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도 ‘노키즈존’ 논란, 그 안에 도사리는 ‘성인주의’ [평범한 이웃, 유럽]

김진경 2023. 6. 11.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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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아동 출입이 금지된 장소들은 적지 않다. ‘노키즈존’ 대신 ‘차일드프리 존(child-free zone)’ ‘킨더프라이초네(Kinderfreizone)’ 같은 표현을 쓴다.
독일 함부르크의 카페 ‘모키스 구디즈’는 아동 출입 금지 조치 이후 페인트 스프레이 공격을 받았다. ⓒ rajamo 인스타그램 갈무리

2019년 3월,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모키스 구디즈(Moki’s Goodies)’라는 이름의 작은 브런치 카페가 소셜미디어에서 갑자기 화제가 됐다. 아보카도 토스트나 디톡스 주스 같은 메뉴,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장소로 유명하긴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이 카페가 ‘6세 이하 아동 출입 금지’라는 규정을 새로 만든 게 문제였다. 건물 입구에 쓰인 ‘맛있는 음식’ ‘사랑으로 만든 신선하고 좋은 음식’이라는 글씨 아래쪽에 유아차와 개를 금지한다는 표식이 붙었다. 함부르크 주민들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소셜미디어에서 이 카페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관련 포스팅에는 ‘#schnullergate(슈눌러 게이트)’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다. 슈눌러(schnuller)는 독일어로 아기들이 쓰는 고무젖꼭지를 뜻한다. 고무젖꼭지로 상징되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이 카페의 대우가 정치 스캔들급으로 확대된 듯 보였다. 지역 일간지 〈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는 “카페에서 아동 출입을 금지한 첫 사례”라고 보도했다.

카페가 도마에 오른 지 며칠 후, 카페 주인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장문을 냈다. “친애하는 슈퍼맘들에게(Liebe Supermuttis)”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나도 딸과 조카들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아이들을 싫어한다는 공격은 말도 안 된다. 그리고 모키스 구디즈는 엄마와 자녀들을 위해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민주적 프로젝트가 아니다. 내 개인 자금을 투자해 내가 생각한 콘셉트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따라서 내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이 입장문은 논란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 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이 카페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했다. ‘6살 케빈!(Kevin 6 Jahre!)’이라는 글씨가 통유리창을 뒤덮었다. 독일은 물론 오스트리아, 스위스 언론에도 이 일이 보도됐다. “아동 혐오자들과 슈퍼맘들 사이의 싸움이 과민한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라는 진단부터 “조용한 공간과 아이들이 떠들 수 있는 공간으로 식당을 분리하는 게 해결책(스위스 〈타게스안차이거〉)”이라는 제안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이 카페가 유독 주목받기는 했지만, 사실 유럽에도 아동 출입이 금지된 장소들은 적지 않다. ‘노키즈존’ 대신 ‘차일드프리 존(child-free zone)’ ‘킨더프라이초네(Kinderfreizone)’ 같은 표현을 쓴다. ‘아동 부재’라는 의미에서는 노키즈존과 동일하다. 에둘러 조용한 장소라는 뜻의 ‘콰이어트 존(quiet zone)’ ‘루에초네(Ruhezone)’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스위스 호숫가에 자리잡은 공공 수영장들은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하려는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용자 상당수는 아동과 청소년이지만 일부 수영장에는 루에초네가 있고, 그곳에서 아동은 환영받지 못한다. 주요 교통수단인 기차에도 루에초네 칸이 있다. 이 칸에서는 전화 통화는 물론이고 작은 소리로 대화하는 것, 심지어 헤드폰으로 음악 듣는 행위도 금지된다. 당연히 아이들, 또 아이를 동반한 성인들은 이 칸을 이용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 국영철도(ÖBB)의 루에초네. 아동과 아동을 동반한 성인은 이 칸을 이용할 수 없다.ⓒÖBB 웹사이트

건물 전체에 아동 출입을 금지하는 호텔도 있다. 기껏 시간과 돈을 들여 계획한 휴가 중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겨냥한 업소들이다. ‘아이 없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독일어로 된 웹사이트(urlaub-ohne-kinder.info)는 아동 출입이 금지된 전 세계 호텔 목록을 제공한다. 이에 따르면 5월 현재 총 92개국 1540개 호텔에서 10세 이하 아동의 출입을 금지한다. 여기엔 파티 호텔, 동성애자 호텔, 싱글 호텔 등 특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도 포함된다. 이 호텔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고객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일부 고객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려면 아동 출입 금지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노키즈존이 ‘다양성’ 아닌 이유

밤늦게 음악을 크게 틀고 파티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아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성인들을 겨냥해 아동 출입을 금지하는 호텔의 전략은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카페 모키스 구디즈 주인의 말처럼 개인 자금을 투자한 사업장의 영업 방식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를 ‘다양성’으로 포장하는 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의 권리가 제한된다면,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성이 아니라 ‘특수성’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집단의 이해관계가 만나고 뒤섞이면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가는 게 다양성의 실현이라면, 공간과 집단을 분리해 애초에 충돌의 여지를 차단하는 것은 특수성의 실현이다.

