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와 이지. 성리학에서 다룰 듯한, 심연의 가르침을 내포했을 듯한 두 단어의 뜻과 상관관계가 한 번에 파악되시나요? 만약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뉴스를 접하셨거나 스니커즈에 관심이 높은 분이시라면 단박에 아실듯한 두 단어. 힌트를 드리면 하나는 사람의 이름이고 또 하나는 브랜드 라인업입니다.
다름 아닌 미국 힙합가수 예(Ye)와 아디다스의 대표 브랜드 이지(Yeezy)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예’가 누구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 미국을 대표하는 힙합가수 카니예 웨스트의 개명한 이름입니다. 카니예 웨스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할리우드 유명 방송인 킴 카다시안의 전 남편이라고 하면 아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포츠 의류업계의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나이키와 아디다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푸마, 리복 등이 이 아성에 도전했고 최근까진 언더아머가 공고한 양강체제를 깨트리려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죠. 사실 나이키의 독주가 돋보이는 가운데 아디다스가 지금까지 버텨온 힘, 바로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한 ‘이지’ 브랜드가 대박을 쳤기 때문입니다.
나이키는 전세계를 대표하는 스포츠 아이콘 마이클 조던과 협력해 나이키 조던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스포츠 선수의 이름이 그대로 브랜드로 쓰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조던 스니커즈였습니다. 조던1을 필두로 매년 발매된 조던 시리즈는 농구화 브랜드가 아닌 10대와 20대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도 조던 브랜드는 패션 아이템이자 수집용 물품으로 인기를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한정판 조던 신발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호가하며 스니커즈 문외한에겐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했죠.
이처럼 나이키가 조던을 앞세워 승승장구를 이어간 가운데 아디다스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여러 스포츠 선수와의 협업도 있었지만 마이클 조던의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고심끝에 아디다스가 손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힙합가수 카니예 웨스트였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나이키서 가로챈 기회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카니예 웨스트가 선보인 이지 라인업이 사실은 나이키에서 시작했단 사실, 알고 계신가요. 나이키는 2009년 당시 대세중에 대세, 카니예 웨스트와 손잡고 ‘에어 이지’라는 농구화를 선보였습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힙합 가수와의 스포츠 브랜드의 만남에다가 소량 발매를 통한 희소성 효과, 게다가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당시엔 없어서 못파는 신발이었습니다. 한정판 모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당시에도 리셀(re-sell)가가 판매가보다 수십배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카니예 웨스트의 기대와 달리 로열티 금액은 턱없이 낮았고 디자인이나 제품 생산에 대한 전권을 나이키가 주도하며 양측의 사이가 끝없이 나빠진 거죠.
결국 어부지리로 아디다스가 이지 브랜드를 가져가게 됩니다. 결국 이지 브랜드의 아디다스 이적설이 돌던 2014년, 나이키는 기습적으로 마지막 에어 이지 신발을 출시했고, 해당 신발은 나이키의 마지막 에어 이지 모델이란 희소성을 인정받아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당시 카니예 웨스트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나이키가 나에게 스포츠 스타가 아니란 이유로 로열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아디다스가 제안한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고 이를 통해 가족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나이키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힙합의 신을 꿈꾼 카니예, 이지를 탄생시키다
여기서 잠깐, 왜 카니예 웨스트의 브랜드 이름이 이지가 됐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2003년 데뷔한 카니예 웨스트의 멘토는 미국을 대표하는 힙합 전설 제이 지(Jay-Z)입니다. 제이지는 ‘하느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여호와(JeHOVah)에서 빌린 J-HOV라고 자신을 부르기도 합니다. 힙합계에서 신이 되겠단 의미죠. 카니예 역시 자신의 힙합 스승의 제자임을 빗대 하느님의 제자, 아들 예수(Jesus)와 자신의 본명 카니예(KanYE)를 합친 언어유희를 통해 ‘Yeezus’라고 자칭하게 됩니다. 카니예의 6집 앨범의 제목 역시 ‘yeezus’ 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별명이 보다 편하게 불리도록 변형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yeezy’입니다. 또한 당시 당시 힙합 스타였던 릴 웨인이 자신의 성인 Wayne의 첫글자 [W]에 ‘eezy’라는 단어를 더해 Weezy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 역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랩네임 트렌드가 바로 자신의 이름 속 한 알파벳과 ‘eezy’를 더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카니예 웨스트도 자신의 이름(canYe)의 ‘Y’와 ‘eezy’를 더한 Yeezy라는 별명을 얻으며 이 때부터 이지는 카니예를 대표하는 랩네임으로도 쓰였습니다. 즉 이지는 힙합의 신이 되고 싶었던 카니예의 별명인 셈입니다.
