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세상] 남을 위한 창과 나를 위한 방패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3. 6. 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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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ovie 다우트❽
정치 지도자들의 편 가르기
상대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자신의 허물은 정당화해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은 금욕적이다. 얼굴에서 육기와 기름기를 제거해버린 수도승과 같은 모습이다. 기름기와 더불어 웃음기까지 제거해 버렸다. 어쩌면 진정한 수녀다운 모습이다. 교장 선생님으로서도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교구 학교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하다.

노수녀에게 관대한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은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수녀가 금욕적이고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엄격하게 훈육한다는 것이 문제 될 건 없다. 더구나 수녀원과 교구는 뉴욕시의 브롱크스(Bronx)에 속해 있다. 브롱크스는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부터 '브롱크스에 비하면 할렘은 베벌리힐스'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흑인들이 밀집하고 온갖 범죄가 만연한 지역이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우범지역에 속한 학교이다 보니 알로이시우스 수녀도 학생들에게 더욱 엄격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악명 높은 브롱크스 지역의 8학년생들이다. 우리나라 학제로 치면 '무서운 중2들'이다. 그런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게 금욕적이지 않아 보이는 데다 학생들을 엄격하게 훈육하지도 않는 플린 신부가 불안하고 못마땅해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묘한 장면이 엉뚱한 삽화처럼 끼어든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을 중심으로 수녀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한 노老수녀가 바로 앞에 놓인 포크를 시각장애인처럼 더듬어 찾는데도 찾지를 못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모른 척하고 슬그머니 노수녀가 더듬어 찾는 포크를 손 가까이 밀어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젊은 제임스 수녀에게 그 노수녀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살펴 줄 것을 당부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엄연히 수녀원의 규정 위반이다. 수녀원의 규정에 따르면, 늙거나 병들어 자신의 힘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수녀원을 떠나야 한다.

못마땅한 플린 신부와 학생들에게는 그토록 규정과 원칙을 들이대고 닦달하면서 '내 편'인 노수녀에게는 규정과 원칙을 슬그머니 거둬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플린 신부의 언행에 미심쩍은 일이 있으면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교구의 주교에게 문의하는 규정과 원칙을 무시하고 난데없이 교구 수녀들에게 '소문'을 내는 편법도 불사한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기원을 남에겐 무자비하지만 내겐 관대한 속성에서 찾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결국 '원칙주의자'처럼 보였던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원칙주의자'도 아니었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뛰어난 리더십도 아니었다. 그저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보통사람들의 모습일 뿐이었다.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 「트라키스의 여인들(The Trachiniae)」을 닮았다. 소포클레스는 인간들의 비극의 기원을 타인에게는 무자비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한 인간의 속성에서 찾는다. 자신은 창으로 남들을 무자비하게 찔러대고, 남들의 비난에는 정당화라는 방패로 맞선다. 평범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알로이시우스 수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금욕적이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리더십으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존경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학생들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마지못해 교장선생님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무원칙'에 플린 신부는 결국은 대화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최측근인 순진한 제임스 수녀도 그녀의 '무원칙'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다. 플린 신부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비극이기도 하다.

정치 지도자들은 네 편 내 편을 갈라놓고 상대를 무자비하게 찔러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모습은 소포클레스가 그린 인간의 속성 자체다. 어쩌면 인간들의 속성 자체가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네 정치 지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네 편 내 편을 갈라놓고 상대를 무자비하게 찔러대고 자신의 허물은 모두 정당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모두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자비하게 엄격하다. 모두 알로이시우스 수녀를 닮은 듯하다. 네 편에겐 관대하고 내 편에겐 엄격한 지도자를 원한다는 게 과욕일 수도 있겠지만 쓴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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