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인데 목조?···내 집 표고 몇 미터인지 아는 것이 평범?" [이수민의 도쿄 부동산 산책]
놀라운 日 주택시장의 몇 가지 특징들
①이 신축이 나무로 만든 집이라고요?
② 당신의 집은 표고 몇 미터인가요?
③ 초고층 타워맨션 가격, 지진 이후에는 떨어진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입니다. 국토가 4개의 판이 교차하는 충돌 지점에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툭하면 땅이 흔들립니다. 지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이기에 주택 건설과 분양, 매매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부분들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물론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사안들이 일본 주거 문화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일 주택시장을 경험하고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극단적으로 양국이 다른 부분을 거론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거주할 집을 알아볼 때 가장 눈여겨 봤던 것은 어떤 구조로 이뤄진 집이냐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짓는 집 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일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무를 사용해 집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빌리기 위해 공인중개업체를 돌아다닐 때, 종이 한 장에 부동산 물건의 개요와 계약정보 등을 요약해 둔 ‘마이소쿠’, 즉 물건 개요서를 여러 장을 받았는데 '구조' 부분에 목조라고 적혀있는 물건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2023년 1월에 준공된 복층집도 있었고요.
①이 신축이 나무로 만든 집이라고요?
만약 서울에 새로 지어진 주택이 나무로 지은 집이라고 하면, 다수의 한국인들은 크게 놀랄 것입니다. 저만 해도 '나무집'이라고 하면 최소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짓고 있는 목조 주택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역사 속의 집들하고는 좀 다릅니다. 일반인은 외관 만으로는 목조인지, RC철골조인지 쉽사리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현행 법상, 목조 주택은 일정 층수 이상을 올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20층 이상으로 지어지는 한국의 신축 아파트와는 당연히 외관이나 규모가 다릅니다. 그러나 일본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신축 주택도 3층 이하의 것들이 많아 규모만으로 주택구조를 단정짓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특히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맨션이 아닌 단독주택의 경우 새로 지어지는 주택의 80%가 여전히 나무를 선택하고 있다 합니다. 개별 건축주 입장에서는 공사 비용이나 공사기간을 따지면 목조가 유리하다는 뜻일텐데요.
건축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본이 목조 건축문화를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때 항상 지진을 언급합니다. 지진이 발생해 땅이 흔들리면 그 위에 서 있는 건축물에도 당연히 영향이 갑니다. 건물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지진파가 만들어낸 진동 에너지는 커지기 마련이죠. 나무는 돌이나 벽돌, 철골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동일한 강도의 지진이 발생해도 건물의 흔들림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입니다. 또한 나무는 다른 건축 자재에 비해 탄력적이고 유연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동일한 무게의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강도(압축력)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나무는 철의 2배, 콘크리트의 9.5배에 달하는 강도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잡아당기는 힘, 즉 인장력으로 보면 나무는 철의 4배, 콘크리트의 225배나 강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진으로 크게 건물이 흔들리더라도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변형되면서 주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 목조건축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의 설명인데요.
그렇지만 실제로 목조건축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층간 및 벽간 소음이 심하다’, ‘화재에 취약하다’, ‘흰개미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 등의 불만도 상당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일정 층수 이상은 목조로 건설할 수 없도록 규정해 두었고, 목조건축의 표준시방서 규격을 매우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건축물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2023년 지금도 목조 건축이 성행하고 있다는 점은 목조 건축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놀라운 부분입니다.
② 당신의 집은 표고 몇 미터인가요?
이곳에서 주택 분양 시장을 관찰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최근 도쿄 23구 내에 건설되는 분양 맨션의 모델하우스를 몇 곳을 연속적으로 방문했다가 발견한 '특이점' 입니다. 시장 조사 겸 방문한 저에게 분양 맨션을 판매하려는 영업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표고 약 22미터에 달하고, 맨션이 세워지는 땅은 지반이 매우 단단한 곳입니다." 바다로부터 해당 맨션이 세워지는 지점까지의 높이인 '표고'를 상품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제가 이 직원에게 그럼 어떤 곳에 세워지는 맨션을 사람들이 선호하냐 물어보니 '강하고 가까운 곳보다는 지대 자체가 높은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독자 분들은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이 표고 몇 미터의 땅에 세워진 것인지 아시나요? 저는 부끄럽게도 전혀 모릅니다. 경사가 좀 있는 동네에 산다, 정도만 두루뭉술하게 알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수많은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취재차 방문했지만 표고가 등장한 기억은 없습니다. 전망이 어떻다, 커뮤니티가 풍부하다, 역과의 거리가 가깝다 정도는 들어봤어도 말입니다.
