한 명칭은 ‘SG증권발 주가폭락 사건’이다.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가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에서 개설한 CFD 계좌를 통한 주가조작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명칭이 과연 이 사건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다른 주가 조작범이 만일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주가조작을 했어도 과연 ‘삼성증권 사태’라고 언론이 보도했을까? 삼성증권처럼 언론 홍보팀이 효율적으로 꾸려진 국내 증권회사라면 주가조작과 상관없는 증권회사 명칭으로 이 사태를 설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라는 표현이다. 라덕연 대표의 실명을 쓰면서 이 사건 핵심인 ‘호안스탁’이라는 회사명을 굳이 이니셜로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정명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사건의 명칭은 사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은 당연하다. 그래도 ‘라덕연 게이트’라는 일부 언론의 성급한 네이밍보다는 낫다. 아직 권력과의 연관성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라덕연 게이트’라는 명칭은 선정적이다.

언론의 원인 진단, 지나치게 넓거나 좁지는 않은가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의 주가조작 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언론이 가장 많이 언급한 원인은 CFD(차액결제거래)의 문제점이다. CFD는 적은 증거금만으로도 다량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투자 금액보다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레버리지 파생상품이니만큼 위험성을 지닌 거래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CFD 거래를 손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라덕연 주가조작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CFD 외에 언론에서 많이 거론하는 것은 가수 임창정씨의 관여 여부다. 그러나 임창정씨의 행동은 지나치게 협소한 원인이다. 최소한 정론지라면 임창정씨를 통해 이번 사건을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럼 이번 사건의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일차적 원인은 라덕연 호안스탁 대표의 주가조작 행위다. 그리고 라덕연 대표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원의 책임이 핵심이다. 사실상 ‘주식 리딩방’ 형식으로 운영되는 유사투자자문업체의 주가조작 행위에 대응해야 할 주체는 금융감독원이다. 금융감독원에 책임을 묻고 이와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에 더 많은 언론이 관심을 갖기 바란다. 독자도 언론이 제시한 원인 진단이 지나치게 넓거나 좁지 않은지 항상 판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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