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원하는데, 인격권도 감안…신상공개 딜레마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이광빈2 입력 2023. 6. 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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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이광빈 기자]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이 풀어갈 이슈,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얼굴을 꽁꽁 싸맨 살인 피의자 정유정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강력범죄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 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법적 뒷받침이 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연쇄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적 여론이 끓어오르자 관련 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 문제는, 피의자의 인격권과 공익적 가치 간의 충돌로 딜레마를 안아왔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사진과 실제 외모 간 차이 등으로 인한 실효성 논란도 벌어져왔는데요. 먼저 고휘훈 기자가 최근 논란을 짚어봤습니다.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논란…범죄예방 역할 하고 있나 / 고휘훈 기자]

[기자]

올해 23살 여성인 정유정.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풀숲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입니다.

정유정의 신상정보는 범행 닷새 만에 공개됐습니다.

두 달여 전에 있었던 서울 강남 납치·살해 사건 이경우 등 다섯 명.

그리고 작년 12월,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

같은 해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전주환까지, 대부분 살인 혐의자며 이들의 신상 공개는 최근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박찬혁 / 영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각 시도 경찰청별로 신상공개에 대한 사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공개되는 경우와 비공개되는 경우에 대한 결과(를 놓고)는 시민들의 반응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살인미수 등 다른 강력범죄에도 범죄자의 신상공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형평성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사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있었던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입니다.

범행의 잔인성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상에 많은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피해자 역시 공개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그리고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피의자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고, 급기야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그 신상을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 "바로 제가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함으로서 피해자가 평생 동안 느낄 수 있는 고통과 두려움에 분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게 됐습니다."

한쪽에선 사적 제재 혹은 사적인 보복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는 언론의 주목을 받아야만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범죄 예방적 기능을 위해 신상공개가 살인 이외 범죄로도 더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지금의 살인죄 같은 경우 전혀 그런 게(범죄예방 효과) 없잖아요. 사실 무기징역이나 사형으로 가기 때문에(공개해도 실효가 적고)…어떠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신상공개 제도가 지금 현시점은 아니기 때문이란 말이죠."

연합뉴스TV 고휘훈입니다.

[이광빈 기자]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은 하루이틀 있었던 게 아닙니다.

사진이 실제와 너무 달라 소용이 없다, 신상공개가 가능한 범죄가 적다는 등의 지적은 계속돼 왔는데요. 이에 따라 관련 법안들도 속속 발의된 상태입니다. 국회에 어떤 개정안들이 올라와 있는지, 이다현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국회엔 개정안 수두룩…"신상공개 실효성 높이자" / 이다현 기자]

[기자]

21대 국회엔 현재 17건의 '특정강력범죄 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다수가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가해자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많습니다.

한 달 이내 또는 수사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 즉 가능한 한 최근 모습을 공개하자는 겁니다.

지나치게 보정된 사진이나 오래전 사진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에 가까운 모습을 공개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법안들뿐만 아니라, 신상공개 대상 범죄를 더 늘리자는 취지의 법안들도 나와 있습니다."

아동학대살인죄나 장애인학대 관련 범죄도 특정강력범죄에 포함시켜 가해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가능하게 하자는 법안들이 대표적입니다.

해당 범죄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학대를 근절하자는 게 법안을 낸 이유입니다.

