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게 이렇게 복잡해?...내 입에 착 붙으면 ‘최고의 와인’ 입니다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6.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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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품, 사람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향기나 맛 따위가 있어 즐기고 좋아하는 식품(고려대한국어대사전)

와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면 와인은 기호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보통 이론 강의 뒤 테마에 맞는 여러 종류의 와인을 따라놓고 향과 맛을 보며 이론으로 접한 내용을 실습하는데요. 어느 정도 와인 경험자들이 참석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좋다’고 느끼는 와인과 그 이유가 천차만별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좋은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주변의 요청에는 늘 고민이 뒤따릅니다. 요청자의 와인에 대한 이해와 취향은 물론이고, 그 용도(선물·회식·보관 등)를 고려한 배경 이야기, 와인과 함께할 음식까지 전방위로 살펴도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겪기 때문입니다. 와인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면, 기껏 큰맘 먹고 구입한 와인이 저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와인이 될 수도 있겠죠.

물론 복합미, 강도, 여운, 밸런스 등을 따져 좋은 와인을 정의하는 학문적인 잣대는 존재합니다만, 오히려 와인을 ‘공부하면서 마셔야 하는 술’로 인식시키는 와인 스트레스 때문에 대중화가 더뎌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와린이들에게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야 말로 좋은 와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와인 세미나나 교육 프로그램 장면. 보통 이론 강의 후 3~7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면서 실습을 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주로 지역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당 지역 다양한 스타일 와인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다. [사진=전형민 기자]
밥과 김치를 영어로 하면?
밥과 김치는 한국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먹어온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음식, 소울푸드 입니다. 오히려 밥상에 올라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낄 정도죠. 서양 문화권에서 이런 이미지를 가진 음식을 꼽으라면 빵과 버터 정도인데요. 마침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브레드 앤 버터(Bread and Butter)라는 이름의 와인이 있습니다.

이미 국내 많은 와인 러버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브레드 앤 버터는 한 때 와인에서 나는 이스트(yeast·효모) 풍미가 유난히 도드라져서 그게 그대로 이름이 됐다는 설이 돌기도 했는데요.

지난 달 한 행사에서 만난 ‘브래드 앤 버터’의 와인메이커 린다 트로타(Rinda Trotta)에게 물어보니, 일상과 조화라는 두 가지 뜻을 가졌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먹고 사는 일’과 같은 자연스러운 와인이라는 의미, 두 번째는 ‘빵과 버터’처럼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린다와 브레드 앤 버터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녀의 양조 철학이 다른 양조자들과는 조금 달랐던 기억 때문입니다. 보통 와인 메이커들은 자신의 와인이 얼마나 다양한 맛과 향을 표현해내는지, 또 얼마나 좋은 떼루아를 표현하고 있고, 함축적인 복합성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잘 드러내려는지 설명하려고 애쓰는데요. 그녀의 양조 철학은 그녀가 만든 와인 만큼이나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습니다.

“Don’t overthink it. A good wine is a wine you like.”(너무 고민 마세요. 좋은 와인은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이예요.) 린다는 “와인 자체는 복잡할 수도, 다층적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인상을 결정하는 건 마셨을 때의 즐거운 기억”이라며 “와인을 너무 어렵게 접근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양조는 어렵지만, 마시는 사람이 그 어려움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입니다.

브레드 앤 버터 세미나. [사진=전형민 기자]
때론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단순한 즐거움
브레드 앤 버터는 국내가 3만원대 초중반 엔트리급 레인지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품종인 샤도네, 까베르네소비뇽, 멀롯(메를로) 등 총 9종의 와인들을 양조하는데요. 와인의 섬세함과 복합미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하나같이 직관적이고 깔끔한 매력을 자랑합니다. 굳이 와인잔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거나, 입에 와인을 머금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지 않더라도 익숙한 과실미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레드 와인의 매력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오크 터치’ 역시 살짝 과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노골적인 스모키(smoky·훈연향)와 바닐라 뉘앙스, 그에 뒤지지 않는 고소한 빵냄새와 자두나 블루베리 같은 진한 과실미 덕분에 각종 구운 고기류와 무난하게 잘 어울립니다. 특히 한식 불고기와 궁합이 좋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런 매력 덕분일까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년 대비 매출이 최소 15% 이상 상승해야 수상 자격이 주어지는 ‘IMPACT HOT BRAND AWARDS’를 5년 연속 수상했고,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960만병 이상을 팔고 있는 초거대 베스트셀러로 성장했습니다.

복잡한 와인도 좋지만, 단순하고 직관적인 입에 짝짝 붙는 와인도 충분히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지난 2018년 이후 5년 연속으로 ‘IMPACT HOT BRAND AWARDS’를 수상한 브레드 앤 버터 와인. [사진=롯데칠성]
복잡한 와인 어렵다면… 직관적인 와인 도전을
5억8128만 달러, 관세청 무역통계에 나온 지난해 우리나라 와인 수입액입니다. 한화로 약 7500억여원(2022년 평균환율로 계산)이 와인을 수입하는데에 쓰인 셈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에서 2021년에는 1년 동안 와인 수입량이 69.6% 늘어났다고 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여전히 주변에서 와인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와인이 ‘편하지(쉽지) 않다’는 것도 여러가지 이유 중 한 가지일 겁니다. 이는 비단 와인의 가격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어떠한 산업이 발전해 고도화하고 다양화 될수록 이제 막 산업에 진입하려는 초심자는 그 장벽을 높게 느끼는 역설이 와인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코로나19 특수를 통해 산업 규모 확장에 성공한 우리 와인 업계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고민해 봐야할 대목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 휴 존슨(Hugh Johnson)은 그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의 첫머리에서 “레이블을 보지 마라. 가격도 무시하라. 오직 하나만 생각하라. 바로 지금 잔에 든 이 와인이 얼마나 맛이 있는가 하는 것만 생각하라” 고 적었습니다.

와인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때로는 조금 더 직관적이고 편안한 브레드 앤 버터 같은 와인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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