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흐름과 전셋값 향방 유심히 살펴라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일부 가격 회복돼도 반등 시그널은 여전히 약해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거래절벽과 가격 급락으로 한동안 얼어붙은 듯했던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역시 금리였을 것이다. 금리가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요즘은 더 심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80% 가까이 변동금리로 이뤄져 있다. 당연히 금리에 취약하다. 돌아보면 집값 상승 추세가 바뀐 데도 금리 인상 영향이 컸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면 주택 구매 수요는 급격히 줄어든다. 수요가 줄면 어김없이 거래량이 줄어들고 주택 가격도 하락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리 영향력 커져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 3.25%에서 올 1월 3.50%로 0.25%포인트 상승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시장금리도 2022년 11월을 정점으로 안정을 찾았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1월보다 0.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1년3개월 만에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 하단이 모두 3%대로 내려왔다. 자연스럽게 대출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는 역시 주택담보대출이 이끌고 있다. 대출이 늘어난 만큼 주택 구매 수요는 증가한다. 시중금리 하락 추세와 함께 이제 집값은 바닥을 친 것일까.
집값의 바닥은 지나봐야 안다. 수요가 회복되는 신호는 가격보다는 거래량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정한 수준의 가격 하락 이후 거래량이 회복되면 바닥을 지났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래 지표로 보면 집값이 바닥을 쳤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계약 기준으로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185건이었다.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이 3000건을 돌파한 것은 2021년 8월 이후 처음이었다. 작년 12월과 비교하면 4배 정도 늘었고 거래절벽이 심했던 지난해 10월 559건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5월의 아파트 거래량은 2040건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4월의 거래량도 그리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집값이 폭등하던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한 달 평균 거래량은 5000건 정도였다. 전국적인 숫자를 보면 거래 부진이 더 뚜렷해진다. 올 1분기 전국 누적 주택 거래량은 20만4917건으로 최근 5년 평균 40만8096건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했다. 부동산 매매 시장의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거래회전율 상승세도 한동안 높아지더니 4개월 만에 상승세가 멈췄다. 거래회전율은 매매로 소유권이 이전되고 등기가 완료된 부동산 수를 등기가 유효한 부동산 수로 나눈 값이다. 거래회전율이 낮을수록 거래 가능한 부동산 대비 실제 거래된 사례가 적다는 뜻이다. 급매물이 소진되고 호가가 오르면서 거래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실 그동안 집값이 오르고 거래가 늘어난 데는 저점 매수를 겨냥해 조금이라도 내렸을 때 갈아타려는 수요와 더불어 특례보금자리론 도입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예외가 적용돼 소득과 관계없이 대출이 5억원까지 가능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에 거래된 서울 아파트 중 특례보금자리론 대상인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29.4%에 달했다. 전체 거래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부동산 시장은 아직도 불안한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전세가 여전히 약세다. 국내 집값은 전세 시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전셋값이 오르면 전세 수요가 매매로 넘어가고, 반대로 하락하면 세입자가 대출을 끼고 집을 살 여력이 줄어든다. 매매가격이 오르는 것도 일단 전세 시장이 회복된 후라야 한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던 시기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들이 고금리 여파로 전세금이 급락한 올 하반기에 대거 재계약에 돌입한다. 역전세난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갭투자'가 성행했던 인천이나 경기 지역의 경우 당시보다 집값이 20% 넘게 떨어진 곳이 많아 특히 위험하다. 마침 수급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올해 아파트 입주 물량에서 멸실주택을 제외한 순입주 물량은 수도권 기준으로 약 18만5000호다. 전국적으로는 약 35만7000호에 달한다.
하반기에 쏟아지는 강남 3구 물량도 주목
특히 올 하반기에는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공급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다. 내년 초까지 서울 강남권에서만 1만 가구 이상이 공급된다. 아파트 공급이 이어지면서 집을 찾는 세입자보다 세를 놓는 집주인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입주 물량 증가는 전셋값 하락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세사기로 인한 불안까지 겹쳐 빌라 시장은 당분간 혼돈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전셋값이 떨어지는데 집값이 오르기는 어렵다. 부동산 시장이 경기 흐름과 따로 가는 것도 아니다. 경기가 나쁜데 집값만 오를 수는 없다.
하반기에 경기가 조금 나아진다고 해도 회복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집값은 경기 상황이 반영돼 나타나는 결과다. 집값이 바닥을 쳤는지를 묻기보다는 금리 인상이 정말 끝난 것인지, 그리고 경기는 언제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일단 금리가 하향 안정되고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어야 한다. 금리도, 경기 회복 시점도 아직은 모두 불투명하다. 물론 금리가 낮아진다고 해도 과거 집값이 폭등하던 시절의 금리 수준까지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죽은 고양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잠깐 튀어 오른다. 하락 추세 속에서 저점 매수를 겨냥한 거래가 늘어나 잠시 가격이 올라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라고 부른다. 가격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을 가진 사람들이 호가를 올리거나 내놨던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그러나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오른 값이 부담스럽다. 5월의 거래량 감소는 그 때문일 것이다. 물량이 줄어들면 단기적으로 집값은 다시 오르거나 하락 폭이 줄어들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서 올해 초 시장을 전망하며 집값의 추가 하락을 예상했던 전문가들도 말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설사 지금이 저점 구간이라고 해도 확실한 반등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전체 시장은 판단하기 이르다. 소득과 비교하면 집값은 여전히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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