또 음주운전을 상습적으로 했거나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도 신상공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하태경 / 국민의힘 의원> "음주치사죄를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음주치사죄를 살인에 준하는 중대 범죄로 다룬다는 그런 새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얼굴 공개 방법이나 신상공개위원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법 개정을 통해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웅혁 /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국제적 규범에 맞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혹시 있을 수 있는 무죄추정 오류에 대한 비난 가능성 때문에 법안 심사가 지지부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개정안 발의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합뉴스TV 이다현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피의자 신상 공개 문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해외 주요국들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해외 주요국들에선 대체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도 뚜렷한 공통된 규정은 없습니다. 피의자를 촬영한 일명 '머그샷'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할 경우, 공개 여부에 놓고 각 연방항소법원 간에 입장이 달랐습니다.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에 따라 수사기관의 기조도 달라졌는데요. 연방보안청(USMS)은 2012년 말부터 공개지명수배 등 사법 집행의 목적을 제외하고 머그샷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가 피해자를 낳은 경우들도 나왔습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1996년 7월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행사 경비원이던 리차드 쥬얼은 수상한 가방을 발견하고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사람들을 대피시켜 영웅이 됐는데요. 3일 후 연방수사국이 엉뚱하게 쥬얼을 테러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이 사실이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돼 순식간에 쥬얼은 테러리스트로 인식됐습니다. 이후 혐의를 벗었고 6년 후엔 진범까지 잡혔지만, 여전히 그를 용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쥬얼의 이런 이야긴, 그의 이름을 딴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독일의 경우, 피의자에 대한 공개적 신원노출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범죄에 대한 증거가 명백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경향인데요. 다만, 중대 범죄의 경우 신상 정보 공개에 따른 사회적 이익이 인정될 경우 신원을 명시한 보도가 허용되기도 합니다.

영국은 공정한 재판의 이익이 언론 자유의 이익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다뤄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들의 상황은 다양하지만, 피의자 프라이버시권과 신상 공개로 인한 공공 이익의 크기를 비교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다만, 신상 공개 정보로 인한 공공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특히 범죄 예방 효과 측면에선 평가가 갈립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과 강도, 방화 등 범죄의 발생건수는 2186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신상 공개를 하기 이전인 2009년 9606건 대비 약 77% 줄어든 것인데요. 이를 놓고 신상 공개에 따른 '수치심 효과'로 범죄가 억제됐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반면, 살인과 강도 범죄는 상당히 줄었지만, 성범죄는 증가해 신상 정보 공개가 과연 효과적이었느냐는 반론도 나옵니다.

흉악범이라고 모두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특정 법률을 위반한 피의자 중, 수사기관의 지침에 해당하는 이들만이 공개됩니다.

하지만 법에서 규정한 기준과 수사기관의 지침은 공개된 적이 없는데요.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만큼,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채희 기자입니다.

['오락가락·불투명' 신상공개 제도…바람직한 개정 방향은 / 한채희 기자]

[기자]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는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10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수사기관이 직접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없었는데, 언론에서 강호순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근거 규정은 현재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처벌법에 마련돼 있습니다.

범행이 잔혹하고, 증거가 충분히 있으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재범 예방 등 공익에 부합할 때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의 경우에도 비슷한 조건을 충족했을 때 공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범죄가 중대한 피해를 일으키는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피의자에 중상해죄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피해자는 중대한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중상해죄는 살인이나 강간 등의 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되지 못한 겁니다.

<김광현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국민들은 이게 무슨 범죄냐보다도 범죄가 어떤 내용이었느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냐를 중시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에서 일정 부분 괴리가 발생하는 거 아닌가…"

물론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해서 피의자의 얼굴이 반드시 공개되는 건 아닙니다.

경찰은 시도경찰청 산하에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공개 여부와 범위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데 실질적인 기준이 되는 경찰청 지침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결국 수사기관의 재량에 따라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전문가들은 신상정보 공개의 구체적 시기와 기준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김광현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경찰청 지침은 일단 공개가 되어있지 않고…관련 전문가들도 어떤 걸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파악이 약간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대중의 관심이나 여론에 따라 신상공개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범죄 예방이나 재범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판단 기준을 하위 법령에 만들고 이를 결정하는 실질적 지침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한채희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사회적 환기가 된 강력 범죄에 대해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신원 공개에 찬성해 왔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로부터 안전할 권리 등 공익적 가치가 크다는 것인데요. 신상 공개에 대해 법적 토대가 갖춰지고 계속 이뤄져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가 무죄추정 원칙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계속돼왔습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강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 제도가 공익적 목적을 살리면서도,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사회적 논의를 통한 보완이 필요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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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김선호 AD 허지수 송고 이광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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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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