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종 시드라가 소중한 이유 [박영순의 커피언어]

2023. 6. 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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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를 보면 이름을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 적잖다.

커피나무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섭취하느냐에 따라 명칭이 제각각이어서 음료들의 기원을 두고 혼선을 빚기도 했다.

아라비카종이 탄생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나무는 분(Bunn)이라고 불렸다.

이런 다양한 음료가 결국 커피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학문적으로 명명한 시기는 프랑스 전성기를 이끈 태양왕 루이 14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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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를 보면 이름을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 적잖다.

커피나무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섭취하느냐에 따라 명칭이 제각각이어서 음료들의 기원을 두고 혼선을 빚기도 했다. 아라비카종이 탄생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나무는 분(Bunn)이라고 불렸다. 말린 커피 열매를 동물 기름과 섞어서 끓여 내면 부나(Buna)라고 했고, 발효시켜 술처럼 마실 때는 카와(Qahwa)라고 칭했다. 잎과 열매를 물에 끓여 연한 차처럼 마시면 번컴(Bunchum)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위장병 치료에 활용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원주민들은 커피 열매에서 씨앗을 발라내고 남은 껍질만을 말린 뒤 살짝 볶아서 퀴시르(Qishr)라고 부르는 달달한 음료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요즘도 말린 커피열매 껍질만을 카스카라(Cascara)라고 해서 별도의 상품으로 거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파나마 게샤 생두(왼쪽)와 에콰도르의 새로운 희망 시드라 생두(오른쪽).
이런 다양한 음료가 결국 커피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학문적으로 명명한 시기는 프랑스 전성기를 이끈 태양왕 루이 14세 때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시장이었던 헤릿 호프트가 1714년 루이 14세에게 커피 묘목 한 그루를 선물했는데, 이를 왕실정원에 심고 관찰하면서 식물학자인 앙투안 드 쥐시외가 ‘자스미눔 아라비쿰’(Jasminum arabicum)이라고 학명을 부여했다. 꽃잎이 5장인 하얀 꽃 모양이 재스민과 비슷했고, 나무의 기원지를 따져 보니 아라비아 반도였기 때문이었다.

이 나무의 혈통을 따져 보면, 인도의 바바부단이 예멘에서 몰래 커피 씨앗을 빼내 카르나타카주의 바바부단기리에 심어 키운 나무를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자바로 가져가 대량 생산했다. 그리고 자바의 커피나무가 루이 14세에게 바쳐진 것이었는데, 쥐시외는 그 나무의 고향을 예멘이라고 생각하고 ‘아라비쿰’이라고 했다. 그는 예멘의 커피나무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옮긴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칼 폰 린네도 1737년 이 나무를 코페아속으로 분류하면서 학명이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로 확정됐다.

커피나무의 탄생지는 1960년대 DNA 추적 기술이 발달하면서 에티오피아 남서부와 수단 일부 지역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린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커피의 학명은 ‘코페아 아프리카’가 됐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커피의 대명사가 된 게샤(Gesha)도 20여년간 게이샤로 잘못 불렸다. 1930년대 게샤가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견됐을 때, 이를 생식세포은행에 품종 등재한 영국인이 토착인의 발음이 아니라 서구인이 발음하기 편하도록 ‘i’를 끼워 넣은 게 화근이었다. 이 탓에 많은 커피 애호가들이 게이샤 커피를 일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오해했다.

2019년과 2022년 각각 월드바리스타챔피언에게 우승컵을 안겨준 시드라(Sidra) 품종도 정체성을 두고 소동이 있었다. 대회를 통해 시드라 커피는 브라질의 문도노보처럼 티피카와 버번의 자연교배종으로 세계에 소개됐다. 그 기원이 예멘의 재배종과 가깝다는 의미인데, DNA 분석 결과 이 커피도 역시 귀중한 에티오피아의 원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드라는 과일과 같은 경쾌한 맛과 뛰어난 단맛, 질감 덕분에 처음 대량 재배된 에콰도르와 인근 콜롬비아에서 커피 재배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시드라는 사과 발효 음료를 뜻하는 사이다의 스페인 표기이다.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은 커피를 더욱 품격 있고 소중하게 만든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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