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리더십의 상실로 존재감 사라지는 정의당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시사저널=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5%짜리 정당.' 정의당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때는 민주노동당이란 이름으로 한국 정치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던 정당의 현주소다. 정의당 소속 의원은 6월7일 현재 총 6명밖에 되지 않는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턱없이 부족하고 이 중에서 지역구 당선자는 심상정 의원(경기도 고양갑)이 유일하다. 어느 순간 정의당은 미미한 지지율에다 지역구와는 거리가 먼 비례의원 전문 정당이 돼버렸다. 정의당은 제2야당이지만 의석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야권 내에서 존재감은 극히 미약하다.
정의당은 누구나 알 듯이 진보정당이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우려한 비당권파들이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후 모여 결성한 정당이다. 2012년 10월18일 창당대회를 열고 진보정의당이란 당명으로 정식 등록했다. 이후 2013년 7월21일 당명을 정의당으로 개정했다. 정의당으로 당의 이름을 바꿔 단 이후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은 정의당의 단골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한 심상정 의원과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안타까운 일로 운명을 달리한 고 노회찬 전 의원이다.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던 권영길 전 의원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리게 된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권 후보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인사말로 유력 대선후보들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권 후보가 이념 성향이 뚜렷한 정당의 후보였지만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이야기에,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의당은 확장성은 고사하고 정체성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만 허망한 모습이다.
먼저 정의당의 현주소는 '너덜너덜해진 경쟁력'이다. 정당의 경쟁력은 이념, 정책 그리고 사람에 달려있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정치 성향으로 이념을 나누면 진보, 중도, 보수가 있다. 더 세분화하면 진보 내에서도 강성 진보와 온건 진보로, 중도는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로, 보수는 강성 보수와 온건 보수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정책은 특정 직업 계층에 대한 지지층 기반이다. 가령 민주당은 화이트칼라를 핵심 기반으로 하고, 국민의힘은 주부층과 자영업층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민주노동당 후신인 정의당은 노동계 즉 블루칼라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지금 정의당이 과연 그런 상태일까.
블루칼라층의 정의당 지지율은 고작 3%뿐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기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정의당의 정당 지지율 추세와 블루칼라층의 정의당 지지율 추세를 비교 분석해 보았다. 1월3~5일 조사를 보면, 전체 정당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4%, 블루칼라층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5%였다. 최근까지 별반 뚜렷한 변화가 없다가 5월30일~6월1일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5%, 블루칼라층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3%로 나타났다(그림①). 참으로 답답한 지지율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온갖 악재가 발생했음에도 정의당이 가져가는 반사이익은 전혀 없다. 더군다나 정의당의 역사와 전통을 감안할 때 노동계를 대표하는 정당인데 블루칼라층 지지율이 고작 3%밖에 되지 않는다면 당의 존재 가치에 대해 절체절명의 의문이 들 정도의 수준이다.
정의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또 다른 큰 이유는 '정치 소비자에 대한 인식 부재'다. 미국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대체로 젊은 세대들에게 더 큰 지지를 얻어내고 공화당은 대체적으로 백인 유권자들과 연령대가 높은 유권자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이 있다. 물론 중도 유권자들을 더 흡수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만 자기 지지층인 '집토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당한 '정치적 에너지'를 투입한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 연령대는 40대이고 그다음이 50대, 30대 순이다. 국민의힘은 70대 이상의 충성도가 가장 높고 그다음이 60대 그리고 최근 들어 20대(만 18세 이상)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를 거두었던 배경으로 '세대 포위론'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지지층 확보를 위한 세대 목표층이 있을까.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5월23~25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정의당에 대한 호감이 있는지 아니면 호감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호감이 있다는 의견이 19%, 호감이 없다는 비호감이 67%로 나타났다. 20대(만 18세 이상)는 호감 19%, 비호감 59%였고, 진보층은 호감 28%, 비호감 62%로 나왔다. 화이트칼라층에선 호감 21%, 비호감 67%로 나타났다(그림②). 한마디로 정의당은 어떤 특정 세대와 직업층 그리고 이념층에 핵심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정당이 돼버렸다.
심상정, 긍정 감성 비율 당 보다 15%p 높아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정의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원인은 '정체성 상실과 리더십의 붕괴'로부터 찾게 된다. 빅데이터 심층 분석 도구인 썸트렌드로 5월6일부터 6월5일까지 정의당과 심상정 의원의 빅데이터 감성 연관어 및 긍부정 감성 비율을 도출해 보았다. 정의당에 대한 빅데이터 연관어는 '비판' '논란' '의혹' '우려' '갈등' '간사' '지지하다' '최선' '희망' '혼란' '피해' '범죄' '불법' 등으로 나왔고, 심상정에 대한 감성 연관어는 '최선' '적극적' '비판' '피해' '보상' '간사' '동의하다' '안타깝다' '긍정적' '보완하다' '고통' '강하다' '죄송스럽다' '논란' 등으로 나타났다.
정의당과 심상정 의원 사이의 감성 연관어에 온도차가 있었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내용보다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다. 빅데이터 긍정과 부정 감성 비율은 정의당이 긍정 28%, 부정 69%로 나타났고 심상정 의원은 긍정 43%, 부정 53%로 나타났다(그림③).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정의당과 심 의원의 긍정 차이가 15%포인트나 된다는 점이다. 정의당의 이미지와 호감도는 곤두박질쳤지만 심 의원은 정치인치고는 꽤 괜찮은 이미지와 긍정 호감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복해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심 의원은 '심블리 효과'를 뽐냈지만 정작 당에 대한 국민의 친근감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개인 인기에 그치고 말았다.
정당은 유권자의 정치 소비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 소비 분석을 해본다면 정의당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정치적으로 팔리기 힘든 상품이다. 당의 혁신과 쇄신을 추진하기 이전에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의 인식 지도 속 어디에 정의당이 위치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우선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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