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착취' 다른 나라 먼 얘기 아니다
OTT 처우 개선, AI 규제 주장하며 미국 파업 한 달째… 한국은?
어려움은 한국 마찬가지지만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
"OTT, 전형적 원하청 구조"…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하는 종사자들
명백한 법 사각지대에도 무관심 아래 제도 개선 지지부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AI(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근로 여건 악화를 우려한 미국 작가들이 대규모 파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국에서도 OTT와 AI를 바라보는 현장 노동자들의 시선은 똑같이 불안하지만 미국 작가들처럼 큰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구조다. '매머드급' OTT가 전형적인 원하청 구조로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하며 법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2, 3중 착취 구조를 호소했다.
지난달 2일(현지시간) 미국작가조합(WGA)은 1만1500여명 규모의 조합원들과 함께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2007년 인터넷 다운로드 수익 배분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 후 16년 만이다. 이들은 파라마운트, 넷플릭스 등 미디어 기업 본사 앞에서 OTT, 스트리밍 시대의 종사자 처우 개선과 AI 최종 시나리오 작성 불가 등 규제안을 요구하고 있다. NBC '더 투나잇 쇼'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마블 영화 '블레이드' 등 유명 콘텐츠들이 파업으로 제작 중단되면서 업종 구분 없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가들은 OTT 도입 이후 업무 강도가 강해지는 동시에 임금은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한 시즌당 20편 이상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이전과 달리 넷플릭스는 시즌당 10편 안팎으로 드라마를 압축한 뒤 한번에 공개해 제작 일정이 더 타이트하다. WGA에 따르면, 1년 가까이 보장되던 고용기간은 10~15주로 줄었고, 최근 10년간 TV 작가 및 프로듀서 주당 임금 중간값은 대략 23% 떨어졌다. 콘텐츠 수요 폭발로 일거리는 늘었지만 근로 여건은 악화한 것이다.
기존의 '로열티'에 해당하는 재상영분배금 또한 쟁점이다. TV 재방송이나 영화 흥행 결과에 따라 주어지던 인센티브는 OTT 산업에선 이전만큼 존재하기 힘들다. 구독 모델로 이뤄져 건별 금액 산정이 어렵고, 제작사들이 재생 횟수 등 상세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단체협상 당시 정확한 기준과 더 많은 분배금을 요구했고, 제작사는 이를 대부분 거절했다.
AI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다. WGA는 AI를 도구로 사용할 순 있지만 최종 결과물을 AI가 쓸 순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작가들의 창작물이 무분별하게 AI 학습 훈련에 쓰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번 파업은 AI의 등장으로 인한 창작 노동자들의 불안이 전국적으로 드러난 첫 사례로 꼽힌다. 현지 언론보도를 보면 제작사들이 최근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수정하라고 지시하는 등 현장에선 이미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자단체에 해당하는 영화TV제작자동맹(AMPTP)이 주요 쟁점에 거부의 뜻을 유지해 파업은 장기화 양상을 띠고 있다.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등이 소속된 AMPTP는 코로나19 이후 구독자가 줄면서 산업 자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OTT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시장은 전형적인 '승자독식' 플랫폼 경제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최우선의 목표로 두고 있다. 앞으로도 극적 타결이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신기술 등장 때마다 파업… 남의 일 아닌 OTT 문제
OTT의 습격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도 주도권이 기존 미디어에서 OTT로 넘어온 상황에 많은 현장 제작진들이 플랫폼 구조에서 임금을 받고 있다. 근로 여건 악화도 그대로다. 제작비는 늘었지만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등 제작사 수익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떨어졌다. 제작사에게 임금을 받는 현장 스태프들은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으며 열악한 처우를 버티고 있다. 전형적인 원하청 구조에 넷플릭스를 상대로 노동자가 협상하기도 어려운 사정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달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사와 OTT 기업 등도 문화예술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는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영화 제작 현장에선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던 스태프들이 OTT로 넘어오면서 (근로계약을) 잘 안 맺고 있다”며 “과거에는 영화 제작사들이 단체 협약도 맺고 이랬는데 이제 돈은 OTT 쪽에서 내고, 제작은 외주 제작사에서 하고 있으니 구조가 이전과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씬정석 대표는 “출연자들 같은 경우에도 이전에 출연 계약을 맺을 때 재방료, 출연료 문제를 방송국과 조금씩 진행을 했었는데 플랫폼 구조에선 OTT와 직접 교섭을 할 수가 없다”며 “문화예술 산업에서 OTT라는 매머드, 건설 현장의 원하청 구조처럼 얼굴도 보지 못하는 회장님이 생긴 것이다. 말단에 있는 업체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계속 정리가 안 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염정열 전국언론노동조합 박송작가지부장은 2일 통화에서 “프리뷰(방송 촬영 영상을 문서 파일로 옮겨 적는 일) 아르바이트가 현장에 꽤 있었는데 음성 변환 AI가 등장하고 나서 인원이 줄었다”며 “프리뷰가 적성에 맞아 전문 요원으로 활동하며 각 방송사가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제 수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것 말고도 자막, 나레이션 등 현장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는 지점은 많다”고 말했다.
