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디자인에서 순수미술로…‘바람’ 그리는 김경환 작가
‘바람이 그린 그림’ 주제로 개인전 열어
“바람,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거대한 흐름 느낀다”
대기업에서 산업 디자인 실무를 총괄했던 김경환 작가가 순수 미술 대열에 합류했다.
김 작가는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인사아트에서 ‘바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베테랑 디자인 전공자가 순수미술 작가 대열에 합류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작가는 이번 5번째 개인전을 통해, 존재하나 보이지는 않는 ‘바람’을 그리려고 했다. 반복 작업으로 거친 빗살을 그려내 강한 리듬감과 운동감을 연출해 바람의 흔적을 가시화했다는 설명이다.
제작 과정은 불규칙해보이지만,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수용자에게는 ‘반복’을 통한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고 김 작가는 전했다. 특정한 개체를 작품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규칙적인 질서에 의해 율동이 생성된다. 이런 반복은 자연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질서이기도 하다.
1957년 6월 서울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제일기획에 입사해 삼성그룹의 국내·해외 전시 디자인 실무를 담당했다. 이를 토대로 경희대학교에서 10년간 교수직을 역임한 뒤 최근 교단에서 내려왔다.
그동안 200건이 넘는 디자인 실무를 처리한 김 작가지만 순수미술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5차례의 개인전과 1차례의 초대전을 열었고, 단체전에서도 20번 이상 참여한 경력이 있다. 백석대학교 조형관 단체전, 서울대학교 갤러리 단체전 등에서 3차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경기도 안성에서 자연과 더불어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다음은 김 작가와 일문일답.
-30년 넘게 산업디자인 업계에 몸담고 있다가 순수미술 작가로 변신했다. 계기가 있나?
=산업디자이너에서 전업 미술 작가로 변신한 개인적 계기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의뢰인 없는 순수 자아의 요청에 의해 자유로운 시각적인 성과물을 그려보는 것이 평생 소망이었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코로나19’로 사람간의 만남이 제한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독자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빌려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산업디자인과 순수미술, 두 분야를 다 경험해보니 어떤 점이 다른가?
=산업디자인 업무 중 기획부분에서의 그리는 작업과, 순수미술에서의 그리는 행위 둘 다 그림의 본질인 시각적인 형태와 요소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므로 그 성질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다르다. 순수미술은 계획자와 제작행위자가 동일인물인 반면, 산업디자인은 계획자와 제작자가 분리된다. 이로 인해 순수미술은 독창적이고 주관적인 성과물을 만들 수 있는 반면, 산업디자인은 전달의 기능이 우선인 만큼 협업과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창작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개인전시회 주제가 ‘바람’이다. 주제 선정 이유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변화의 흐름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늘 접하면서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느낄 뿐이다. 무형의 디지털 온라인 세계에서는 고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해간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래서 변화를 이끄는 여러 요인들 중 바람이 차지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싶었다. 통칭 ‘변화’를 ‘바람’이라고 칭하기도 하지 않나. 흐르면서 존재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바람’을 그렸다. ‘바람의 흔적’을 가시화 하는 작업이었다. 흐름의 ‘부드러움’이 고정의 ‘단단함’을 이기는 세계를 나타내고 싶은 개인적 바람도 섞여있다.
-작가로서 어떤 작품의 정체성을 추구하는가?
=현대 미술이 점점 등한시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강하거나 격하지 않으면서도 시간과 흐름이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시켜 준다. 동시에 색상과 형태의 조합 등 시각적 표현방법을 탐구함으로써 뇌를 자극시켜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성이 생긴다. 그리는 과정은 인간의 성장기뿐 아니라 노화기에 심신 건강을 보좌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자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국가에서 예술가들의 창작공간과 전시공간을 확보하는데 더욱 주력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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