1억달러애 이지, 아디다스의 핵심이 되다
결국 위기가 기회가 된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당시 1억달러란 계약금을 지급하고 이지 라인업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해당 라인업 구축에 애를 썼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스니커즈 라인이 바로 ‘이지 부스트’ 시리즈입니다. 2013년 아디다스는 이지 부스트 750을 출시했고 이어 2015년, 이지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지 부스트 350 모델을 출시하며 드디어 나이키와 맞붙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지 부스트 350 모델은 대박을 쳤습니다. 2016년 후속작 이지 부스트 350 V2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고 카니예와 아디다스는 10년간 연장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아디다스 역시 인위적으로 판매 수량을 제한하고 이를 통해 희소성을 강조하며 이지 브랜드의 가치를 끝없이 높였습니다. 인기 모델은 한 때 20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후 점차 생산 수량을 늘리는 등 대중화 전략까지 구사하며 이제는 전 세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아디다스의 대표작이 됐습니다. 2019년, 브랜드 출시 4년만에 15억 달러의 매출을 낸 ‘이지’는 연간 매출 30억 달러를 기록한 나이키의 ‘에어조던’과도 자웅을 겨뤄볼 만큼 급성장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이지 브랜드에서 올리는 매출은 아디다스 전체 매출의 1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니예의 재산도 더불어 늘어났습니다. 2020년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며 억만장자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제 잡지 포브스와 카니예 웨스트는 재산의 규모를 두고 서로 설전을 벌일 정도로 당시 이지 브랜드의 성공으로 거둔 카니예 웨스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아디다스 위기 불러온 카니예의 트위터
그런데, 잘나가던 아디다스의 성공 가도에 급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다름 아닌 카니예 웨스트의 입에서 문제가 생겼는데요. 평소 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진 카니예 웨스트가 지난해 돌연 나치를 옹호하고 반유대주의 발언을 트위터에 쏟아내는 사고를 칩니다.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 입장에선 수습할 수 없는 대형 사고가 터진 셈입니다. 아디다스는 즉각 카니예 웨스트와의 협업 중단을 결정했고, 이지 브랜드의 퇴출을 결정합니다.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2022년 파트너십 해제로 인한 순손실만 2억1700만 파운드, 한화 3500억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또한 판매를 위해 생산해놓은 재고만 자그마치 12억 유로. 한화 1조7000억원 규모의 재고물량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됐습니다.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라인업의 퇴출. 아디다스는 위기에 쳐했습니다. 결국 6개월 가까이 고심을 거듭하던 아디다스는 차악을 선택합니다. 남은 재고를 소각시키기엔 손실이 너무 큰 만큼 마지막 이지 재고떨이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단 판매수익을 기부하겠다고 전제한 체 말이죠.
리미티드 에디션이 된 재고떨이 제품의 반전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해야 할 신발들과 의류들은 졸지에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로 둔갑했습니다. 아디다스와 카니예의 결별로 더이상의 이지 브랜드의 제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번 판매 물량이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이지 브랜드 제품이 된 것입니다. 판매는 지난 5월 31일 처음 시작됐습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희소성이 높은 논란의 제품이라는 마케팅까지 더해져 너도나도 제품 구입을 위해 줄을 선 것입니다. 예상되고 판매는 대흥행. 판매 하루만에 68만2300켤레의 신발이 판매되며 아디다스는 1억70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아디다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웃픈 상황에 처했습니다.
문제는 논란의 주인공 카니예 웨스트는 또 앉아서 돈방석에 올랐단 것입니다. 카니예의 로열티는 대략 15%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계산해볼 경우 재판매 하루만에 무려 2500만 달러, 약 3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아디다스의 기부 계획과 별도로 로열티는 지급되야 하는만큼 결국 카니예만 좋은 일을 아디다스가 한 셈이죠.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는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1분기 영업이익을 6000만 유로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년도 동기 대비 무려 86.3%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즉 카니예와의 결별로 아디다스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사실이 수치로도 확인된 셈입니다. 위기의 아디다스, 과연 새로운 기회가 올까요? 예저스(Yeezus)가 떠난 아디다스의 새로운 구원자는 누가 될 것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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