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정유정 쌤' 오면 어떡해요?"…불안에 떠는 아이들 [이슈+]

홍민성 2023. 6. 10. 20: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집 아니면 학생 집…과외는 꼭 집에서만?
정유정 사건에 "집에 부르기도, 가기도 불안해요"
"학원법 개정해야" 목소리에 당국은 '신중론'
"의도 범죄로 법 개정? 제2의 민식이법" 우려도

학부모인 것처럼 가장해 또래 여성의 집을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한 정유정(23)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개인과외 장소를 '집'으로 한정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이하 학원법)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와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선생님 집 아니면 학생 집…과외는 꼭 집에서만?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 / 사진=뉴스1


학원법 2조는 교습비 등을 받는 개인과외교습은 학습자 또는 교습자의 주거지(단독주택 또는 공동주택)에서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외를 받으려면 학생이나 선생님 둘 중 한 명의 주소는 반드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조항에 따라 거주지 외 카페, 도서관 등 다수가 모이는 개방적인 장소에서 과외를 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만약 카페에서 과외를 하다가 신고당할 경우, 교습자는 1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과외업계 관계자는 "양측 안전을 위해 불법을 감수하고 카페 등에서 과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거지에서 이뤄지는 수업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집으로 부르기도, 가기도 불안해요"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과외는 대개 교습자 또는 학습자의 집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생님을 집으로 부르기도, 선생님 집으로 가기도 무서워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유정 사건을 비롯한 과외를 계기로 일어난 여러 범죄는 대부분 학습자나 주거지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고등학생인 것처럼 속여 20대 여대생을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을 시도한 20대 남성이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또 2021년 3월에는 20대 여대생을 고시원으로 유인해 성폭행하고 한 달가량 감금한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과외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가 커지는 분위기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2학년생 이 모 양은 "정유정 사건을 보고 집에서도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무서운 마음이 생겼다"며 "'과외선생님으로 정유정 같은 사람이 오면 어떡하냐'면서 학원으로 마음을 바꾼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중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박 모 씨는 "예전에는 과외선생님이 집으로 올 때 잠깐 마트에 장을 보거나 하기 위해 집을 잠시 비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괜히 불안한 마음에 과외 시간에는 꼭 집에 붙어있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지역에서 과외 앱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대학생 이 모 씨는 "학생들의 집으로 가게 되다 보니, 특히 첫 방문 때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번에 더 무서워졌다"며 "카페 같은 곳에서 과외를 할 수 있게 되면 이런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원법 개정해야" 목소리에 당국은 '신중론'
"제2의 민식이법" 우려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우려가 불식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원법 2조에 대한 개정이 필요한데, 교육 당국은 사안에 따른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신중론을 펼쳤다. 국회에서는 의도를 개인의 범죄가 법 개정 검토로 이어지는 건 '제2의 민식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 개정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냐'는 질의에 "해당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으며, 법 개정은 시도 교육청, 학원 관계자 등의 의견을 들어보고 검토를 해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당초 교습 장소를 주거지로 한정한 것도 학습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밝혔다.

학원업계 관계자는 "거주지 외로 교습 장소를 풀어주면 오피스텔 불법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카페 사장님들이 힘들다는데, '카과족'(카페에서 과외)이 생기면 사장은 무슨 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은 "의도를 가진 개인의 범죄로 법률 개정까지 논하는 건 자칫 제2의 '민식이법'이 될 우려가 있다"며 "현행 학원법은 과외교습과 교습소, 학원 등의 구분을 유지하고 있고 큰 틀에서 과외교습은 '민생의 영역'일 수도 있어서 개정안이 과도한 규제법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