일부 연령대를 소외시키는 특수성의 실현 방식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노키즈존, 차일드프리 존, 콰이어트 존… 어떤 단어를 쓰든, 이 현상 뒤에는 뿌리 깊은 배제의 문화가 존재한다. 이를 일컫는 용어도 여러가지다. 우선 연령차별주의(ageism)는 말 그대로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소외시키는 사회적 이념 및 행위를 뜻한다. 1969년 미국의 정신의학자 로버트 버틀러는 이 용어를 처음 고안하면서 연령 차별이 특정 피부색이나 성별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동일한 차별 행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연령(age)이 중립적 용어라고는 해도 연령차별주의 연구에서 주로 다루는 문제는 노인 차별이다. 노인 개개인마다 다른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무시한 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전체를 한 집단으로 묶어 이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태를 일컬을 때 연령차별주의라는 말이 쓰인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 대한 차별을 지목하는 용어로 더 적절한 것은 아동차별주의 또는 성인주의로 번역되는 어덜티즘(adultism)이다(이하 성인주의로 통일). ‘성인이나 성인이 만든 시스템에 의해 아동과 청소년이 겪는 억압’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가 자리 잡은 것은 1978년 심리학자 잭 플래셔에 의해서다. 성인주의는 어른 개인이 아동에 대해 행하는 편견·차별·폭력·학대를 뜻하기도 하고, 성인 중심의 사회제도가 아동 전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현상도 가리킨다. 이 밖에도 부모지배체제(Parentiarchy), 성인지배체제(Adultocracy), 성인중심주의(Adultcentrism) 같은 말들이 쓰인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부모, 교사, 의사 등 어떤 방식으로든 아동과 관계를 맺는 성인에 의해 아동의 권리가 제한되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이러한 차별의 잠재적 선행 사건으로 제시되는 개념도 있다. 아동공포증(pedophobia), 청소년공포증(ephebiphobia), 나아가 임신공포증(tokophobia) 등이다. 아동공포증이나 청소년공포증이 웬 말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중2병’이나 ‘X린이’(‘요리’ ‘주식’ 등에 ‘어린이’를 합성해 해당 분야의 초보자를 일컫는 유행어. 요린이, 주린이) 같은 단어를 떠올려보자. 비웃음과 공포는 차별의 두 얼굴이다. 불완전하고 미숙해서 우스운 존재, 어디로 튈지 몰라 두려운 존재, 그래서 통제해야 할 존재. 이것이 아동을 대하는 성인주의적 관점이다.

성인주의가 미치는 범위를 노키즈존에서 좀 더 확장해보자. 예를 들어 법적 성년이나 선거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현재 18세 이상에게 선거권, 즉 투표할 권리가 주어진다. 오랫동안 20세였다가 1991년 18세로 낮춰졌다. 지난 10년 새 스위스의 총 26개 칸톤(주) 중 절반 이상에서 투표 연령을 이보다 더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주민투표를 통해 16세 이상에 선거권을 부여한 칸톤은 글라루스 한 곳뿐(2007년)이다. 베른, 취리히 등 주요 칸톤들에서는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표 연령을 낮추는 데 찬성하는 쪽의 주장은 이렇다. 현재의 정치적 결정에 가장 크게, 또 가장 오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동과 청소년이다. 기후 정책이 대표적 예다. 그러니 이해당사자들의 선택과 결정을 투표를 통해 최대한 일찍 반영하는 게 옳다. 또한 투표자 집단이 확장될수록 민주주의는 더 강화된다. 특히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참여가 중요하다. 반면 선거 연령을 낮추는 데 반대하는 쪽의 대표적인 논지는 ‘의무 없이 권리 없다’이다. 18세가 되어야 법적으로 성년이 되어 세금을 납부하는데, 납세는 물론 스스로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도 없는 16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거다.

오스트리아 국영철도(ÖBB)의 가족 칸. 아동으로부터 공간과 집단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많다. ⓒÖBB 웹사이트

성인 누구나 한때 아동이었다

양쪽 다 일리 있는 말이다. 문제는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16세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받는 대신 어떤 의무를 질 것인지 물은 적이 있는가. 스위스처럼 직업 교육을 통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곳에서 16세와 18세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에서 민법상 성년은 2011년에야 19세로 낮아졌다. 왜 스위스와 한국에서 각각 성인 대우를 받는 나이가 다를까. 왜 영국에서는 21세였던 법적 성년이 1970년부터 갑자기 18세가 되었는가.

성인주의에 의한 의심스러운 사회 통제는 더 있다. 음주나 흡연 허용 연령에는 과학적 기준이 있는가. 왜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나 사회의 종교를 따르도록 강요받는가. 의무교육의 기간과 내용은 왜 그렇게 구성됐는가. 영화 관람등급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미성년자의 행동을 일일이 통제하는 이 시스템은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드는가. 정말로 ‘보호’ 목적인가. 보호는 성·인종·장애 등 다른 종류의 차별에서도 구실로 쓰이지 않던가.

노키즈존 논란은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에 주목할 수도 있고, 아동 배제 정책이 필연적으로 이들의 보호자, 특히 엄마인 여성을 함께 차별하는 효과에 집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주린이’ 같은 말이 농담으로 쓰이는 사회에서 어린이 정체성을 가진 시민의 삶은 어떨까. 성인 누구나 한때 아동이었음을 생각하면 더 씁쓸한 일이다.

‘패싱(passing)’은 정체성의 경계를 가로지른다는 뜻으로, 한 개인이 인종·성·종교 등과 관련해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으로 간주되는 것 또는 그렇게 간주되도록 행세하는 것을 말한다. 피부색이 밝은 혼혈 흑인이 백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패싱은 인종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인 경우가 많았다(고든 올포트, 〈편견〉). 노키즈존을 지지하는 성인은 스스로가 아동에서 패싱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패싱을 통해 자신이 차별에서 벗어났다 해서 그 차별이 사라진 건 아니다.

김진경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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