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거까지 알아야 되니?” 앞뒤 없는 불법 사채[씬나는경제]
수백~수천% 이자율, 급전 필요한 취약계층 울리는 불법사금융
정부도 민생경제범죄 척결 의지, 정책금융·제도권 편입 필요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화 속 장면 곳곳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있습니다. 씬(Scene)을 통해 보이는 경제·금융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돈 받으러 왔는데 내 그거까지 알아야 되니?”
늦은 밤 한적한 폐차장, 조선족 범죄조직 독사파를 이끄는 독사(허성태)와 흑룡파 두목 장첸(윤계상)이 대치합니다. 본인의 동생이 장첸에게 돈을 빌렸다가 납치됐다는 소식에 급히 달려온 독사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독사파를 흡수한 장첸은 물불 가리지 않은 지독한 수법으로 지역의 이권을 장악해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큰 벽을 만나게 되죠. 바로 범죄자 제압에 여념이 없는 형사 마석도(마동석)입니다.
3000만원 빌려주고 2억 내놓으라는 장첸
영화 ‘범죄도시’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조선족 범죄조직간 이권 다툼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경찰들의 활약을 담은 영화입니다.
스토리 자체가 특별하진 않지만 압도적인 피지컬로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마석도와 악독하고 비열한 빌런(악당)들의 액션이 흥미를 끌면서 크게 흥행했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범죄도시2’는 1200만 관객을 넘었고 최근 개봉한 ‘범죄도시3’도 무서운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2017년 개봉한 1편인 범죄도시의 빌런은 불법 사채를 중심으로 돈만 되는 일이면 가리지 않는 악질 범죄자인 장첸과 그의 수하들 위성락(진선규), 양태(김성규) 등입니다.
중국 하얼빈에서 넘어와 지방에서 활동하던 장첸 일당이 서울로 진입하게 된 계기는 독사의 동생이었습니다. 이들은 독사 동생에게 3000만원을 빌려줬는데 이자에 이자를 더해서 총 2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한쪽 손을 내놓는 조건으로 1000만원을 깎아서 1억9000만원이 되지만 역시 방법이 없죠. 독사가 장첸을 찾아가지만 죽게 됩니다. 이를 통해 장첸은 자연스럽게 독사파를 흡수하고 라이벌 조직인 이수파의 장이수(박지환)는 물론 한국인 조직폭력배인 황사장(조재윤)과도 갈등을 빚습니다.
3000만원을 빌렸는데 갚아야 할 돈이 2억원이 된다면 총이자는 1억7000만원, 원금대비 이자율은 567%가 됩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금리죠(진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만). 물론 돈을 빌린 사람도 범죄조직과 연관이 있음을 볼 때 도박이나 유흥 등으로 탕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량배들을 차치하더라도 제도권에서 밀려난 취약계층들은 돈을 빌릴 구석이 없다는 것을 불법 사채업자들은 잘 알겠죠. 이들을 집중 공략할 것입니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소득에 따른 세금을 꼬박꼬박 낼까요? 물론 아니겠죠. 심지어 영화 속 장첸은 중국에서 살인은 저지르고 몰래 한국으로 넘어온 불법체류자입니다. 마석도는 장첸에게 “휴지는 이렇게 많이 쓰면 어떡하냐 세금도 안내는 XX가”라고 타박합니다.
‘급전’ 필요한 취약계층, 그들에겐 ‘먹잇감’
장첸 일당만큼 살인을 일삼는 잔악무도한 경우가 많지는 않겠죠. 다만 우리 주변에서도 불법 사금융은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나 공중화장실 등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급전’ 스티커나 전단지는 물론이고 “좋은 상품 좋은 금리로 이용하라”며 스팸 전화가 울리기도 하죠.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해 제도권 내 대출금리는 20%를 초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게 되면 법정 최고금리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차주들은 지독한 고금리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설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됐는데 불법사금융에서 부실이 커지면 사회의 약한고리인 취약계층이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관련 피해 신고·상담 건수는 1만913건으로 전년대비 10% 증가했습니다.
금감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생활비가 필요했던 A씨가 한 대출사이트에 문의하자 불법대부업자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40만원 대출에 일주일 후 60만원 상환, 연체시 주당 연체수수료 12만원’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합니다. 연 이자율로 치면 2607% 수준입니다. 일주일 내 60만원 갚지 못하자 미리 확보한 가족과 지인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불법사금융 척결은 물론 예산을 투입한 정책금융과 제도권 내 편입이 중요하겠죠.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최근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이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늘고 있다는 의미”라며 “대부업에서도 밀려난 차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평점 3.5점, 경제 평점 2.0점(5점 만점)]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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