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최연소 장기 명인 탄생…"AI로 연습하는 20살 Z세대"

전진영 2023. 6. 10.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2년생 후지이 소타
AI 활용해 대국 분석 '신세대' 명인

"깔끔하잖아. 재미로도, 미학적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주인공들이 바둑을 두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장면이 등장하죠. 주인공이 어르신들이 바둑을 두러 모이는 탑골 공원 도장 깨기를 하고 다니게 되면서 실력을 분석한 영상 등이 덩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일본에서도 한국 바둑만큼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식 장기인 '쇼기'(?棋)입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이 쇼기 기사 중 1위 타이틀 '명인'을 최연소로 따낸 20세 청년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습니다. 내로라하는 프로 기사들을 제치고 단숨에 정상에 올라섰는데요. 이 2002년생 청년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대국을 분석하는 등 Z세대의 장점을 더해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오늘은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본 쇼기 기사 후지이 소타 9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명인 타이틀을 따낸 후지이 소타.(사진출처=NHK)

후지이씨는 지난달 열린 명인전에서 와타나베 아키라씨를 꺾고 명인 타이틀을 빼앗았습니다. 1935년 시작된 명인전은 최후 승자에게 '명인'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합니다. 유서가 깊은 대회다 보니 사실상 명인이 된다는 것은 쇼기 프로기사 랭킹 1위가 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39세 와타나베씨는 명인전 3연패 중인 그야말로 전설 같은 사람인데, 이를 후지이씨가 꺾어버린 것입니다. 이 기록은 40년 만에 깨진 것인데, 이전에는 21살이 최연소 기록이었다고 합니다.

후지이씨는 5살 때 할머니가 일본식 장기를 선물한 것을 계기로 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6살 생일 카드에는 "커서 쇼기 명인이 되고 싶다"고 적기도 했는데요. 어릴 적 동경하던 꿈을 이루게 돼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명인전에서 후지이씨는 50번째 수 하나를 두고 1시간 47분 동안이나 고민을 한 뒤에 수를 뒀다고 합니다. 이때 무려 32수 앞을 읽고 있었다는데요. 32수에 일어날 수 있는 국면은 확률적으로 10억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했는데요.

와타나베 아키라(오른쪽)씨와 대국 중인 후지이 소타.(사진출처=NHK)

스승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후지이씨의 노트에는 1만개 넘는 수를 푼 흔적이 빼곡하게 적혀있다"며 "상황 판단력은 이러한 깊은 판독 덕분"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수를 찾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지금의 명인을 만들었다는 것인데요.

또한 후지이씨의 성공 비결로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 그리고 '모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는 AI의 활용으로 만들어진 부분이라고 언급해 화제가 됐는데요. 후지이씨는 AI가 탑재된 장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패배한 대국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대국 중 판세 판단과 비교해 어느 부분에서 지기 시작했는지를 AI를 통해 공부한다는데요.

인공지능(AI)로 대국을 분석 중인 후지이 소타씨.(사진출처=NHK)

이는 경험 차이를 따라잡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장기도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후지이씨가 프로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초반에 승기를 빼앗기고 역전도 못 해보고 패배하는 경기를 꽤 많이 치렀다고 합니다. AI를 활용해서 다양한 수를 연습한 결과 선배들의 연륜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세대의 강점을 살려 단번에 1위에 등극한 후지이씨. 다음 달과 7월에도 대국을 앞두고 있어,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데요. 후지이씨는 담담하게 "어릴 때부터 '명인'이라는 단어를 동경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획득해 매우 감격스럽다"면서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의 여정이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쇼기 기사들은 대국 내내 무릎을 꿇은 채 장기를 둡니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만한데도 어디서 32수를 내다보는 집중력이 생길 수 있는지 참 신기한데요. AI를 활용하면서 AI를 넘어선 수를 두고 읽어야 하는 이 인간 프로기사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