이처럼 표고를 비롯한 지반의 강고함을 따지는 것은 '분양 맨션'이라서 더욱 그럴지 모릅니다. 맨션을 빌리는 정도라면 구청 등에서 공개하는 해저드 맵을 바탕으로 재해를 당할 위험이 많은 곳에 세워진 집인지만 찾아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번 분양 받으면 평생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 아직 다수인 이곳에서, '내 집'이 강한 지진이 닥쳐와도 버틸 수 있는 땅에 세워지는지 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③ 초고층 타워맨션 가격, 지진 이후에는 떨어진다?
최근 일본에서는 1억엔이 넘는 맨션, '억(億)션'에 대한 기사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주거 선호가 높은 도심 '도쿄 5구'에 세워진 신축 맨션이 한국 원화로 10억원이 훌쩍 넘어가는 상황을 두고 이런 저런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상승세를 이끄는 주인공은 최소 25층 이상의 (초)고층 맨션입니다. 일본에서는 '타워맨션'이라고 부릅니다. 규모가 큰 타워맨션의 경우 A동 B동으로 구분되며, 1000세대까지 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이 타워맨션은 건물 안에 라운지나 게스트룸, 파티룸, 루프탑, 피트니스룸 등 다양한 주민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한국의 신축 아파트가 단지내 부지를 넓게 활용해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는 경향이 있다면 일본 타워맨션은 맨션 한 동 안에 촘촘하게 채워 넣는다는 점이 좀 다릅니다.
이 타워맨션은 도쿄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땅에 많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들에게도 화제를 모은 도쿄 츄오구의 ‘하루미 플래그’ 처럼, 타워맨션 여러 동이 세워지는 곳을 보면 대부분 매립지입니다. 기존 구 도심에서는 메머드 급 타워맨션이 세워질 유휴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물론 구도심의 노후 빌딩을 여러 개 매입해 신축 맨션으로 바꾸는 일은 일본 디벨로퍼 회사들이 돈을 버는 주된 방법이기는 하지만, 시간이나 비용을 고려한다면 500~1000세대 규모의 대형 타워맨션을 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바우라, 토요스, 아리아케 등 매립지를 위주로 타워맨션이 지어졌고, 또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매립지에 세워진 타워맨션들은 도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축이라는 점, 대단지에 생활 편의성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란 이유에서 몇 년 전부터 투자처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타워맨션은 2~3년전 분양 당시의 가격보다 2배 이상 올라 ‘잭팟’을 터뜨린 적도 있고요.
하지만 일본 부동산업계에서는 큰 지진이 오면 타워맨션의 가격은 다소 출렁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일본 여론은 타워맨션 같은 초고층 건축물에 거주하는 이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건축학이나 도시공학 전공 교수들이 타워맨션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을 책으로 담아 발표할 정도로 말입니다. 아사미 야스시(?見 泰司) 동경대학 도시공학 교수와 야스시 모리타 요시로(森田 芳朗) 도쿄공예대학 건축부 교수 등이 참여한 책 ‘타워맨션은 괜찮은가?’에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타워맨션이 어떻게 재해에 대응했는지 연구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서 모리타 교수가 작성한 내용을 발췌하면, “20층 이상의 구분소유 맨션 300여동을 대상으로 관리주체에 지진 피해를 확인한 결과, 통상 벽에 금이 가거나 외벽 타일에 손상이 가해진 것이 가장 많았지만, 이동에 필수적인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도 다수 있었다”, “ 엘리베이터가 6시간 이상 멈춘 곳은 조사 대상의 ⅓, 반일 이상 멈춘 곳은 1/6에 해당했다”고 적혀있습니다. 24시간 이내에 멈춘 엘리베이터를 수리했다는 응답 비중도 13%에 달했습니다. 이는 대개 25층 이상이고, 높게는 50층 이상까지 올라가는 타워맨션이 재해가 발생했을 때 밖으로 탈출하기 곤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요.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강한 지진이 닥쳐왔을 때 타워맨션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높은 전망이 오히려 주민의 안전을 해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있고, 이 같은 생각이 타워맨션 가격에도 다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고려한 듯, 앞서 언급한 하루미 플래그 스카이 듀오의 경우, 분양을 위한 홍보 사이트에서도 철저한 내진 설계를 적용했다고 강조하고 있네요.
실제로 일본 부동산 인플루언서들이 게재한 가격 분석 글을 찾아보면, 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 이후 평당가가 과거보다 낮은 매도 물건들이 있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초고층 맨션들이 모여있는 토요스 지역의 대장 아파트, ‘파크 시티 토요스’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이후인 2011년 평당 250만엔 이하의 물건들이 14건이나 나왔다고 하는데요. 이는 바로 직전인 2010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물건이라고 이들은 지적합니다. 1년이라도 더 지났으니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후 이 맨션 가격은 점진적인 우상향을 거듭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지진 영향이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도쿄가 있는 관동지역에 또 다시 큰 지진이 발생한다면 타워맨션의 인기가 주춤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아파트 가격은 금리나 정부 정책, 개발 호재 등에 크게 좌우되는 편인데, 일본 타워맨션은 거시경제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재해라는 또 다른 요인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입니다.
도쿄=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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