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나는 ‘신파적’ 민주주의가 싫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파극인 ‘이수일과 심순애’는 부잣집 아들 김중배와 가난한 고학생 이수일, 그리고 이 두 사람과 얽힌 여주인공 심순애의 삼각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김중배 다이아몬드’는 이수일이 사랑보다는 돈을 선택한 심순애를 향해 절규하는 가운데 나오는 대사다. 여기서 신파(新派)는 일본의 기존 연극인 가부키를 구파(舊派)라고 한데 따른 것으로, 신파는 구파의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감정 과잉의 연기나 연출 행태를 두고 신파라고 하고 있지만, 일본의 기존 연극 가부키가 아닌 새로운 연극을 이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파라는 용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담은 연극이나 영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든가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가 그것이다. 신파는 슬프고 감격적인 장면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성적, 논리적 접근이 아니라 감성적인 소재로 감정을 자극해 공감을 얻는다. 물론 연극이나 영화에서 이런 요소들은 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런 장치나 장면을 넣으면, 요즘 관객으로서는 지루함 혹은 불편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과도한 신파는 오히려 관객과의 교감을 방해한다.
오늘 신파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우리가 역사를 대할 때에도 감정 과잉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올바른 역사인식에도,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감정 과잉을 넘어 의미 과잉으로 나아가게 되면, 자칫 역사 자체를 왜곡시킬 위험도 있다. 당시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역사를 오늘의 지표로 삼는 것을 방해한다. 역사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과거의 감정에 빠져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중심 사고에 매몰되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오늘(10일)은 올해로 36주년을 맞는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다. 이날은 지난 200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갖는다. 36년 전, 전두환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고 ‘4·13 호헌 선언’으로 맞섰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호헌 철폐’ ‘독재 타도’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에 대해 당시 정권은 색깔론을 들이대면서 국민을 이간질하려 했다. 당시 일부 언론도 이에 충실히 복무했다. 야당과 재야 세력, 학생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어졌다. 국민들의 참여도 늘었다. 넥타이 부대라고 일컬어지는 직장인도 대열에 합류했다.
국민의 반독재 투쟁은 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고 언론자유 등을 보장하겠다는 ‘6·29 선언’으로 돌아왔다. 국민에게 정부 선택권이 보장됐다. 정치범의 석방과 정치활동 자유도 보장됐다. ‘1도(道)1사(社)’ 등 인위적 언론통제 장치도 해제됐다. 자유언론의 시대가 열렸다. 국민의 기본권과 절차적 민주제도를 담은 제6공화국 헌법은 국민의 민주화를 위한 끝없는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3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당시의 주역인 청년들은 이제 당시의 그들을 걱정하던 부모의 나이가 됐다. 강산도 세 번 이상 바뀌었고, 세상 모습은 물론 세상인심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오늘 6월민주항쟁 기념일을 맞으면서 문득 아직도 당시의 감격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당시 주역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이 젊은이로서 사회변화에 앞장설 때 그들의 부모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면서 말렸는데, 이들이 그 부모의 나이가 되어 지금의 젊은세대를 향해 같은 얘기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들은 ‘아재 개그‘의 주인공이자, ‘꼰대’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됐다. 또한 과거에 매몰되어 당시 민주화 운동을 훈장처럼 여기며, 젊은 세대의 도전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일종의 ‘신파적 어른’이 되었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3·1운동과 4·19혁명,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민주항쟁을 통해 이루어 온 역사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촛불혁명이라는 전환기적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만 오늘의 민주주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각계각층의 피와 땀이 하나하나 모여 시대정신이 됐고, 시민의식을 일깨워 왔다. 멈추지 않는 발길 하나하나가 인권과 자유, 평화와 휴머니즘이 숨 쉬는 시대를 만든 것이다. 감정 과잉의 신파로는 이룰 수 없는 결과였다.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것을 과신한 나머지 시대변화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결국 과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이는 또 다른 역사적 퇴행이다. 그 퇴행의 길에 6월 항쟁 그날의 민주주의 주역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가치보다는 불확실하지만, 미래에 가치를 두고 자신의 의식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새 우리 자신도 과거 세대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이며, 실현 가능한 것,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파적’ 민주주의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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