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 '학폭' 논란이 남긴 것들 [서초동에서]

이성식 2023. 6.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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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대처 첫 걸음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용서
섣부른 여론전, 역풍 이어진 사례도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진심어린 사과"
학교폭력 논란, 한국 사회 '뜨거운 감자'

"애들한테 맞고 살아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습니다.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하면 원인을 당한 사람한테 찾습니다. 가해자들은 많고, 당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 친구들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곽튜브 유튜브 페이지 캡처
여행 크리에이터 곽튜브는 TV 토크쇼에 출연해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당한 학폭은 평생 트라우마처럼 남습니다. 누구에게나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다보니 학폭은 여러 해 한국 사회에서 휘발성이 가장 강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학폭 극복의 첫 단계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용서'

그동안 연예계와 스포츠계에도 학폭 이슈는 지속적으로 제기됐습니다. 그중 프로야구 선수를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된 뒤 여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팬들의 사랑이 절대적인 프로스포츠인만큼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2년 9월 열린 KBO 드래프트 2라운드 장내가 술렁였습니다. 두산베어스가 전체 19순위로 고려대 김유성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8월 NC 다이노스는 1차 지명 신인으로 당시 김해고 투수 김유성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지자 지명을 철회했습니다.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김유성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최강 몬스터즈와의 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인사를 위해 그라운드에 오르고 있다. 2022.11.20

김유성 측은 애초 소송을 통해 결백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징계에 불복해 가처분 신청을 한 결과 기각됐고, 피해자 어머니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하자 항고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자 일부 야구팬들은 트럭 시위까지 벌이는 등 두산의 지명에 대해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유성의 1군 출전이 가능해진 것은 돌고 돌아 결국 피해자와의 합의때문였습니다. 지난 4월 김유성은 자신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은 뒤에야 프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승엽 두산베어스 감독 : "피해자와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김유성의 1군 등판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평생 짊어질 짐이지만, 용서를 받고 화해했기 때문에 1군에 등판할 조건을 어느 정도 채웠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김유성이 더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 진정한 프로가 되도록 돕는 게,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역할입니다.”

실제 형사소송법의 양형 사유를 보면 '범행 후의 정황’이 들어 있습니다. 피해자와의 관계·반성의 정도 등이 형을 정하는 과정에서 참작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학폭의 경우 죄목으로 보면 모욕·폭행·협박 등에 해당이 될 텐데 이런 범죄들은 피해자가 합의를 하면 기소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섣부른 여론전, 역풍으로 이어진 사례도

키움의 안우진 선수 사례도 살펴보겠습니다. 안우진은 지난 2017년 8월 동기들과 후배 선수들을 폭행했다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입단 후 징계를 받고 선수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안우진에게 학폭이 다시 이슈가 된 건 지난해 말입니다. 지난해 11월 안우진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안우진 키움 히어로스 : "학폭 논란과 관련된 제 후배들이 용기를 내주었습니다. '학교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우진이 형을 지켜주고 싶다'는 후배들의 목소리에 혹여나 후배들이 비난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도 컸습니다. (중략) 언론 보도 이후 저는 가혹한 학교 폭력을 행한 악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론의 질타 속에 사안의 구체적인 진실은 묻혀버렸습니다.”

키움 히어로즈 투수 안우진이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경기를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5.18
김유성처럼 피해자와의 합의를 근거로 뒤늦게나마 소명에 나선 겁니다. KBO 안팎에서는 해외 진출을 노리는 안우진이 WBC에 출전하려고 '여론전'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국내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한 안우진이 대표팀 전력에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정리된 건 피해자 모두와 합의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박재호 스포츠조선 야구부장 : 취재 결과 학폭 피해자로 지목된 4명 중 성명서를 발표한 3명을 제외한 1명이 사건 당시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 나온 피해자들의 성명서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피해자들과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피해자들의 의사를 거론했다가 여론이 싸늘하게 식은 케이스입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피해자와의 합의는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일종의 여론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유명인의 경우에 섣불리 피해자와의 합의를 거론하다 그렇지 않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역풍을 맞을 수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올해 학폭에 대해 사회적인 공분이 다시 한 번 커진 것은 드라마 '글로리'때문입니다. 왜 제목을 글로리(영광)로 지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왼쪽)와 안길호 감독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2.12.20

김은숙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제목을 고민하던 중, 피해자들의 글을 많이 읽게 됐다”"공통점이 현실적인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했다. 폭력의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명예·영광 같은 걸 잃게되지 않나. 그 사과를 받아야 원점이 되는거구나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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