미국만큼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 “현장은 답답할 뿐”
하지만 국내 창작 노동자들은 미국만큼 큰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할리우드 역사가 오래돼 주기적으로 단체 협상을 맺는 미국과 기반이 다르다. 미국에서 벌어진 이번 파업도 3년마다 진행되는 단체협약 과정에서 나왔다. 한국은 조합 조직 구성이 역사적으로 약하고, 당국과 대중의 관심도도 떨어진다. 언론 또한 'K-드라마'의 성공 신화를 주로 조명할 뿐, 현장의 목소리는 소외했다. 이번 WGA 파업을 국내 노동자들이 부럽게 바라보는 이유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지난 2일 통화에서 “미국은 (할리우드) 산업이 일찍 발전했고 1950년대 계속 투쟁하면서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 간 단체협상을 하는 문화가 유지됐다”며 “미국은 영화TV 제작자들 협회가 있고 작가, 감독, 배우, 촬영감독, 조명감독 이런 식으로 직군별 조합이 따로 다 있다”고 설명했다.
성상민 평론가는 “한국은 방송과 영화가 분리돼 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외는 방송, 영화 구분이 안 된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미국은 디즈니가 디즈니픽쳐스와 ABC 방송을 같이 하는 것처럼 자본이 한 데 얽혀 있다”며 “미국에선 자연스럽게 단체 협상이 방송으로 뻗어나갔지만 한국은 영화산업 등장 자체도 늦고 법적 분리도 심하다. 노동자 조직도 당연히 늦게 꾸려졌고 다른 지부 등과 협력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 OTT 구조엔 법의 사각지대가 명백히 존재한다. 하지만 당국과 대중의 무관심 아래 제도 개선은 느리기만 하다. 성상민 평론가는 “OTT는 법적으로 영화, 비디오라 하기가 애매하다. 미개봉이면 영화사에서 이것을 OTT라는 이유로 기존 영화판에서 보장했던 것들을 안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영화, 방송, OTT 디지털콘텐츠 등이 법 체계상 다 조각조각 합쳐지는 상황에서 생기는 사각지대를 자본들이 최대한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씬정석 대표는 “여야 관계 없이 의원들과 만나 보면 구조적 문제에 다 공감한다. 저작권 관계나 종사자들 처우 문제, 근로계약 문제 등 '이런 곳이 법이 미비돼 있네', '이렇게 풀어야겠네' 다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실행이 되지 않는다”며 “핵심은 정부 당국의 태도라고 본다. 시장의 크기만 키우려는 정부 기조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엇박자가 난다. 더군다나 이번 정부 이후 노동조합의 활동을 더 이상하게 보지 않나. 산별 교섭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WGA 파업을 다루는 대부분의 언론 보도도 미국 상황을 단순 설명하는데 그친다. OTT와 AI는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민감한 주제이지만 국내 상황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 WGA 파업을 보며 국내 현장 노동자들이 사람들 관심을 호소하는 이유다.
성상민 평론가는 “수익 배분이 이전처럼 단건이 아닌 자율 측면에서 이뤄져 단체 간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넷플릭스가 미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도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며 “AI가 작년 하반기에 대두가 됐는데 벌써 반발 사례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위험성은 계속 불거질 것”이라 말했다. 염정열 방송작가지부장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부터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고 대안, 대책 마련도 서서히 논의가 돼야 한다”며 “아직까진 그러지 못해 너무 단편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씬정석 대표는 “OTT 시대가 오면서 어떻게 보면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장이 더 넓어졌으니 확장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얘를 한다. 하지만 종사자 입장에서 그 확장의 이면에는 플랫폼이 들어와 착취 구조가 2중, 3중으로 덧씌워진 상태로 발전하고 있다”며 “문화예술 분야의 공정 유통 관련 법안이 올라가 있는 상황인데 최근 국회 합의가 되더라도 양곡법, 간호법 등 거부권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지 않나. 국회 일정이 계속 밀리는 상황과 제도 보완이 안 되는 상황이 함께 가고 있다. 현장에선 그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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